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온 약속] 끝까지 남은 사랑](/uploads/img_1790911901971_l796m5ng.png)
“한 사람은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켰고, 한 사람은 그 약속을 믿고 끝까지 남았다.”
"1. 다시 찾아온 남원의 봄 겨우내 지리산 자락에서 불어오던 매서운 삭풍이 잦아들고, 요천(蓼川)의 물길 위로 봄볕이 투명하게 부서져 내렸다. 얼어붙었던 강둑의 흙이 풀리며 파릇한 쑥잎이 돋아났고, 강변을 따라 끝없이 도열한 수양버들은 연둣빛 새순을 눈부시게 틔워..."
"1. 새벽을 여는 꽃가마 동트기 전의 남원 삼거리 골목은 유난히 푸르고 서늘한 안개에 싸여 있었다. 동문 우체국 붉은 벽돌 담벼락을 스치는 바람결마다 알싸한 늦가을 새벽의 공기가 묻어났다. 삼거리 김밥집 처마 밑에 매달린 놋쇠 풍경이 딸그랑, 맑고 청아한 쇳소리를..."
"1. 오작교의 서약과 가슴 깊은 고백 달빛이 완월정(翫月亭) 연못에 드리워져 은백색 물비늘로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오작교(烏竹橋)의 가장 높은 홍예 위, 밤바람이 수양버들 가지를 흔들며 지나갈 때마다 사각거리는 잎새 소리가 두 사람의 귓가를 스쳤다. 재환의 손바..."
"1. 오작교의 서약 완월정 뒤란을 감싸 안은 밤공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광한루원(廣寒樓苑) 오작교(烏竹橋)의 둥근 홍예석 위로 서늘한 초가을 바람이 잔잔한 수면을 스치며 번져 나갔다. 물결 위에 부서지던 은백색 달빛은 흔들림 없이 두 사람의 발치에 고여..."
"1. 달빛 내리는 완월정 뒤란 광한루원(廣寒樓苑)의 밤은 낮과는 다른 결의 침묵을 품고 있었다. 낮 동안 경내를 가득 메웠던 관광객들의 웅성거림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노을과 함께 물러갔다. 완월정(玩月亭) 처마 끝에 걸린 은은한 청사초롱 불빛만이 잔잔한 호수 표면..."
"1. 남겨진 쪽지와 심부름 늦가을의 맑고 서늘한 바람이 남원 시내의 나직한 골목길을 따라 잔잔하게 흘러들었다. 동문 우체국 뒷골목 삼거리, 정갈하게 자리 잡은 삼거리 김밥집의 편백나무 출입문이 바람결에 맑은 풍경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처마 끝에 달린 놋쇠 풍경은..."
"1. 늦가을 아침의 모의 동문 우체국 뒷골목 삼거리로 스며드는 늦가을 아침 공기는 살갗을 파고들 만큼 제법 서늘했다. 새벽안개가 요천의 물안개와 뒤섞여 낮게 깔렸다가 서서히 흩어지는 길목, 처마 끝에 매달린 낡은 놋쇠 풍경이 마른 바람결에 맑고 청아한 쇳소리를 흔들..."
"1. 늦가을 아침의 온기 지리산 줄기를 타고 내려온 맑고 서늘한 바람이 남원 시가지의 골목마다 내려앉는 늦가을 아침이었다. 동문 우체국 뒷골목 어귀에는 이른 시간부터 구수한 밥 짓는 냄새와 달착지근한 참기름 내음이 잔잔하게 번져 나갔다. 삼거리 김밥집의 목조 미닫..."
"1. 밀려드는 탄원 낡은 목조 계단이 비명을 지르듯 삐걱거렸다. 성재환은 평상 탁자 위에 펼쳐진 서류철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흑청색 잉크가 짙게 묻어난 만년필을 쥔 손가락에 가만히 힘을 주었다. 계단 아래에서부터 번져오는 발소리는 한두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1. 가을볕 내리는 삼거리 골목 남원 동문 우체국 뒷골목의 낮은 기와처마 위로 맑고 투명한 초가을 햇살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겨 거뭇해진 흙벽과 붉은 벽돌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이제 날카로운 한기 대신 완연한 계절의 풍요로움이 묻어났다...."
"1. 지리산 자락의 대치 굉음을 내뿜는 노란색 불도저의 거대한 쇠날이 메마른 흙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전진하고 있었다. 지리산 산내면 우포리 산 14번지, 대대로 콩과 감자를 심어 오던 다랑논 비탈길은 이미 검붉은 생채기를 드러낸 채 무참히 파헤쳐져 있었다. "..."
"1. 새벽의 망치 소리 지리산 동쪽 자락에서 피어오른 짙은 새벽안개가 요천의 잔잔한 물결을 타고 남원 시내로 스며들고 있었다. 밤새 차갑게 식어 있던 남원 동문 우체국 뒷골목의 묵직한 적막을 깨뜨린 것은 규칙적이면서도 힘 있는 둔탁한 소리였다. 탕, 탕, 탕...."
"1. 둑길에 이는 바람 초가을의 볕은 맑고 투명했다. 동문 우체국 뒷골목의 소란과 2층 법률사무소의 묵직한 서류철들을 뒤로하고 걸어 나온 요천(蓼川) 둑길 위에는, 지나간 여름의 상흔을 지워내려는 듯 유난히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성재환은 지유의 곁에서..."
"1. 먼지 쌓인 유리창 너머 동문 우체국 뒷골목의 새벽안개는 늘 서늘한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밤새 남원을 적시던 실비는 멎었으나, 처마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좁은 골목길의 침묵을 일정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성재환은 삐걱거리는 목조 계단을 밟고 2층..."
