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의 표적이 되다
1. 새벽의 먹구름과 붉은 깃발
남원의 하늘은 새벽부터 잿빛으로 내려앉아 있었다.
동문 우체국 골목을 빠져나온 바람에는 아직 채 가시지 않은 흙탕물 냄새와 타버린 아스팔트의 비릿한 잔향이 섞여 있었다.
지리산에서 불어오는 삭풍이 요천의 검은 수면을 긁어내듯 흔들고 지나갔다.
전주지방검찰청(全州地方檢察廳) 남원지청(南原支廳) 정문 앞은 이른 새벽 6시가 채 되기도 전에 이미 팽팽한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철문 앞 도로변에는 대형 관광버스 석 대가 시동을 켠 채 매캐한 경유 매연을 토해내고 있었다.
'성재환 검사는 표적 편파 수사를 즉각 중단하라!'
'가문의 원한으로 조작된 보복 수사, 남원 시민은 분노한다!'
'사적 치정으로 영세 상가 비호하는 정치 검사 물러나라!'
새빨간 페인트로 갈겨쓴 현수막과 어깨띠를 두른 수십 명의 사내들이 피켓을 쥐고 정문 양옆을 촘촘히 가로막았다.
그들의 앞머리에는 구도심 번영회장 오 씨와 한양토건 현장 십장들이 서성거리며 담배 연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밤새 남원일보 1면을 도배했던 강태석의 옥중 기자회견 기사는 이미 수백 장의 전단으로 복사되어 바닥에 어지럽게 짓밟히고 있었다.
"야, 똑바로 들어! 성재환이 그놈 차 들어오면 한 발짝도 못 움직이게 보닛 위로 드러누워! 대검에서 감찰반 내려오면 그 앞에서 계란 던지고 악을 써야 그림이 나온다고!"
오 회장의 거친 목소리가 새벽 찬 공기를 갈랐다.
그들의 주머니마다 한양토건 박진철이 쥐여준 돈 봉투의 두툼한 감촉이 들어차 있었다.
공포와 탐욕으로 매수된 군중의 눈빛은 맹목적인 증오로 번들거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너진 제방 밑에서 수많은 이웃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던 살인범 강태석의 방패막이가 되고 있다는 사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자신들의 상가 분양권과 기득권만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젊은 검사를 산 제물로 삼으려 하고 있었다.
안개 낀 아스팔트 바닥 위로 전단 조각들이 낙엽처럼 굴러다녔다.
그것은 합법의 탈을 쓴 지방 토착 권력이 마지막 발악으로 축조해 올린 추악한 진지였다.
2. 거악의 시나리오
남원지청 2층 204호 특별수사전담 검사실.
창밖으로 번져가는 확성기 소음과 성난 고함이 두꺼운 이중창을 뚫고 희미하게 웅웅거렸다.
책상 위에는 간밤에 남원지원 문성현 판사로부터 정식 발부받은 강태석에 대한 추가 구속영장 원본이 놓여 있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 그리고 특수살인교사.
그 붉은 직인 옆에는 오늘 아침 남원시청 건설교통국과 시장 관사에 대한 2차 전격 압수수색 영장이 서슬 퍼런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성재환은 코트도 벗지 않은 채 책상 모서리에 손을 얹고 서 있었다.
충혈된 그의 두 눈은 굳게 닫힌 철문 밖의 어둠을 차갑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서 결재 서류철을 정리하던 강태훈 수사관이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돌아섰다.
"검사님, 방금 도계 톨게이트 쪽 검문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강태훈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대검찰청(大檢察廳) 감찰본부 차량 두 대가 남원 톨게이트를 통과했습니다. 타고 있는 사람은 감찰1과 소속 정태섭 부장검사와 수사관 네 명입니다."
성재환의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예상보다 삼십 분 빠르군."
"단순한 현장 점검이 아닙니다. 정태섭 부장은 과거 김문현 의원이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시절 데리고 있던 직계 사단입니다. 손에 들고 온 서류가…… 대검 감찰위원회의 긴급 직무정지 명령서와 압수수색 수사 기록 반환 요구서라고 합니다."
