변호인단의 교활한 반격
1. 가라앉지 않는 법정의 파문
전주지방법원 남원지원 제1호 대법정 안에는 여전히 무거운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방금 전 증인석에서 어머니의 피 묻은 가계부 일기장을 낭독하고 내려간 한지유의 발걸음 소리는 이미 복도 너머로 멀어졌으나, 그 메아리는 방청석을 가득 채운 시민들과 기자들의 귓가에 씻을 수 없는 낙인처럼 박혀 있었다.
참기름병이 박살 나며 마룻바닥으로 번져 나가던 고소한 냄새와 피비린내, 어머니의 메마른 손등을 찌르던 서릿발 같은 시청 위생과의 폭압, 그리고 1968년부터 30년간 이어진 요천 변 과수원 강탈의 비극.
법정 안의 모든 공기가 피고인 강태석을 향해 서서히 죄어들고 있었다.
피고인석에 웅크려 앉은 전직 남원시장 강태석은 목덜미를 붉게 물들인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
포승줄에 묶인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방청석 한구석에서 터져 나오는 나직한 욕설과 경멸 어린 시선들이 비수처럼 그의 등에 꽂혔다.
"피고인 측 변호인, 증인 한지유에 대한 반대신문은 이것으로 마치는 것입니까?"
재판장 문성현 부장판사의 묵직한 음성이 고요를 갈랐다.
법대 위에서 내려다보는 문 부장판사의 안경 너머 눈빛은 이전보다 한층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증 제42호증으로 채택된 밤색 가계부 일기장은 이미 재판부 참여관의 손을 거쳐 판사석 위에 정갈하게 올려져 있었다.
그 일기장 한 장 한 장에 찍힌 남원시청의 직권남용과 폭압의 증거들은 변호인단이 준비해 온 그 어떤 궤변으로도 지워낼 수 없는 실물이었다.
피고인석 바로 앞, 법무법인 세율(世律)의 대표변호사 한중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검 차장검사 출신인 노회한 법조인의 얼굴에는 조금 전 일기장 낭독으로 당했던 수모의 빛이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먹잇감을 집요하게 노리는 늙은 늑대의 잔인하고 냉혹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한중호는 옷깃을 바르게 여미며 법대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재판장님, 피고인 변호인단은 방금 퇴정한 증인 한지유의 감상적인 낭독극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합니다. 비록 망인의 가계부 일기장이 증거로 임시 채택되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행정 처분의 반대급부로 작성된 일방적인 사적 기록에 불과합니다. 더욱이 저희 변호인단은 이 사건의 본질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치명적인 위법성과 절차적 오염에 대해 재판장님께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합니다."
검사석에 앉아 있던 성재환 검사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재환은 백부에게 물려받은 독일제 검은 옻칠 만년필을 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캡 상단에 새겨진 라틴어 법언, 'Fiat justitia, ruat caelum(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의 금빛 각인이 법정 천장의 백열등 불빛을 받아 서늘하게 번뜩였다.
한중호가 마침내 감추어 두었던 가장 비열한 칼을 빼 들려 하고 있었다.
2. 비열한 프레임
문성현 재판장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서류를 내려놓았다.
"절차적 오염이라니요? 변호인,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적하는 것입니까?"
한중호는 기다렸다는 듯 변호인석 서류철에서 두툼한 서류 한 뭉치를 꺼내 높이 들어 올렸다.
노란색 마닐라삼 봉투에서 빠져나온 서류의 겉면에는 굵은 붓글씨로 '기획 수사 및 주임검사의 사적 이해관계 소명서'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방청석 맨 앞줄에 앉아 있던 남원일보 최민재 기자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기자석 전체에 펜촉을 굴리는 소리가 파도처럼 번져 나갔다.