"1. 어둠을 가르는 호통 자정을 갓 넘긴 시각, 남원 동문 우체국 뒷골목은 얼어붙은 듯 적막했다. 가로등 불빛조차 닿지 않는 삼거리 김밥집 맞은편 낡은 기와집 처마 밑 어둠 속에서, 낮게 웅얼거리는 무전기 잡음이 새어 나왔다. "……타깃은 점포 내에 혼자 있다...."
"1. 어둠 속에 멈춰 선 관용차 자정을 향해 치닫는 밤하늘은 물감을 쏟아부은 듯 짙고 먹먹했다.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을 타고 쏜살같이 질주하던 검은 관용차가 비상등을 깜빡이며 천안 부근 졸음쉼터 갓길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엔진이 낮게 가르랑거리다 멎자, 차 안에는..."
"1. 밤안개 속의 불청객 골목 어귀를 비추던 외등 불빛이 밤안개에 젖어 희뿌옇게 번져 나가고 있었다. 갓 새로 칠한 삼거리 김밥집의 크림색 외벽과 지리산 육송으로 깎아 올린 새 간판 아래에서, 짙은 어둠을 뚫고 미끄러져 들어온 검은색 관용 세단 한 대가 길게 멎어..."
"1. 씻겨 나간 흔적들 아침 안개가 요천(蓼川) 물안개와 뒤섞여 동문 우체국 뒷골목 삼거리로 스며들던 시간이었다. 축축한 공기 사이로 아직 설익은 가을바람이 처마 끝을 가볍게 흔들고 지나갔다. 한지유는 가게 문턱에 서서 손에 쥔 열쇠 꾸러미를 가만히 응시했다...."
"1. 완월정의 푸른 아침 초가을 남원의 아침 공기는 요천에서 불어오는 맑은 물안개를 머금어 서늘하면서도 더없이 상쾌했다. 광한루원(廣寒樓苑)의 정문인 청허부(淸虛府)를 지나 완월정(翫月亭) 앞마당으로 들어서자, 수백 년 묵은 팽나무 고목의 무성한 잎새 사이로 부서져..."
"1. 삼거리 김밥집의 아침 동문 우체국(東門郵遞局) 뒷골목을 타고 스며드는 아침 햇살은 유난히도 희고 투명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붉은 유성 페인트의 지독한 기름 냄새와 쇠파이프가 깨부순 유리 파편의 날카로운 긴장감이 짓누르던 골목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1. 흙바닥 위의 무릎 교룡산 기슭으로 불어오는 초가을 바람은 마른 솔잎 향을 품고 있었다. 선산 초입의 비탈진 흙길 위에서 성호석은 미동도 없이 꿇어앉아 있었다. 한때 남원군수를 지내고 내무부 차관의 자리까지 올랐던 인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의 어깨는 심..."
"1. 밥을 짓는 새벽 동문 우체국 뒷골목 삼거리 김밥집의 새벽은 언제나처럼 가마솥의 하얀 김으로 시작되었다. 푸른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 네 시의 골목길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부엌 유리창 안쪽은 갓 지어낸 햅쌀밥의 구수한 단내로 가득 차올랐다. 김밥집..."
"1. 묵직한 문이 닫히고 피고인 강태석이 교도관들에게 짓눌린 채 지하 구치감으로 통하는 철문 너머로 끌려 들어갔다. 광기 어린 고함과 시멘트 바닥을 긁어대던 구둣발 소리는 무거운 방음문이 덜컥 잠기면서 단번에 차단되었다. 법정 안에는 오직 서류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1. 9월 12일의 아침 가을의 초입에 들어선 남원의 하늘은 높고 시리도록 푸르렀다. 요천(蓼川)을 타고 내려온 서늘한 바람이 지리산의 마른 풀 냄새를 싣고 시내 구석구석을 훑고 지나갔다. 동문 우체국 뒷골목, 삼거리 김밥집의 처마 끝에 걸린 낡은 놋쇠 풍경이 바..."
"1. 텅 빈 피고인석과 서슬 퍼런 침묵 전주지방법원 남원지원 제1호 대법정의 공기는 얼어붙은 호수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오후의 비스듬한 햇살이 높은 아치형 창틀을 뚫고 쏟아져 들어왔으나, 법정 내부의 냉기는 조금도 녹이지 못했다. 피고인석 오른편, 방금 전..."
"1. 지하 대기실의 균열 전주지방법원 남원지원 지하 1층, 축축하고 냉랭한 냉기가 감도는 호송 피고인 대기실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벽면의 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회색 콘크리트 구석, 수번 '2104'가 붉은 실로 박힌 카키색 미결수 수의를 걸친 강태석은..."
"1. 1호 취조실의 문턱 지리산 줄기에서 불어오는 늦여름의 습한 바람이 전주지방검찰청 남원지청(南原支廳)의 붉은 벽돌 청사 외벽을 무겁게 훑고 지나갔다. 법정에서 울려 퍼졌던 최민재와 윤하은의 결연한 증언, 그리고 방청석을 메웠던 시민들의 뜨거운 숨결은 여전히 성재..."
"1. 무너진 공작의 잔해 전주지방법원 남원지원 제1호 대법정의 공기는 얼어붙은 삭풍처럼 매서웠다. 문성현 부장판사의 법봉 소리가 세 번 울려 퍼진 뒤에도, 방청석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검사석과 피고인석 사이를 오가며 서슬 퍼런 긴장을 뿜어내고 있었다...."
"1. 가라앉지 않는 법정의 파문 전주지방법원 남원지원 제1호 대법정 안에는 여전히 무거운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방금 전 증인석에서 어머니의 피 묻은 가계부 일기장을 낭독하고 내려간 한지유의 발걸음 소리는 이미 복도 너머로 멀어졌으나, 그 메아리는 방청석을 가득 채..."
"1. 낡은 양장 가계부의 무게 전주지방법원 남원지원 제1호 대법정 안의 공기는 얼어붙은 듯 무거웠다. 문성현 재판장의 나직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가 높은 법대 위에서 울려 퍼졌다. "증인 한지유는 소지하고 있는 모친 고(故) 박순례의 일기장 및 기록물을 재판부에 제..."