강태훈이 마른침을 삼키며 주먹을 쥐었다.
"강태석의 기자회견이 터진 지 불과 열두 시간 만입니다. 공문 접수도, 감찰위 정식 소집도 없이 새벽에 팩스로 결재를 올리고 현장으로 날아왔습니다. 이건 절차를 완전히 무시한 표적 사냥입니다. 지청 정문의 시위대도 저들과 시간을 맞춘 겁니다. 검사님이 정문에서 시위대에게 멱살을 잡히고 계란을 맞는 그 순간, 감찰반이 들이닥쳐 '품위 유지 의무 위반'과 '피의자 진술 조작 의혹'을 구실로 현장에서 수사권을 박탈하겠다는 속셈입니다!"
강태훈의 말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강태석이 전주교도소 접견실에서 터뜨린 눈물의 호소는 단순한 발악이 아니었다.
그것은 중앙의 여당 내무위원장 김문현과 법무부 내 사조직이 성재환을 옭아맬 수 있도록 사전에 정밀하게 짜 맞춘 ‘신호탄’이었다.
7년 전 성호석 시장과의 악연, 그리고 삼거리 김밥집 한지유와의 사적 치정.
사건의 본질인 40억 비자금 횡령과 덤프트럭 청부 살인미수라는 거대한 범죄를 순식간에 '검사의 사적인 보복극'으로 둔갑시키는 저열한 프레임이었다.
성재환은 천천히 안주머니에서 독일제 검은 옻칠 만년필을 꺼냈다.
금빛 닙에 맺힌 흑청색 잉크가 형광등 불빛 아래 서늘하게 번뜩였다.
Fiat justitia, ruat caelum.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
그는 만년필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차가운 옻칠의 감촉이 타오르는 분노를 서릿발 같은 이성으로 가라앉혀 주었다.
"강 반장."
"예, 검사님."
"남원시청 2차 압수수색팀은 예정대로 7시 40분에 지청 뒷문으로 출발시킵니다."
"예? 하지만 감찰반이 도착해 직무정지를 통보하면 영장 집행 자체가 불법 논란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명령서가 내 손에 송달되기 전까지 나는 대한민국 검찰청법 제4조와 제7조에 따른 남원 관내 합법적 주임검사입니다. 형사소송법상 법원이 정식 발부한 영장의 집행은 검사의 권한이자 의무입니다. 어떤 내부 감사도 법원의 사법 통제를 우회해 법 집행을 사전에 중단시킬 권리는 없습니다."
성재환의 음성은 단단한 대리석처럼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김문현과 강태석이 원하는 것은 내가 이 방에 숨어 감찰관들과 서류 싸움을 벌이는 사이, 시청 지하 특수 금고와 관사 서재의 이면 합의서 원본을 빼돌려 소각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퇴로를 열기 전에, 우리는 심장을 찔러야 합니다."
3. 칼날 위의 검사
쿵, 쿵, 쿵.
복도를 울리는 거친 군화 소리와 함께 204호 검사실 문이 거칠게 밀쳐 열렸다.
남원지청 당직 계장과 방호원들이 사색이 되어 물러서고, 짙은 감색 코트를 입은 사내들이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가장 앞장선 사내는 각진 턱에 차가운 금테 안경을 쓴 마흔 후반의 남자였다.
대검찰청 감찰본부 감찰1과장 정태섭 부장검사였다.
그의 뒤로 감찰 수사관 넷이 검은 가죽 서류 가방을 든 채 일사불란하게 검사실 입구를 봉쇄하듯 둘러섰다.
방 안의 공기가 단숨에 영하로 얼어붙었다.
강태훈 수사관과 실무관들이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어적인 태세를 취했다.
정태섭은 흙 묻은 구두를 거침없이 바닥에 디디며 책상 앞에 섰다.
그의 시선이 성재환의 단정한 정장과 책상 위에 놓인 영장철을 오만하게 훑었다.
"성재환 검사."
정태섭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성재환은 앉지도, 고개를 숙이지도 않은 채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대검 감찰1과에서 이 새벽에 무슨 일입니까, 정 부장님."
"무슨 일? 지금 밖에서 울리는 저 시민들의 고함이 귀에 들리지 않나 보지?"