"형사소송법 제17조 및 제24조는 법관의 제척과 기피를 규정하고 있으나, 그 근본정신은 공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사에게도 당연히 준용되어야 합니다! 검찰청법 제4조는 검사가 공익의 대표자로서 엄정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함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 사건의 공소를 제기하고 수사를 총지휘한 대검 특별수사본부 파견 주임검사, 성재환 검사는 피고인 강태석과 심각한 사적 원한 관계에 얽혀 있을 뿐만 아니라, 방금 퇴정한 핵심 피해자이자 증인인 한지유와 매우 내밀하고 은밀한 사적 연인 관계에 있습니다!"
법정 안이 벼락을 맞은 듯 일순간 술렁거렸다.
"뭐라고?"
"사적 연인 관계라니?"
방청객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고, 참여관 옆의 법원 경위들이 즉각 자리에서 일어나 제지봉을 들어 올렸다.
피고인석의 강태석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검사석의 성재환을 노려보았다.
마치 물어뜯을 뼈다귀를 찾은 맹수처럼 번뜩이는 눈빛이었다.
한중호는 방청석의 동요를 즐기듯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낭랑하고 교활한 목소리로 공세를 이어갔다.
"저희 변호인단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성재환 검사와 증인 한지유는 7년 전 전북 남원에서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사이입니다. 단순한 동창이 아닙니다. 광한루원 오작교와 춘향관 뒤란, 그리고 요천 둑길을 은밀히 거닐며 정을 통했던 깊은 연인 관계였습니다. 성재환 검사가 서울로 떠나기 직전, 자신의 학생증 모서리를 잘라 한지유에게 건넸던 반명함판 증명사진, 그리고 그 뒷면에 흑청색 잉크로 적힌 '약속, 반드시 돌아온다'는 친필 서약! 심지어 성 검사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저 검은 옻칠 만년필에 채워진 흑청색 잉크조차, 남원여고 앞 문구점에서 증인 한지유가 사비로 사서 건넨 사랑의 정표입니다!"
한중호는 손가락으로 검사석의 성재환을 똑바로 가리켰다.
그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며 검사석의 서류들을 헤집을 듯 다가왔다.
"사적인 사랑에 눈이 멀고, 가문의 오랜 원한에 사로잡힌 한 젊은 검사가 국가가 위임한 막강한 공권력을 사유화했습니다! 자신의 첫사랑이 운영하는 김밥집이 정당한 행정지도와 도시계획 정비구역에 포함되어 철거 위기에 몰리자, 이를 구원하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치정과 복수심으로 남원시정 전체를 난도질한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공정한 검찰권의 행사입니까? 이것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국가 사법 체계를 통째로 무기로 휘두른 최악의 '표적 기획 수사'이자 '치정 보복극'입니다!"
변호인석 뒤에 앉아 있던 전주지법원장 출신의 배상문 변호사가 재빨리 보조를 맞추며 서류 사본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재판장님! 형사소송법상 공소권 남용 이론에 의하면, 이처럼 사적 동기에 의해 특정인을 파멸시킬 목적으로 기획된 공소 제기는 그 자체로 무효입니다! 따라서 본 법원은 성재환 검사의 직무 집행을 즉각 배제하고, 피고인 강태석에 대한 본 공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려야 마땅합니다!"
법정 안의 열기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지유의 눈물겨운 낭독이 불러왔던 거대한 도덕적 우위가, 세율의 노회한 프레임 씌우기로 인해 일순간에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될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3. 1968년의 독 묻은 화살
문성현 재판장의 안색이 싸늘하게 굳었다.
재판장은 배상문 변호사가 제출한 소명서류를 넘겨보며 깊은 침묵에 잠겼다.
사적 연인 관계라는 폭로는 상업 언론과 대중이 가장 물어뜯기 좋아하는 자극적인 먹잇감이었다.
만약 이 재판이 검사의 개인적 복수극이나 연인을 구하기 위한 권력 남용이라는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면, 140억 비자금과 요천 제방 붕괴 참사의 진실마저 오염될 수 있었다.
피고인 강태석이 마침내 참았던 독기를 터뜨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포승줄이 의자 등받이에 덜컹거리며 쇳소리를 냈다.
"판사님! 내 말이 그 말입니다!"
강태석의 걸걸하고 쉰 목소리가 법정 천장을 찔렀다.