"1. 증인 선서와 정적 법정 경위의 호명이 대법정 천장을 가르고 울려 퍼졌다. "검찰 측 제1호 증인, 한지유 씨 앞으로 나오십시오." 방청석 맨 앞줄에 단정히 앉아 있던 한지유(韓智由)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순간 법정 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수백 명의..."
"1. 대법정 앞의 운집 1996년 9월 5일 아침, 전주지방법원 남원지원 앞마당은 새벽부터 몰려든 인파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남원 시내를 관통하는 요천 변 제방 붕괴 참사로부터 불과 보름 남짓 지난 날이었다. 아직도 흙탕물 냄새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구도심..."
"1. 204호의 그림자 전주지방검찰청 남원지청 2층 204호 특별수사전담 검사실의 유리창 너머로 늦은 오후의 붉은 노을이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지리산 능선 위로 붉게 타오르던 석양이 검사실 바닥에 길고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서서히 식어가는 시간이었다. 책상..."
"1. 204호의 침묵과 사투 전주지방검찰청 남원지청 2층 204호 특별수사전담 검사실의 시계 초침 소리가 메마른 밤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새벽 세 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창밖으로는 지리산 능선을 타고 곤두박질치는 거센 삭풍이 낡은 알루미늄 창틀을 흔들며 거친..."
"1. 차가운 독방의 맹수 두꺼운 쇠문이 둔탁한 파열음을 내며 닫혔다. 전주교도소 남원 분소 지하 특별 구치 감방의 공기는 차갑다 못해 뼈마디를 에는 악취를 머금고 있었다. 시멘트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강태석(姜泰錫)은 핏발 선 눈을 번뜩이며 벌떡 몸을 일으켰..."
"1. 풍경 소리와 비워진 어둠 딸랑, 딸그랑. 남원 동문 우체국 안쪽 좁다란 골목 모퉁이에 내걸린 낡은 놋쇠 풍경이 바람을 타며 맑고 청아한 쇳소리를 흩뿌렸다. 칠 년 전, 지유의 어머니가 방앗간에서 갓 짜온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손끝에 묻힌 채 처마 밑 서까래에..."
"1. 붉은 낙인의 집행 남원경찰서 지하 1층 유치장 복도는 곰팡이 슨 눅눅한 시멘트 냄새와 녹슨 쇠창살의 비릿한 쇠 냄새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천장 구석에서 위태롭게 떨리는 노란 백열등 불빛 아래로, 묵직하고 서늘한 군화 굽 소리가 낮게 메아리쳤다. 탁, 탁..."
"1. 제1호 법정의 대치 전주지방법원 남원지원 제1호 법정의 무거운 참나무 문이 육중한 파열음을 토해내며 닫혔다. 창밖에서는 남원 시민 수백 명이 청사 담벼락을 에워싸고 지르는 함성이 가느다란 유리창을 진동시키며 아스라이 파고들었다. 법정 안의 공기는 얼어붙은 빙..."
"1. 204호의 백서(白書) 밤은 깊었으나 남원지청 204호 특별수사전담 검사실의 불은 꺼질 줄 몰랐다. 낡은 형광등 아래로 푸른 잉크 냄새와 인쇄기 토너의 비릿한 기름내가 묵직하게 뒤섞여 가라앉아 있었다. 성재환 검사는 책상 위에 양손을 얹고 정면에 놓인 서류..."
"1. 204호의 침묵과 복도의 소란 철제 문이 둔중한 금속음을 토해내며 닫혔다. 전주지방검찰청 남원지청 2층 204호 특별수사전담 검사실 안에는 지독하게 농밀한 침묵만이 가라앉아 있었다. 방금 전까지 피의자 강태석이 내뿜던 살기 어린 저주와 거친 숨소리는 사라지고..."
"1. 굳게 닫힌 철문 뒤에서 육중한 방음 철문이 둔탁한 파열음을 내며 맞물렸다. 남원지청 204호 특별수사전담 검사실 안쪽, 외부의 소음과 햇살이 단 한 줌도 새어 들지 않는 취조실의 공기는 얼어붙은 석탄 가루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벽면을 감싼 회색 방음..."
"1. 쏟아지는 섬광 짙푸른 차광 필름이 빈틈없이 둘러쳐진 대형 교도소 호송 버스의 육중한 철문이 둔탁한 공기압 소리와 함께 열렸다. 푸쉬익 하는 메마르고 거친 공압 마찰음이 축축한 새벽안개를 가르고 터져 나오는 순간, 남원지청 앞마당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서늘한..."
"1. 새벽을 가르는 결의 남원의료원 3층 복도의 차가운 타일 바닥 위로 새벽녘의 희뿌연 박명이 스며들고 있었다. 밤새 내리던 빗줄기는 잦아들었지만, 젖은 유리창 너머로 번져오는 공기는 여전히 칼날처럼 서늘했다. 병실 문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놓고 돌아선 성재환(成宰桓..."
"1. 붉은 불빛 아래의 침묵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빗물 젖은 남원의료원(南原醫療院) 응급실 앞마당을 길게 찢어발겼다. 구급차 뒷문이 덜컹거리며 열리자마자 뿜어져 나온 것은 시린 초가을의 찬 공기와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였다. 들것을 받쳐 든 구급대원들의 발걸음이..."
"1. 17번 국도의 비명 와이퍼가 미친 듯이 앞유리를 긁어내렸지만,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는 시야를 집어삼킬 듯 사나웠다. 엔진의 굉음이 차체를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성재환(成宰桓)은 젖은 아스팔트를 움켜쥐듯 미끄러지는 핸들을 두 손으로 짓이기며 가속 페달을 끝까지..."