정태섭이 비웃음을 머금으며 품 안에서 붉은 직인이 선명한 공문 한 장을 꺼내 책상 위에 탁 내려놓았다.
'대검 감찰 제1996-4102호, 직무수행 적정성 특별감찰 착수 및 직무집행 정지 통보서'.
공문 상단에는 법무부 기획관리실을 거쳐 대검 감찰위원장 명의의 서명이 날인되어 있었다.
"피의자 강태석의 긴급 기자회견 및 남원 시민 수백 명의 진정이 법무부와 대검에 동시 접수됐다. 사건의 주임검사가 피의자와 과거 7년 전 부친 대부터 얽힌 사적 원한 관계에 있으며, 피해 점포로 지목된 삼거리 김밥집의 여주인과 부적절한 사적 연인 관계를 맺고 공권력을 남용했다는 중대한 비위 첩보야."
정태섭의 안경 너머 눈빛이 독사처럼 번뜩였다.
"검찰청법 제43조 및 검사윤리강령 제3조, 사적 이해관계에 따른 공정성 훼손 혐의다. 검찰총장의 긴급 재가를 받아 자네의 남원 관내 모든 사건 수사 지휘권을 즉각 정지한다. 지금 이 시각부로 요천 제방 및 춘향 테마랜드 관련 수사 기록 일체와 압수 증거물을 감찰반에 인계하고, 자네는 관용차에 탑승해 서초동 대검 감찰본부로 동행해야겠어."
서슬 퍼런 명령이었다.
지청 수사관들의 숨소리조차 멎었다.
대검 감찰부장의 직무정지 명령은 평검사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직무가 정지되는 순간 손에 쥔 모든 영장은 무력화되고, 피의자로 전락해 불명예 파면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성재환은 눈길 한 번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는 책상 위의 직무정지 통보서를 손끝으로 집어 들지도 않은 채, 오히려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태섭 부장님."
"뭐야?"
"검찰청법 제7조 제2항, 그리고 대검찰청 특별수사본부 훈령 제12조를 읽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정태섭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성재환은 책상 서랍에서 또 다른 묵직한 서류철을 꺼내 책상 중앙에 내려놓았다.
그 표지에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정종길의 친필 서명과 검찰총장 특임 직인이 찍혀 있었다.
'남원 정경유착 및 관급공사 비자금 특별수사본부 설치 및 파견 검사 독립 수사 지휘권 보장 훈령'.
"본 검사는 단순한 남원지청 소속 평검사가 아닙니다. 대검 중수부장과 검찰총장이 공동 날인한 특임 훈령에 의해 관내 성역 없는 부패 척결을 위해 직통 배속된 특별수사 주임검사입니다."
성재환의 음성이 검사실 벽을 서늘하게 울렸다.
"특별수사 주임검사에 대한 직무 배제 및 관할 변경은 검찰청법상 감찰위원회의 단독 권한이 아니며, 대검 중앙수사본부장과의 공식 합의 및 고검 검사장급 3인 이상의 적격심사위원회를 거쳐야만 효력이 발생합니다. 부장님께서 들고 오신 이 서류는 정식 감찰위원회 소집도 없이, 김문현 의원실의 전화를 받은 법무부 기조실이 새벽에 졸속으로 기안한 절차적 위법 공문입니다."
"성재환!"
정태섭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가 지금 감찰본부의 지휘를 정면으로 거부하겠다는 건가? 네 놈 애비 성호석이 내무부에서 떨고 있는 꼴을 보고도 정신을 못 차려? 감찰 거부는 즉각적인 징계 파면 사유야!"
"파면을 하든 해임을 하든, 법률이 정한 적법 절차를 거치십시오."
성재환이 걸음을 내디뎌 정태섭의 면전으로 다가섰다.
그의 키는 정태섭보다 반 뼘이나 컸고, 그가 내뿜는 결기는 감찰관 네 명의 기세를 단숨에 압도하고 있었다.
"그전까지, 전주지방법원이 발부한 적법한 영장의 집행을 방해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형법 제136조 공무집행방해, 그리고 제123조 직권남용의 현행범입니다. 정 부장님, 지금 감찰 수사관들을 물리지 않으시면 감찰권 남용으로 즉시 긴급 체포 절차에 들어가겠습니다."