"저놈은 내게 사기를 당했다고 평생 이를 갈던 성호석의 피를 받은 놈입니다! 어릴 적부터 그 김밥집 계집년 치맛자락이나 붙들고 놀아나던 놈이, 완장 하나 꿰차고 내려와서 남원시장을 때려잡겠다고 온갖 조작을 다 한 겁니다! 저놈이 쓴 공소장은 법률 문서가 아니라 지 계집년을 위한 러브레터요, 날 죽이기 위한 살인 청부서입니다! 저놈 손에 든 만년필을 보십시오! 저게 바로 그 계집년이 사 준 잉크로 쓴 증거 아닙니까!"
"피고인, 정숙하십시오!"
문성현 재판장이 법봉을 내리쳤다.
콰앙, 콰앙!
육중한 박달나무 소리가 법정을 뒤흔들었다.
"피고인은 재판장의 허가 없이 발언할 수 없습니다. 법원 경위, 피고인을 착석시키세요. 한 번만 더 소란을 피우면 감치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경위들이 달려들어 강태석의 어깨를 짓누르자 강태석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의자에 처박혔다.
그러나 그의 입가에는 비열한 웃음이 여전히 번져 있었다.
한중호 변호사는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한 듯,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 서류 한 장을 추가로 꺼내 들었다.
그것은 누렇게 바랜 갱지 복사본이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재판장님. 변호인단은 성재환 검사의 조부와 부친, 그리고 한지유의 부친 한석규 사이에 얽힌 추악한 금전 거래 내역을 확보했습니다. 1968년 남원읍 동충리 일대 토지 분할 당시, 성재환 검사의 집안은 한석규의 토지를 브로커처럼 가로채려다 실패하자 원한을 품었습니다. 즉, 이 사건 공소는 30년에 걸친 가문의 사적 원한과, 젊은 검사의 비뚤어진 연정이 결합하여 탄생한 사법적 괴물입니다! 이런 오염된 수사를 주도한 주임검사가 과연 대한민국의 공소유지를 담당할 자격이 있습니까?"
법정 안의 모든 시선이 일제히 검사석으로 쏠렸다.
수백 개의 눈동자가 성재환의 얼굴을 응시했다.
동요, 당혹감, 수치심, 혹은 분노.
세율의 변호인단은 젊은 특수부 검사가 이 파렴치한 인신공격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흥분하거나 말문이 막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젊은 혈기를 자극해 법정 모욕이나 절차 위반을 유도하는 것, 그것이 전관들이 노리는 전형적인 함정이었다.
그러나 성재환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은 법복의 자락이 단정하게 흘러내렸다.
단 하나의 구김도 없는 흑색 법복 아래, 백색 와이셔츠와 단정한 넥타이가 그의 꼿꼿한 자세를 더욱 서늘하게 부각시켰다.
성재환은 손에 쥐고 있던 독일제 옻칠 만년필을 조심스럽게 책상 위 흑단 받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달칵, 하는 아주 작은 금속음이 정적을 깼다.
그 소리는 마치 거대한 전장에 울려 퍼지는 장수의 칼집 닫는 소리처럼 맑고 단단했다.
4. 흔들리지 않는 율사(律士)
성재환 검사는 변호인석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법대 중앙의 문성현 재판장과 두 배석판사만을 향해 곧게 뻗어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법정 구석구석까지 한 음절도 흐트러짐 없이 울려 퍼졌다.
"검사, 변호인의 주장에 대해 변론하겠습니다."
성재환의 눈빛에는 분노도, 당혹감도 없었다.
오직 얼음장 밑을 흐르는 깊고 차가운 강물 같은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변호인은 지금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실체적 진실 발견을 외면한 채, 공소사실과 무관한 수사 검사의 사생활과 감정을 거론하며 법정을 저열한 치정극의 무대로 격하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묻겠습니다. 법이란 무엇입니까?"
성재환은 한 손을 들어 공소장 원본철을 가리켰다.