"1. 셔터를 내리는 시간 골목길 끝에서 불어오는 늦여름의 밤바람은 끈적거리면서도 서늘했다. 남원 동문 우체국 뒷골목, 어스름이 깔린 삼거리 김밥집 앞마당에 붉게 번졌던 페인트 자국은 지유의 짓무른 손끝으로 문지른 석유 냄새를 여전히 품고 있었다. 낮 동안 퍼부었던..."
"1. 찢겨 나간 보고서 차가운 철창 너머로 빗물 섞인 바람이 들이쳤다. 전주교도소 미결수 특별 독방의 시멘트 바닥에는 눅눅한 습기와 곰팡내, 그리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고여 있었다. 벽 모서리에 웅크려 앉아 있던 강태석(姜泰錫)은 굳게 닫힌 철문 밖에서 들려..."
"1. 뱀사골의 빗길을 가르며 거센 폭우가 윈드실드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와이퍼가 좌우로 미친 듯이 왕복하며 시야를 확보하려 애썼지만, 쏟아붓는 장대비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뱀사골로 접어드는 굽이진 비탈길은 온통 붉은 황톳물로 뒤덮..."
"1. 빗길을 가르는 사이렌 와이퍼가 유리창을 거칠게 긁어내렸지만, 앞을 가로막는 폭우는 쉴 새 없이 시야를 집어삼켰다. 남원지청 정문을 빠져나온 검찰 승합차는 요천 둑길을 따라 맹렬한 속도로 내달렸다. 차창 밖으로 성난 황톳빛 요천의 물결이 제방 옹벽을 집어삼킬..."
"1. 차가운 복도의 대치 남원지청 2층 복도는 서늘한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창문 밖에서는 방금 전까지 청사 정문을 가득 메웠던 어용 시위대의 비명과 흩어지는 발소리가 빗물에 젖은 채 희미하게 메아리치고 있었다. 지청 1층 당직실 앞에는 강태훈 계장이 팔짱을 낀..."
"1. 흙탕물 속의 온기 깨진 달걀 노른자가 아스팔트 위에서 비릿한 김을 뿜어 올렸다. 남원지청 정문 앞마당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서늘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성재환은 지유의 어깨를 감싸 안은 팔에 핏줄이 터져 나갈 듯 힘을 주었다. 뺨에 묻은 노란 얼룩과..."
"1. 새벽의 먹구름과 붉은 깃발 남원의 하늘은 새벽부터 잿빛으로 내려앉아 있었다. 동문 우체국 골목을 빠져나온 바람에는 아직 채 가시지 않은 흙탕물 냄새와 타버린 아스팔트의 비릿한 잔향이 섞여 있었다. 지리산에서 불어오는 삭풍이 요천의 검은 수면을 긁어내듯 흔들고..."
"1. 옥중의 뱀 철창 너머로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은 차가웠다. 전주교도소(全州矯導所) 미결수 특별 면회실 안쪽의 공기는 곰팡내와 퀴퀴한 소독약 냄새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탁자 맞은편에 앉은 강태석은 수의(囚衣) 깃을 거칠게 매만졌다. 손목에 채워진 수갑은..."
"1. 렌즈 앞에 선 진실 골목 어귀를 휘감아 도는 새벽바람에는 여전히 매캐한 석유 냄새와 들큼한 붉은 페인트의 비린내가 뒤섞여 있었다. 골목 담벼락과 삼거리 김밥집의 통유리창을 시뻘겋게 물들였던 협박 문구들은, 한지유가 손톱 밑이 터져라 문질러 댄 흔적 탓에 희뿌연..."
"1. 붉은 흔적과 남은 냄새 깨진 유리창 틈새로 불어닥치는 아침 바람에는 여전히 독한 석유 냄새와 유성 페인트 특유의 역한 쇠비린내가 뒤섞여 있었다. 골목 어귀를 휘감아 도는 칼바람이 성긴 판자 틈을 비집고 들어올 때마다, 지유(池幽)의 앙상한 어깨가 잘게 떨렸다...."
"1. 핏빛으로 물든 새벽 동문 우체국 뒷골목의 새벽공기는 여전히 차가웠다. 지리산 줄기를 타고 내려온 늦여름의 습한 바람이 요천(蓼川)의 비린 물내를 품은 채 구도심의 좁은 골목길을 흝고 지나갔다. 동이 트기 직전인 새벽 다섯 시, 남원(南原) 시가지 전체가 깊은..."
"1. 가라앉은 새벽의 공기 전주지방검찰청(全州地方檢察廳) 남원지청(南原支廳) 204호 특별수사전담 검사실의 새벽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창밖 요천(蓼川) 너머로 짙은 안개가 낮게 깔려 시가지의 윤곽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밤새 꺼지지 않은 백열전구 아래, 찌그러진..."
"1. 팩스 용지 위의 그림자 새벽 네 시의 공기는 유리창 틈새로 스며드는 서리처럼 차갑고 건조했다. 전주지방검찰청(全州地方檢察廳) 남원지청(南原支廳) 204호 취조실 안에는 형광등의 가느다란 떨림음만이 낮게 깔려 있었다. 성재환(成宰桓)은 손에 쥔 독일제 검은 옻..."
"1. 지하 기계실의 포위망 남원상록골프장 클럽하우스 뒤편의 어둠은 묵직하고 축축했다. 자정을 갓 넘긴 시각, 지리산 줄기를 타고 내려온 찬 바람이 골프장 잔디를 스치며 음산한 파도 소리를 흉내 내고 있었다. 성재환은 검은 코트 깃을 세운 채, 클럽하우스 지하 기계..."
"1. 찢어진 영장과 차가운 먹물 남원지청 2층 204호 특별수사전담 검사실의 공기는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지리산의 새벽바람이 낡은 형광등을 미세하게 흔들었다. 책상 위에는 조금 전까지 성재환 검사의 손에 들려 있던 서류 한 장이 두 동강 난..."