"이, 미친 새끼가……! 감찰 검사에게 체포를 운운해?"
정태섭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양측 수사관들의 주먹에 힘이 들어가며 일촉즉발의 육탄전이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4. 거리를 뚫고 오는 발걸음
같은 시각, 남원 시내 동문 우체국 뒷골목.
어스름한 새벽안개 사이로 희미한 백열등 불빛이 새어 나왔다.
삼거리 김밥집의 깨진 통유리창 너머, 조리대 앞에는 한지유가 서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 마디마디는 지난밤 붉은 유성 페인트를 문질러 벗겨내느라 벗겨진 살갗으로 벌겋게 짓물러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놀림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정갈했다.
참기름 냄새가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흰 쌀밥을 김 위에 가지런히 펴 바르고, 손수 조려낸 우엉과 단무지, 당근과 계란지단을 단단하게 말아 쥐었다.
칼날이 도마를 두드리는 규칙적인 소리가 고요한 새벽 공기를 갈랐다.
탁, 탁, 탁.
가게 구석에서 젖은 행주를 빨던 윤하은이 참지 못하고 달려와 지유의 팔을 붙잡았다.
하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지유야, 제발 그만해. 응? 지금 지청 앞이 어떤지 알아? 번영회 깡패들이랑 한양토건 십장들이 버스까지 대절해서 몰려왔대! 신문에 난 그 거짓말 전단지를 뿌리면서 성 검사님을 때려죽이겠다고 꽹과리를 치고 난리가 났다고! 그런데 네가 거길 왜 가! 네가 가면…… 저 악마 같은 것들이 너한테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하은의 절규에도 지유는 묵묵히 썰어낸 김밥을 은박지에 정성스럽게 쌌다.
한 줄, 두 줄.
차곡차곡 쌓인 은박지 뭉치들이 단정한 보온 도시락 통 안으로 들어갔다.
지유는 마지막 뚜껑을 닫고,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하얀 면 보자기로 도시락을 정갈하게 감싸 묶었다.
매듭을 묶는 그녀의 손등 위로 붉게 터진 상처가 도드라져 보였다.
"하은아."
지유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맑았으나, 그 안에는 깊은 요천의 강물보다 더 단단한 결기가 서려 있었다.
"재환이는 지금 저 사람들 한가운데서 혼자 싸우고 있어."
"지유야……."
"7년 전에도 그랬어. 재환이가 남원을 떠나던 날, 아무도 그 애 편을 들어주지 않았어. 권력을 쥔 어른들이 죄를 덮으려고 열여덟 살짜리 애를 기차에 태워 쫓아낼 때도, 난 무릎이 깨져서 울기만 하느라 손 한번 제대로 못 잡아줬어."
지유는 보자기를 가슴에 품어 안았다.
온기가 얇은 셔츠를 뚫고 심장 언저리로 전해졌다.
"저들이 왜 신문에 내 이름을 올리고, 김밥집을 입에 올리며 더러운 거짓말을 하는지 알아? 재환이를 부끄럽게 만들려고 그러는 거야. 우리가 나눈 마음이, 우리가 지켜온 약속이 추잡한 죄악인 것처럼 만들어서 재환이 손에 쥐어진 법의 칼을 떨어뜨리려는 거야."
지유의 입술이 단호하게 닫혔다.
"내가 숨으면 재환이는 진짜 죄인이 돼. 내가 도망치면 재환이가 지키려는 정의가 진짜 더러운 복수가 돼버려. 난 부끄러운 짓 한 적 없어. 우리 어머니도,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도, 그리고 재환이도 단 한 번도 남의 것을 탐하거나 거짓으로 산 적 없어."
"하지만…… 저 사람들이 널 해치면 어떡해!"
"남원은 내 고향이야. 내가 태어나 자란 내 땅이고, 우리 어머니의 피땀이 묻은 거리야."
지유는 가게 문을 밀고 나섰다.
차가운 새벽바람이 그녀의 뺨을 스치며 단정한 단발머리를 흩날렸다.