"법은 사람의 감정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며, 검사의 개인적 사연에 의해 흔들리는 갈대도 아닙니다. 법은 오직 명백한 증거와 법리에 의해서만 말하는 차가운 정의의 척도입니다. 변호인은 제가 증인 한지유와 사적 연인 관계라는 이유로 이 수사가 기획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변호인에게 되묻겠습니다. 피고인 강태석이 춘향 테마랜드와 요천 수변공원 공사비에서 횡령한 40억 원의 검은돈도, 제가 사적으로 지어낸 환상입니까?"
성재환은 서류철 첫 페이지를 넘겼다.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선명하게 울렸다.
"남원상호신용금고 지하 2층 비밀 대여금고 제7호에서 압수된 '남원 특별 대외관리 원부' 5권! 그 속에 1원 단위까지 적힌 차명 계좌 12개의 흐름과, 여당 실세 김문현에게 건네진 1억 원권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 스무 장, 그리고 남원 관내 공무원들과 법조 브로커들에게 살포된 뇌물 영수증 원본들이 한지유에 대한 연정 때문에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졌단 말입니까?"
한중호 변호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성재환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단단해지고, 서슬 퍼런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요천 제1공구 제방 옹벽 50미터가 무너져 구도심 저지대 수백 가구가 물에 잠기고 수재민이 발생한 참사가, 검사의 개인적인 복수심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까? 기준치의 3분의 1밖에 쓰이지 않은 고장력 철근, 방수 시멘트 대신 흙과 잡석을 채워 넣은 유성골재의 가짜 세금계산서 14억 원, 완월정 팽나무 밑에서 확보한 공인 시험기관의 불량 콘크리트 압축강도 성적서! 이 수천 톤의 콘크리트 쓰레기와 무너진 제방의 잔해조차, 검사의 사적 감정이 만들어낸 허상입니까?"
"그, 그것은……!"
한중호가 말을 가로채려 하자, 성재환이 서류철을 탕 내리치며 그 기세를 단칼에 베어버렸다.
"침묵하십시오, 변호인! 말은 증거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법정 전체가 숨을 들이켰다.
방청석의 시민들은 주먹을 쥐었고, 기자들은 성재환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를 받아 적느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5. 증거의 바다, 궤변의 침몰
성재환 검사는 천천히 검사석 앞쪽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법원에 정식 접수된 증거목록 순번표가 들려 있었다.
"형사소송법 제307조는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검찰이 피고인 강태석에 대해 기소한 12개 죄명은, 검사의 심증이나 피해자의 눈물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닙니다. 첫째,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횡령. 이는 남원 제1건설과 유성골재, 동서개발의 차명 계좌 28개에 대한 금융감독원 정밀 추적 결과와 남원상호신용금고 비자금 원부라는 완벽한 '물증'에 의해 입증되었습니다. 둘째, 업무상과실치사상 및 요천 제방 붕괴 참사. 이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대한토목학회의 정밀 안전진단 감정서, 그리고 현장에서 채취된 부실 콘크리트 시편이라는 과학적 '물증'에 의해 입증되었습니다. 셋째, 남원시청 건설교통국장 황선태에 대한 살인미수 교사. 이는 하정리 삼거리 주유소 사설 CCTV 테이프에 찍힌 한양토건 박철구의 돌진 장면, 덤프트럭 범퍼에 남은 페인트 도료 시편, 그리고 범행 직후 피고인 강태석의 처남 조상태와 나눈 무선전화 통화 내역이라는 객관적 '물증'에 의해 입증되었습니다!"
성재환은 한중호와 배상문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그의 서늘한 시선 앞에 전직 대법관과 검사장 출신 전관들이 숨을 죽였다.
"변호인에게 묻겠습니다. 이 방대한 물증의 바다 어디에 검사의 사적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있습니까? 이 완벽한 과학적·금융적 증거들 중 단 하나라도 검사의 사적 연인 관계에 의해 오염되거나 조작된 것이 있습니까? 변호인은 피고인의 흉악한 범죄를 반박할 단 하나의 반증도 내놓지 못하면서, 오직 수사 검사와 피해자의 과거 인연이라는 껍데기만을 물고 늘어지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지은 죄가 너무나 무겁고, 증거의 벽이 너무나 견고하여 도저히 법리적으로 뚫을 수 없으니, 검사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어 실체적 진실을 가려보겠다는 얄팍한 꼼수 아닙니까!"