"1. 궤짝 속의 진실 창밖으로 쏟아지던 비는 가늘어졌으나, 전주지방검찰청 남원지청 2층 204호 특별수사전담 검사실의 공기는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성재환은 숨을 죽인 채 책상 위에 펼쳐진 서류들을 내려다보았다. 지유가 품에 안고 달려왔던 양철..."
"1. 단칸방의 먼지 낀 기억 삼거리 김밥집의 낡은 격자 미닫이 유리문 너머로 늦은 오후의 붉은 햇살이 비스듬히 기울어 들고 있었다. 낮 동안 골목을 뒤흔들던 소란도 거짓말처럼 잦아들었으나, 내려앉은 침묵은 오히려 폭풍이 지나간 자리보다 더 무겁게 짓눌러 왔다. 가..."
"1. 2층 집무실의 침묵 아침 여덟 시 이십 분의 전주지방검찰청(全州地方檢察廳) 남원지청(南原支廳) 복도는 서늘한 긴장감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밤안개가 낡은 청사 유리창을 두드리며 흘러내렸고, 중앙 계단을 오르는 성재환(成宰桓)의 구둣발 소리만이 육중..."
"1. 야간의 질주와 심야의 불빛 검은색 관용 세단은 젖은 아스팔트를 날카롭게 베어내며 남원 외곽을 향해 내달렸다. 차창을 때리는 빗줄기는 잦아들었으나, 지리산 자락에서 피어오른 짙은 밤안개가 헤드라이트 불빛을 둔탁하게 굴절시키고 있었다. 운전대를 쥔 대검 특수부..."
"1. 어둠이 내린 골목의 한숨 한낮의 맹렬했던 흙먼지와 쇠 긁히는 굉음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남원 시내를 집어삼킬 듯 포악하게 뿜어져 나오던 굴착기 엔진의 매캐한 매연 냄새도 어느덧 서늘한 밤공기에 흩어져 사라졌다. 동문 우체국 뒷골목의 낡은 가로등은 희미한..."
"1. 멈춰 선 쇠 버킷 거대한 굴착기의 디젤 엔진이 뿜어내는 검은 매연이 한여름 정오의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사납게 흩어졌다. 쇠로 엮인 거대한 궤도가 삼거리 김밥집의 낡은 시멘트 턱을 짓이기며 삐걱거리는 비명을 토해 냈다. 기름때에 전 굴착기 암(Arm)이 유압..."
"1. 어둠 속의 침탈자들 새벽 다섯 시의 어스름은 젖은 흙과 썩은 풀 냄새를 짙게 품고 있었다. 밤새 남원을 짓누르던 물안개가 동문 우체국 뒷골목의 좁은 처마 밑으로 뱀처럼 스며들었다. 삼거리 김밥집의 낡은 유리창은 지난밤의 폭우를 견뎌냈지만, 거미줄처럼 갈라진..."
"1. 거악의 꼬리 전주지방검찰청(全州地方檢察廳) 남원지청(南原支廳) 1층 서무과 복도에는 아직도 묵직한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바닥에 엎드러진 채 수갑을 찬 박영선 수사계장의 거친 숨소리가 타일 바닥을 타고 을씨년스럽게 울렸다. 성재환은 손에 쥔 소형 카세트 녹음..."
"1. 타버린 금고와 남겨진 온기 매캐한 기름내가 눅눅한 빗물 냄새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깨진 유리창 틈새로 들이친 비바람이 대표실 카펫을 질척하게 적시고 있었다. 전북 남원시 하정동, 남원 제1건설 본사 3층 대표실은 폭격을 맞은 듯 아수라장이었다. 책상은..."
"1. 새벽의 결의 남원 동문 우체국 뒷골목의 어둠은 짙고 무거웠다. 삼거리 김밥집의 낡은 처마 끝에 매달린 놋쇠 풍경이 밤바람에 잘게 흔들리며 청아한 쇳소리를 흩뿌렸다. 가게 안에는 참기름의 고소한 잔향과 막 삶아낸 우엉 냄새, 그리고 종이 냄새가 눅진하게 엉켜..."
"1. 놋쇠 풍경 아래로 불어온 바람 법원 복도에 감돌던 서늘한 긴장감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성재환(成宰桓)은 남원지원의 육중한 현관 유리문을 밀고 계단을 내려왔다. 비구름이 걷힌 자리로 쏟아져 내리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축축하게 젖은 아스팔트 위에서 부서졌다...."
"1. 영장실질심사의 복도 전주지방법원 남원지원 복도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묵직한 가죽 구두 소리가 울렸다. 강태석은 손목에 감긴 푸른색 포승줄과 은빛 수갑을 양복 외투 소매 속으로 찔러 넣은 채 턱을 치켜들었다. 남원 시내를 주름잡던 민선 1기 시장의 얼굴에..."
"1. 낯선 청사의 새벽 새벽 다섯 시의 남원 하늘은 잿빛 먹물을 듬뿍 머금은 솜뭉치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리산 서쪽 골짜기를 타고 불어오는 축축한 바람이 전주지방검찰청 남원지청의 낡은 붉은 벽돌 외벽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수령 수십 년은 족히 넘은 향나무..."
"1. 흙탕물 위의 정적 요천 제1공구 둑길을 가득 메웠던 흙탕물 냄새가 멎어가는 빗줄기 사이로 짙게 번져 올랐다. 남원경찰서 전경 버스의 번쩍이던 경광등 불빛도, 수갑을 찬 채 진흙탕 바닥에서 악을 쓰던 강태석의 비명도 대검 수사관들의 호송 차량 문이 닫히며 차단되..."
"1. 놋쇠 풍경 아래 남겨진 온기 삼거리 김밥집의 낡은 나무 미닫이문이 다시 닫히며 처마 끝의 놋쇠 풍경이 길고 맑은 여운을 남겼다. 딸그랑, 딸랑. 어스름한 저녁 공기 사이로 퍼져 나가던 쇳소리는 밤안개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었다. 가게 안에는 참기름의 고소한..."