그녀의 걸음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가슴에 소중히 품어 안은 도시락의 온기만이 어둠 속에서 그녀의 유일한 무기였다.
하은은 울음을 삼키며 지유의 뒤를 바짝 쫓아 걸음을 옮겼다.
5. 치욕의 문턱
"물러서라! 물러서지 않으면 특수공무집행방해로 전원 영장 청구하겠다!"
남원지청 정문 앞, 당직 경찰관들과 청원경찰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결사적으로 밀려드는 시위대를 막아서고 있었다.
그러나 백 명이 넘는 군중의 힘줄 선 팔뚝과 피켓이 쇠창살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쾅!
쾅!
쾅!
"성재환 나와라! 가문의 원한 갚으려고 시장님을 모함한 표적 검사 물러나라!"
"삼거리 김밥집 기둥서방 성재환은 옷을 벗어라!"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상스러운 욕설과 모욕이 메가폰을 타고 지청 청사 벽면을 난타했다.
사내들이 던진 날계란이 철문에 부딪혀 누런 노른자를 질질 흘리며 흘러내렸다.
그 살벌한 아수라장의 골목 모퉁이를 돌아, 하얀 보자기를 품에 안은 여자가 홀로 걸어 들어왔다.
단정한 남색 카디건에 단정한 면바지.
화장기 없는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는 시선에는 티끌만 한 공포도 서려 있지 않았다.
군중 속에서 담배를 피우던 오 회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저, 저년……! 삼거리 김밥집 년이다! 저년이 제 발로 기어왔어!"
오 회장의 고함 한마디에 백여 개의 시선이 일제히 지유에게로 쏠렸다.
웅성거리던 소음이 일순간 맹수의 포효 같은 살기로 뒤바뀌었다.
"야! 저년 잡아라!"
"성재환이 첩년이 도시락 싸 들고 내통하러 왔다!"
시위대가 썰물처럼 돌아 지유를 향해 쇄도했다.
순식간에 거친 장정 대여섯 명이 지유의 앞길을 막아서며 험악하게 어깨를 밀쳤다.
"이 독한 년, 여기가 어디라고 낯짝을 들이밀어? 남원 바닥 물 다 흐려놓고, 시장님을 감옥에 쳐넣으니까 속이 시원하냐?"
한양토건의 십장이 지유의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지유는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그녀는 가슴에 품은 도시락을 두 팔로 더욱 단단히 끌어안으며, 십장의 충혈된 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비키세요."
지유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으나, 귓전을 때리듯 서늘하고 맑았다.
"뭐, 뭐야?"
"비키라고 했습니다. 이 길은 당신들만의 길이 아닙니다. 남원 시민 모두가 다니는 길입니다."
"이년이 미쳤나! 어디서 눈을 부라려!"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사내가 욕설을 내뱉으며 들고 있던 날계란을 지유의 얼굴을 향해 내던졌다.
퍽!
계란이 지유의 왼쪽 어깨를 강타하며 깨졌다.
비릿한 노른자와 흰자가 카디건을 타고 흘러내렸다.
군중 속에서 비열한 환호와 조소가 터져 나왔다.
뒤따라오던 윤하은이 비명을 지르며 지유의 앞을 가로막았다.
"지유야! 안 돼! 너희들 사람이야? 짐승이야? 어떻게 여자한테 이런 짓을 해!"
하은이 울부짖으며 사내들을 밀쳐내려 했지만, 거친 손길들이 하은의 팔을 잡아채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지유의 하얀 보자기 위로 흙먼지와 짓밟힌 전단 조각들이 튀었다.
또 다른 계란과 찌그러진 깡통이 날아들었다.
지유는 눈을 감지 않았다.
이마에 계란 껍데기가 스치며 붉은 핏방울이 맺혔지만, 그녀는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한 걸음, 다시 한 걸음을 지청 철문을 향해 내딛었다.
그녀가 딛는 걸음마다 부패한 권력이 던진 오물이 묻어났지만, 그녀의 눈빛은 단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칼을 쥔 검사 성재환의 등 뒤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온몸을 방패로 내어놓은 한 여인의 처절하고도 숭고한 침묵의 행진이었다.