"재판장님! 검사의 발언은 변호인의 정당한 변론권을 침해하는 인신공격입니다!"
배상문 변호사가 다급히 소리쳤다.
그러나 문성현 재판장은 손을 들어 배상문의 말을 막았다.
재판장의 시선은 이미 성재환 검사의 정연한 논리와 압도적인 증거 체계에 완전히 설득되어 있었다.
성재환은 물러서지 않고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변호인은 1968년의 토지 거래를 들먹이며 가문의 원한 운운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그 1968년의 진실 역시 이 법정에서 명명백백히 밝히겠습니다. 변호인이 제출한 1968년 토지 분할 서류는, 과거 피고인 강태석이 군청 지적계장을 매수하여 한석규의 가짜 목도장과 위임장을 위조해 요천 변 과수원을 불법 강탈했던 '범죄의 산물'입니다! 검찰은 이미 그 당시 군청에서 작성된 원천 측량 대장과, 피고인 강태석의 친필 각서 원본을 대조하여 위조 사실을 입증할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피고인은 30년 전 가난한 농민의 땅을 빼앗아 권력의 종잣돈으로 삼았고, 30년 뒤에는 그 시장 권력을 이용해 그 딸의 김밥집마저 부수고 목숨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이것이 가문의 원한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30년간 이어진 피고인의 집요하고 추악한 '연쇄적 범죄'이며, 검찰은 그 거악의 역사를 법의 이름으로 단죄하려는 것뿐입니다!"
6. 옻칠 만년필과 흑청색 잉크
법정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괴괴했다.
방청석에서는 누군가 참지 못하고 흘린 훌쩍임과 탄식이 새어 나왔다.
한중호 변호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성재환의 반론은 변호인단이 파놓은 늪을 단숨에 뛰어넘어, 오히려 강태석의 30년 토지 강탈 비리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법정 한가운데로 끌고 들어와 터뜨려버린 꼴이었다.
성재환 검사는 천천히 검사석으로 돌아갔다.
그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독일제 검은 옻칠 만년필을 다시 집어 들었다.
만년필 캡을 벗기자, 14K 금빛 닙에 맺혀 있던 깊고 푸른 흑청색 잉크가 백열등 아래 영롱하게 빛났다.
그것은 한지유가 남원여고 앞 문구점에서 떨리는 손으로 건넸던 순결한 약속의 색이었고, 지난 7년간 풍찬노숙하며 신림동 고시촌의 혹한을 견뎌내게 한 영혼의 등불이었다.
재환은 만년필을 높이 들어 법대와 변호인석, 그리고 방청석의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부끄러움도, 흔들림도 없었다.
오직 당당함과 숭고한 결기만이 깃들어 있었다.
"변호인의 말대로, 이 만년필에는 저의 이름 '成宰桓'과 함께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라는 법언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안에 담긴 흑청색 잉크는, 7년 전 남원을 떠나던 가난한 수험생에게 한 소녀가 건네준 순수한 믿음의 징표가 맞습니다."
성재환의 시선이 피고인석의 강태석에게 가닿았다.
강태석은 그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저는 이 잉크를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잉크는 사적인 욕망을 위해 쓰인 것이 아니라, 피고인의 폭압에 짓밟힌 남원의 무고한 시민들을 구원하고,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거악을 기록하는 데 쓰였기 때문입니다! 피고인은 피 묻은 돈으로 산 만년필로 부실공사를 결재하고, 살인교사를 지시하고, 거짓 기자회견문을 작성했습니다. 그러나 검사는 시민의 정직한 눈물과 믿음으로 채워진 이 잉크로 150쪽의 공소장을 썼고, 피고인의 죄악을 낱낱이 밝혀냈습니다! 어느 쪽이 사적이고, 어느 쪽이 공적인 정의입니까!"