"1. 붉게 물든 요천의 황혼 남원 시내를 관통하는 요천(蓼川)의 물결 위로 핏빛에 가까운 붉은 노을이 길게 드리워졌다. 검은색 대검찰청 지휘 세단의 뒷좌석 창문 너머로 비치는 풍경은 7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처연했다. 차창을 스쳐 지나가는 요천 제방 길목에는..."
"1. 멈추어 선 빗줄기 호남고속도로를 가로지르며 세차게 차창을 두드리던 장대비는 전라북도 도계를 넘어서며 서서히 잦아들었다. 검붉은 황톳물을 거칠게 튀기며 젖은 아스팔트 위를 맹렬히 질주하던 대검찰청 특별수사본부 지휘 세단의 와이퍼가 거친 마찰음을 내며 한 템포 느..."
"1. 빗속의 긴급 전언 폭우가 남원(南原)의 밤하늘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깨진 기와 틈새로 흘러내린 빗물이 관사 뜰의 자갈을 요란하게 때렸다. 관사 2층 집무실에 서 있던 성재환(成宰桓)은 손에 쥔 서류철을 거두고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흙탕물이 이미 남원..."
"1. 흙탕물 속의 사투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요천(蓼川)의 성난 파도가 포효하듯 대지를 사정없이 집어삼키고 있었다. 붕괴된 제1공구 콘크리트 제방의 거대한 파열구 틈새로 터져 나온 누런 흙탕물은 남원 구도심 하정리와 동충동의 비탈진 골목길을 삽시간에 집채만 한 탁..."
"1. 빗속의 경고음 삼거리 김밥집의 낡은 유리창 위로 거센 폭우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렸다. 하늘에 먹구름이 겹겹이 들어차며 대낮처럼 밝아야 할 시간조차 칠흑 같은 암흑으로 물들여 버린 지 오래였다. 처마 끝을 타고 떨어지는 낙숫물은 이미 줄기를 이루다 못해 세..."
"1. 흙벽 너머의 침묵 새벽의 냉기는 처마 끝을 타고 흘러내려 덜컹거리는 유리창 틈새로 스며들었다. 깨진 유리창을 투명 박스 테이프로 얼기설기 덧댄 자리가 바람을 맞아 비명 같은 파열음을 토해냈다. 삼거리 김밥집의 좁은 홀 한가운데에는 뜯겨 나간 흙벽의 잔해와 함..."
"1. 어둠 속의 비밀 요정 서울 종로구 혜화동 외곽, 높다란 붉은 벽돌 담벼락에 둘러싸인 한옥 요정 청운각(靑雲閣)의 정원은 깊은 밤의 정적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수령 백 년은 족히 넘은 적송들이 서치라이트 불빛을 받아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웠고, 처마 밑마다 청사초..."
"1. 새벽 안개와 밥 짓는 온기 남원 동문 우체국 뒷골목의 새벽은 언제나 푸르스름한 안개 속에서 숨을 쉬었다. 습기를 듬뿍 머금은 지리산 자락의 서늘한 바람이 삼거리 골목 어귀를 스치며 메마른 흙먼지를 낮게 흩뿌렸다. 골목 어귀에 자리 잡은 삼거리 김밥집의 처마..."
"1. 흑청색 선서문 법무부 대회의실의 공기는 얼어붙은 듯 무겁고 차가웠다. 단상 정면에 걸린 거대한 태극기 아래로 은빛 독수리 흉장이 박힌 짙은 남빛의 검찰 깃발이 서슬 퍼런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단정하게 정돈된 검은색 제복과 목깃을 빳빳하게 세운 흰색 와이셔..."
"1. 흙먼지 낀 유리창 너머로 아침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남원 동문 우체국 뒷골목 삼거리 김밥집 앞은 평소와 다른 기묘한 긴장감에 짓눌려 있었다. 밤새 찬 이슬을 머금은 함석지붕 위로 눅눅한 쇠 냄새가 번졌다. 투명 박스 테이프로 촘촘히 기워진 전면 통유리창 너..."
"1. 요천각의 비밀 장부 남원 시내를 굽어보는 요천 변의 유서 깊은 요정 요천각(蓼川閣) 난초실에는 초가을의 눅진한 밤공기 대신 에어컨 냉기와 시가 연기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옻칠을 한 커다란 자개상 위에는 쇠고기 육사시미와 최고급 양주병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
"1. 붉은 줄과 푸른 잉크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 사법연수원 본관 4층 대강의실의 공기는 언제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했다. 칠판을 가르는 백묵의 건조한 마찰음과 수백 장의 법률 문서가 일제히 넘어가는 파열음만이 규칙적인 숨소리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1. 지하로 번지는 구둣발 소리 남원의료원 지하 복도의 공기는 늘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벽면을 타고 흐르는 희미한 소독약 냄새 사이로 젖은 시멘트 특유의 곰팡내와 향 연기가 뒤엉켜 숨통을 죄어왔다. 희미한 형광등 불빛이 깜빡일 때마다 바닥에 깔린 녹색 우레탄..."
"1. 삼베옷과 하얀 리본 지하 1층 복도의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은 위태로운 소리를 내며 파리한 백색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지하 특유의 퀴퀴한 곰팡이 냄새, 코를 찌르는 크레졸 소독약 냄새, 그리고 오래 닫혀 있던 철문에서 번져 나온 붉은 녹내가 뒤섞여 숨을 들이쉴..."
"1. 멎어가는 숨소리 남원의료원(南原醫療院) 본관 3층 중환자실 앞 복도의 형광등 하나가 신경질적으로 깜빡거렸다. 지지직거리는 전류음이 스산한 새벽 공기를 짓누르며 하얗게 바랜 타일 바닥 위로 엷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지유는 무릎 위에 두 손을 단정히 모은 채 플..."