6. 204호의 침묵을 깨다
"비켜라, 성재환! 감찰 거부는 즉각 체포 사유라고 경고했다!"
204호 검사실 내부의 대치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정태섭 부장검사가 감찰 수사관들에게 손짓을 하려는 찰나였다.
검사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강태훈 수사관이 수화기를 낚아채 귀에 댔다.
몇 초 지나지 않아, 강태훈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수화기를 쥔 그의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뭐라고? 누가…… 어디에 왔다고?"
강태훈의 시선이 성재환을 향했다.
그 눈빛 속에 담긴 형언할 수 없는 절망과 당혹감에, 성재환의 심장이 차갑게 덜컥 내려앉았다.
"강 반장. 뭡니까."
성재환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강태훈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검사님…… 지유 씨입니다."
"……뭐?"
"한지유 씨가…… 지금 지청 정문 앞에 혼자 걸어 들어왔습니다. 보온 도시락을 품에 안고…… 시위대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오고 있답니다. 놈들이 계란을 던지고, 욕설을 퍼붓고, 옷을 잡아채고…… 청원경찰들이 막으려 하지만 군중이 너무 많아서……!"
그 순간, 성재환의 뇌리 속에서 무언가 거대하게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7년간 단 한 번도 흐트러진 적 없던 그의 서늘한 이성이, 그 단단한 법조인의 가면이 산산조각 났다.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7년 전 구 남원역 승강장에서, 피 흘리는 무릎으로 기차를 향해 손을 뻗으며 울던 열여덟 지유의 얼굴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내가 법을 세우려는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내가 이 차가운 법복을 입고, 친부의 죄악까지 도려내며 피눈물을 삼켜온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던가.'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
거악을 단죄하기 위해서?
아니었다.
단 한 사람.
가장 낮고 억울한 자리에서, 권력의 발밑에 짓밟히면서도 끝내 자신과의 약속을 믿어주었던 그 여인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그가 쥔 법전은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고, 그가 찬 법복은 위선의 누더기일 뿐이었다.
성재환은 책상 위의 결재판을 거칠게 밀어젖혔다.
서류들이 공중으로 하얗게 흩날렸다.
그가 몸을 돌려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성재환! 어딜 가는 거야! 감찰 조사가 끝나기 전엔 한 발짝도 못 나간다!"
정태섭이 앞을 가로막으며 그의 어깨를 거칠게 붙잡았다.
감찰 수사관 둘이 즉각 성재환의 양팔을 결박하려 달려들었다.
그 순간, 성재환의 눈에 서린 것은 검사의 차가운 법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심장을 난도질당한 자의 서슬 퍼런 살기였다.
"놓아라."
성재환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검사실 바닥을 쪼갤 듯한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이 미친놈이……!"
정태섭이 기세에 밀리지 않으려 손에 힘을 주는 찰나,
성재환의 긴 팔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어깨를 쥔 정태섭의 손목을 틀어쥐고 단숨에 비틀어 꺾었다.
"크아악!"
정태섭의 비명과 함께 성재환은 감찰 수사관의 턱을 팔꿈치로 후려쳐 밀어냈다.
감찰관 둘이 바닥에 나뒹굴며 책상 모서리를 들이받았다.
정태섭이 바닥에 주저앉아 꺾인 손목을 감싸 쥐며 경악에 찬 눈으로 성재환을 올려다보았다.
성재환은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문을 부술 듯 박차고 복도로 뛰쳐나갔다.
"검사님!"
강태훈과 지청 수사관들이 무기를 챙기듯 뒤를 따랐다.
계단을 세 칸씩 뛰어내려 가는 성재환의 등 뒤로, 꺾이지 않는 분노의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7. 꺾이지 않는 약속
남원지청 1층 현관 유리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성재환이 쏟아져 나오는 아침 햇살 속으로 뛰쳐나왔다.
정문 철문 너머로, 흙먼지와 계란 파편이 자욱한 지옥 같은 광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시위대의 거친 손길들이 한 여자의 옷자락을 사정없이 흔들고 있었다.