성재환은 만년필을 단호하게 종이 위에 꽂듯 내려놓았다.
"검사는 법정에 서기 전,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양심과 헌법 앞에 섰습니다. 만약 피고인을 단죄하는 이 칼날이 사적 복수였다면, 검사는 저 자신의 친부이자 내무부 차관이었던 성호석의 죄악을 공소장에 적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순간, 법정 전체가 거대한 충격에 휩싸였다.
성호석.
현 정권의 핵심 실세이자 내무부 차관, 성재환 검사의 친부.
그 이름이 검사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순간, 변호인단이 세웠던 모든 '사적 비호'와 '기획 수사'의 논리는 먼지처럼 부서져 내렸다.
자신의 친부마저 법정에 세우겠다고 공소장에 피의자로 적시한 검사에게, 감히 누가 '사적 치정'이라는 오명을 씌울 수 있단 말인가.
"검사는 가문의 원죄조차 덮지 않았습니다. 제 피를 나눈 아비의 죄조차 법의 심판대 위에 올렸습니다. 하물며 남원을 30년간 피폐하게 만든 토착 폭력의 수괴 강태석을 단죄함에 있어, 어찌 단 한 톨의 사사로움이 끼어들 수 있겠습니까! 재판장님, 검사는 헌법 제7조와 검찰청법 제4조에 의거하여, 피고인 변호인단의 악의적인 공소기각 신청을 단호히 기각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7. 법봉의 무게
성재환 검사가 변론을 마치고 고개를 숙였다.
법정 안은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기자들은 펜을 멈추고 멍하니 검사석의 젊은 율사를 바라보았고, 방청석의 남원 시민들은 가슴을 쥐어짜며 눈시울을 붉혔다.
변호인석의 한중호와 배상문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볼 뿐, 더 이상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들이 준비해 온 가장 비열한 덫은, 성재환이 스스로 던진 '성호석 기소'라는 거대한 사법적 결단 앞에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문성현 재판장이 천천히 안경을 벗었다.
그는 손수건으로 안경을 닦은 뒤 다시 착용하고, 법대 아래를 엄숙하게 내려다보았다.
재판장의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단호했다.
"재판부는 변호인의 공소권 남용 및 주임검사 제척 주장에 대해 판단합니다."
법정 안의 모든 숨소리가 멎었다.
"형사소송법상 검사에 대한 기피 신청은 법률상 허용되지 않을뿐더러, 변호인이 주장하는 검사와 피해자 간의 과거 인연이나 사적 정황은 본 사건 공소 제기의 효력을 좌우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검찰이 제출한 140억 비자금 원부, 계좌 추적 결과, 제방 붕괴 감정서, 살인미수 관련 영상 및 통화 내역 등 방대한 객관적 증거들은 검사의 개인적 감정과 무관하게 독립적인 증거가치를 지니고 있음이 명백합니다."
문 재판장의 시선이 변호인단을 매섭게 찔렀다.
"변호인은 실체적 진실과 무관한 수사 검사의 개인사를 들먹여 재판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하십시오. 피고인 측의 공소기각 신청을 기각합니다."
탕!
법봉이 울렸다.
그 명쾌한 소리는 변호인단의 간담을 서늘하게 내려앉혔다.
강태석은 턱을 덜덜 떨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완벽한 패배였다.
치정을 무기로 삼아 검사를 파멸시키려던 음모는, 오히려 검사의 청렴함과 엄정한 사법 정의를 전 국민 앞에 공인해 주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말았다.
"다음 공판기일을 지정하겠습니다."
문성현 재판장이 소송기록을 정리하며 선언했다.
"피고인 측의 증거 부동의에 따라, 검찰 측이 신청한 추가 증인들에 대한 신문을 진행하겠습니다. 다음 기일은 9월 12일 오전 10시입니다. 폐정을 선언합니다."
탕, 탕, 탕!