"1. 신림동의 초인종과 절룩이는 발소리 관악산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삭풍이 신림동 9동 비탈길을 매섭게 훑고 지나갔다. 밤사이 내리던 빗줄기는 멎었으나, 가파른 골목길 바닥에는 살얼음이 엷게 끼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307호의 낡은 철문..."
"1. 빗속의 계단과 서늘한 결심 관악산 자락을 적시던 밤비는 새벽이 다 되도록 그칠 줄을 몰랐다. 고시원 좁은 복도에 켜진 백열전구가 미약하게 깜빡거리며 시멘트 벽면에 눅눅한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계단을 딛는 성재환(成宰桓)의 발소리는 유난히 무거웠다. 바..."
"1. 빗속의 귀환과 닫힌 문 신림동 9동의 가파른 비탈길 위로 끈적한 밤비가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백조당 인쇄소 앞 녹색 공중전화 부스에서 내던져지듯 튀어나온 성재환(成宰桓)의 걸음은 이미 제 궤도를 잃고 있었다. 귀청을 찢어발기던 쇠파이프 파쇄음과 유리창 깨지..."
"1. 신림동의 차가운 빗줄기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 골목은 해질 무렵부터 눅눅한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백조당 인쇄소 앞마당에는 갓 찍어낸 모의고사 문제집과 고시 잡지 냄새가 눅진한 기름내와 뒤섞여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좁은 차도를 따라 늘어선 헌책방..."
"1. 어둠을 찢는 엔진 소리 골목의 희뿌연 새벽안개를 가르고 육중한 검은 물체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남원시장(南原市長) 강태석(姜泰錫)의 시찰용 관용차인 로얄 살롱이었다. 보닛 끝에 부착된 남원시 상징 봉황 깃발이 축축한 새벽바람에 젖어 무겁게 펄럭였다. 차량이..."
"1. 새벽안개와 흩어진 파편 남원(南原) 동문 우체국 뒷골목의 새벽은 유난히 차가웠다. 요천(蓼川) 물줄기를 타고 번져온 짙은 물안개가 삼거리 어귀의 낮은 기와지붕들을 잿빛으로 덮어 누르고 있었다. 깨진 유리창 틈으로 들이치는 축축한 바람에서는 밤새 뿜어져 나온..."
"1. 어둠이 삼킨 골목의 숨소리 남원 동문 우체국 뒤란을 타고 번지는 밤안개는 요천(蓼川)의 물비린내를 품어 축축하고 차가웠다. 자정을 훌쩍 넘긴 구도심의 좁은 골목길은 낮 동안의 소란을 모조리 삼켜버린 채 기괴할 만큼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었다. 가로등 하나가..."
"1. 붉은 상흔과 새벽의 연기 새벽 네 시 반, 눅눅한 안개가 골목 바닥을 낮게 기어 다녔다. 동문 우체국 뒷골목의 좁은 삼거리는 쥐 죽은 듯 가라앉아 있었으나 공기에는 매캐한 시너 냄새와 덜 마른 붉은 래커 페인트의 비릿한 악취가 엉겨 붙어 있었다. 한지유는 굳..."
"1. 밥물 끓는 새벽의 불협화음 동문 우체국 뒷골목의 어둠은 늘 쌀뜨물 냄새와 참기름 타는 구수한 냄새로 먼저 지워지곤 했다. 처마 끝에 매달린 백열전구가 젖은 흙바닥을 주황빛으로 희미하게 물들이는 새벽 네 시 반. 한지유는 손끝이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 지하수에..."
"1. 짓밟힌 찻잔과 새로운 흉계 남원시청 2층 시장 집무실의 묵직한 마호가니 출입문 너머로 날카로운 파열음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바닥에 나뒹군 청자 찻잔의 파편 사이로 뜨거운 작설차가 누런 웅덩이를 그리며 카펫을 적셔 들어갔다. 소방과 이진구 계장은 무릎을 꿇은..."
"1. 어둠을 뚫고 멎어 선 바퀴 푸르스름한 새벽안개가 동문 우체국 뒷골목의 좁다란 골목길을 짓누르고 있었다. 남원의료원 세탁실에서 밤새 락스와 피비린내에 절어 돌아온 한지유의 두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웠다. 고무장갑 속에서 땀과 차가운 물에 퉁퉁 불어터진 손가락 마..."
"1. 붉은 관제 딱지 유리문 틈새로 스며든 새벽바람이 성에 낀 간판 모퉁이를 차갑게 긁어내렸다. 삼거리 김밥집 조리대 아래는 여전히 짭조름한 참기름 내와 옅은 락스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어제 남원시청 위생과 직원들이 군홧발처럼 짓밟고 간 자리였다. 깨진 참기름..."
"1. 새벽의 도마 소리 남원 동문 우체국 뒷골목의 어둠은 언제나 눅진한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동이 트기 전의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삼거리 김밥집의 낡은 환풍기는 쇳소리를 내며 헛돌았다. 탁, 탁, 탁, 탁. 일정한 간격으로 도마를 울리는 칼질 소리만이 적막..."
"1. 가라앉지 않는 먼지 남원 동문 우체국 뒷골목 삼거리 김밥집의 낡은 함석 차양 밑으로 스며드는 바람은 여전히 쇠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아스팔트 바닥에는 며칠 전 들이닥쳤던 포클레인의 궤도 자국이 흉터처럼 깊게 파여 있었고, 빗물에 씻겨 내려가지 못한 붉은 래커..."
"1. 멈춰 선 쇠바퀴 요천(蓼川)을 따라 불어오던 눅눅한 안개가 동문 우체국 뒷골목의 좁은 처마들을 차갑게 적시고 있었다. 새벽 다섯 시 십오 분을 막 넘긴 시각이었다. 삼거리 김밥집의 낡은 슬레이트 지붕 바로 위에서 허공을 찢어발길 듯한 쇠스랑 소리가 멎었다...."
"1. 붉은 환호와 승자의 제단 남원 실내체육관(南原室內體育館) 바닥에 깔린 녹색 우레탄 위로 개표 방송을 알리는 확성기 소리가 찢어질 듯 울려 퍼졌다. 개표율 구십팔 퍼센트. 단상 중앙에 설치된 거대한 상황판 위로 붉은색 막대그래프가 경쟁 후보들의 푸른색과 노란색..."
"1. 붉은 낙인과 가시돋친 침묵 새벽 비가 그친 남원 동문 우체국 뒷골목 삼거리 김밥집 앞은 비릿한 페인트 냄새와 기름때 섞인 흙먼지로 질척거렸다. 찌그러진 셔터 문과 흰 벽면에는 시뻘건 래커로 휘갈겨 쓴 '철거'라는 두 글자가 흉측한 상처처럼 엉겨 붙어 있었다...."
"1. 새벽 도마 위의 찬 바람 새벽 네 시의 공기는 언제나 비릿한 어둠을 품고 있었다. 남원(南原) 동문 우체국 뒷골목, 낮게 드리운 삼거리의 함석지붕 위로 서리가 내려앉는 소리가 서걱거렸다. 유리창 틈새로 스며드는 삭풍에 백열전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노란 불..."
"1. 시장 집무실의 새 주인 남원시청 2층 시장 집무실의 육중한 마호가니 원목 문이 거칠게 밀려 열렸다. 시청 복도에 길게 깔린 자주색 카펫 위로 삼거리 토건 출신의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흙먼지 묻은 구둣발을 당당히 디디며 줄지어 들어섰다. 그들의 선두에는 이제 막..."
"1. 흙먼지 이는 남원역 광장 남원역 광장 너머로 칠월의 뙤약볕이 내려앉아 메마른 아스팔트 바닥에서 아지랑이가 이글거렸다. 붉은 벽돌 역사를 등지고 늘어선 선거 유세 차량 위에는 커다란 확성기가 매달려 있었다. 귀청을 찢는 노랫가락과 구호 소리가 삼거리 어귀의 나..."
"1. 멈춰 선 승강장의 침묵 철로 위를 집어삼킬 듯 흩날리던 흰 연기가 마침내 흩어졌다. 기적 소리가 멎은 구 남원역(舊 南原驛) 승강장에는 매캐한 석탄 냄새와 축축하게 젖어 드는 초여름의 비린 풀내음만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서울로 떠나간 통일호 열차가 남기..."
"1. 남원역의 이른 아침 안개는 지리산 자락에서 흘러내려 남원분지의 붉은 흙바닥을 낮게 적시고 있었다. 늦봄의 새벽공기는 서늘했고, 흙먼지와 디젤 기름 냄새가 뒤섞인 구 남원역 플랫폼 위로는 차가운 이슬이 비늘처럼 내려앉았다. 서울행 통일호 열차가 들어오기까지는..."
"1. 어둠 속의 탈출 남원 시장 관사 2층 방 안의 공기는 얼어붙은 쇳덩이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굳게 닫힌 목재 창문 틈새로 초여름의 밤바람 대신 눅눅한 흙내와 비 갠 뒤의 비릿한 풀잎 냄새가 스며들었다. 책상 위에는 백부에게 물려받은 독일제 검은 옻칠 만..."
"1. 새벽의 적막과 호출 동이 트기 전의 남원(南原) 시내는 차가운 물안개에 잠겨 있었다. 요천(蓼川) 수면 위로 피어오른 희뿌연 안개는 강둑을 넘어 시내 외곽의 시장 관사 붉은 벽돌담을 은밀하게 휘감았다. 2층 방 창틀에 기댄 성재환은 밤새 단 한숨도 눈을 붙이..."
"1. 젖은 신발과 검은 세단 삼거리 김밥집의 낡은 유리문을 흔드는 빗소리는 갈수록 거칠어졌다. 좁은 홀 안에는 참기름의 고소한 내음과 뚝배기에서 피어오르는 달걀찜의 온기 어린 수증기가 자욱하게 맴돌고 있었다. 흠뻑 젖은 머리칼에서 흘러내린 빗방울이 재환의 교복 옷..."
"1. 새벽 안개와 잉크 한 방울 이른 새벽, 남원(南原) 시내 외곽에 자리한 시장 관사(官舍)의 이층 서재 창문 너머로는 푸르스름한 박명이 짙게 깔려 있었다. 간밤에 도청 기획관리실장과 부친 성호석(成浩錫) 사이에서 오가던 낮은 통화 음성은 마치 끈적이는 타르처럼..."
"1. 아침 조례와 붉어진 귀밑 이른 아침의 교실은 간밤의 냉기를 채 털어내지 못한 채 웅성거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칠판 한구석에는 큼지막한 분필 글씨로 춘향제 기념 연합 학생 미술전과 교내 축제 부스 설치 일정이 적혀 있었다. 성재환(成宰桓)은 멍하니 창밖을 응..."
"1. 가슴에 박힌 글자들 카운터 바닥에 떨어진 낡은 종이 서류에는 묵은 먼지 냄새와 함께 지독하게 서늘한 공기가 묻어 있었다. 누렇게 바랜 서류 상단에는 선명하게 찍힌 관인과 함께 낯익다 못해 심장을 도려내는 이름 석 자가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성호석(成浩錫)..."
"1. 돌담길의 엇갈림과 발걸음 광한루원 서문 쪽문 밖으로 터져 나온 거친 숨결이 사월의 서늘한 밤공기 속에서 하얗게 부서져 흩어졌다. 성재환은 무릎을 짚은 채 허리를 굽히고 숨을 몰아쉬었다. 귓전을 때리는 심장 박동 소리가 요천의 물소리마저 집어삼킬 듯 요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