법봉이 세 번 울리자마자 방청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성 검사님 만세!"
"남원의 정의가 살아있다!"
법원 경위들이 몰려드는 시민들을 막아서느라 진땀을 흘렸다.
기자들은 법정 문이 열리자마자 전화기를 향해 복도로 맹렬하게 뛰쳐나갔다.
'성재환 검사, 친부 성호석 기소 선언하며 변호인단 치정 프레임 격파!',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 법정을 울린 흑청색 잉크의 변론!'
전국 일간지의 1면 톱기사가 쓰여지는 순간이었다.
8. 복도의 그림자, 그리고 새로운 뇌관
호송관들에게 이끌려 법정 뒷문으로 끌려 나가는 강태석의 뒷모습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의 어깨는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고, 핏발 선 눈동자에는 이제 분노 대신 깊은 절망과 광기만이 일렁이고 있었다.
성재환 검사는 차분하게 법전과 공소장 서류들을 가죽 서류 가방에 담았다.
책상 위에 놓인 독일제 검은 옻칠 만년필을 들어 안주머니 깊숙한 곳, 심장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꽂아 넣었다.
만년필의 차가운 금속 촉감이 겉옷을 뚫고 가슴으로 전해졌다.
'지유야, 너의 눈물과 우리의 약속은 결코 더럽혀지지 않았다.'
재환은 속으로 나직이 읊조리며 법정을 나섰다.
법원 중앙 복도로 나오자 플래시 세례가 사방에서 터졌다.
"성 검사님! 친부 성호석 차관에 대한 기소 방침은 확고한 것입니까?"
"강태석 시장에 대한 구형량은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기자들의 마이크가 숲을 이루며 들이닥쳤으나, 성재환 검사는 묵묵히 정면을 응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의 곁을 지청 강태훈 수사관과 안진우 검사가 든든하게 호위했다.
복도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벽에 기대어 서 있던 최민재 기자가 다가왔다.
민재의 손에는 방금 서울 본사에서 팩스로 들어온 따끈따끈한 서류 한 장이 쥐여져 있었다.
민재의 표정은 승리의 기쁨 대신 심상치 않은 긴장감으로 굳어 있었다.
"재환아, 아니, 성 검사님."
민재가 목소리를 낮추며 재환의 곁으로 바짝 붙었다.
"변호인단 놈들, 오늘 법정에서 치정 프레임이 깨질 걸 미리 예상하고 플랜 B를 가동한 것 같습니다."
성재환이 걸음을 멈추고 민재를 바라보았다.
"플랜 B?"
"조금 전 서울에서 확인된 첩보입니다. 강태석이 전주교도소에 수감되기 직전, 스위스 취리히의 비밀 은행 계좌를 통해 거액의 비자금을 해외 유령 법인으로 긴급 분산 송금한 흔적이 포착되었습니다. 규모가 최소 100억 원대입니다. 놈들이 그 돈으로 서울의 또 다른 거물급 브로커들을 움직여, 대법원 상고심까지 재판을 질질 끌며 사법부를 통째로 매수하려 하고 있습니다."
성재환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국내에서의 법리 싸움이 검찰의 완승으로 기울자, 이제는 국경을 넘나드는 은닉 자산과 국제 금융 세탁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지청 호송 차량 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박철민 수사관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왔다.
"성 검사님! 지금 남원지청 1호 취조실에…… 손님이 도착했습니다."
재환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올 것이 왔다.
"아버지께서…… 오셨습니까?"
"예. 성호석 전 차관님께서 단신으로 지청에 출석하셨습니다. 변호인도 대동하지 않으시고, 성 검사님의 신문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재환은 코트 자락을 여미며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법원 청사 마당 너머, 9월의 푸른 하늘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요천의 물줄기가 보였다.
가문의 원죄와 마주해야 하는 가장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시간, 그리고 은닉된 100억 대 스위스 계좌를 추적해야 하는 새로운 전선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재환은 안주머니의 만년필을 꾹 쥐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
그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아비를 취조실에 앉혀둔 남원지청을 향해 거침없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