지유의 머리칼은 계란 노른자로 젖어 뺨에 달라붙어 있었고, 이마에서는 가느다란 피 한 줄기가 흘러내려 턱 끝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두 팔은 여전히 하얀 보자기에 싸인 도시락 통을 부서져라 끌어안고 있었다.
그 어떤 모욕과 폭력 앞에서도, 그녀는 그 작은 온기를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았다.
"그 손 치워!"
지청 마당을 뒤흔드는 거대한 벼락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군중의 움직임이 일순간 얼어붙었다.
모든 시선이 계단을 박차고 질주해 내려오는 성재환에게 쏠렸다.
넥타이는 비뚤어져 있었고, 검은 코트 자락은 거친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항상 차갑고 엄격했던 성재환 검사의 얼굴은 난생처음 보는 분노와 처절한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두 눈은 오직 피를 흘리며 서 있는 지유만을 담고 있었다.
성재환은 바리케이드를 단숨에 걷어차 열어젖히고, 정문 철문을 향해 돌진했다.
"비켜! 비키지 않으면 전원 현행범으로 구속한다!"
청원경찰들이 황급히 쇠사슬을 풀자, 성재환은 열린 틈으로 뛰어나가 지유의 앞을 막아서던 한양토건 십장의 멱살을 낚아챘다.
거구의 십장이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아스팔트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우르르 몰려들던 사내들이 성재환의 눈에 서린 맹렬한 살기에 질려 본능적으로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섰다.
"검사면 다야? 계집질하러 나왔냐!"
뒤편에서 누군가 비명을 지르며 쇠파이프를 치켜들었지만, 성재환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오직 피투성이가 된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지유만이 존재했다.
"……지유야."
성재환의 목소리가 갈라져 터져 나왔다.
그는 떨리는 손을 뻗어 지유의 이마에 맺힌 피를 닦아냈다.
손가락 끝에 닿는 지유의 차가운 살결과 뜨거운 핏방울이 그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왜…… 왜 여길 왔어. 왜 이런 짓을 당하면서까지……."
재환의 눈시울이 붉게 타오르며 굵은 눈물 한 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법고시를 수석으로 패스하고, 서울지검 특수부의 칼날이라 불리며, 피도 눈물도 없이 거악을 베어 넘기던 젊은 검사가, 수백 명의 군중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지유는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며,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품에 안고 있던 하얀 보자기 도시락을 천천히 들어 올려, 재환의 떨리는 손 위에 얹어주었다.
보자기 위에는 계란 노른자와 흙탕물이 묻어 있었지만, 그 안에서 전해지는 밥의 온기는 여전히 따스했다.
"밥…… 먹어야지, 재환아."
지유의 갈라진 목소리가 성재환의 가슴을 후벼 팠다.
"어머니가 그러셨어. 사람은…… 정직한 밥을 먹어야 어떤 모진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다고."
지유는 손을 들어 재환의 뺨에 묻은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상처투성이인 그녀의 손가락 끝이 재환의 피부에 닿았다.
"난 괜찮아. 하나도 안 아파."
지유의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재환을 응시했다.
"네가 가려는 길이 얼마나 무섭고 외로운 길인지 알아. 세상 사람들이 다 널 손가락질하고, 거짓말로 널 진흙탕에 빠뜨리려 해도…… 넌 부끄러워하지 마. 네 등 뒤에 내가 있어. 난 7년 전에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여기서 널 기다릴 거야."
지유의 한마디 한마디가 새벽 하늘을 가르는 종소리처럼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시위대의 고함이 잦아들었다.
피켓을 들고 악을 쓰던 상인들과 주민들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돈 몇 푼에 매수되어 던진 계란과 오물 속에서도, 자신의 안위가 아니라 오직 억울한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려는 검사의 손을 잡기 위해 피를 흘리며 걸어온 어린 여자의 순결한 결기.
그것은 추악한 욕망으로 뭉친 군중의 양심을 정면으로 후려치는 거대한 죽비였다.
8. 폭풍의 서막
"성재환!"
지청 현관 계단 위에서 분노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손목을 붕대로 감아 쥔 정태섭 부장검사와 감찰 수사관들이 현관 앞으로 걸어 나와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붉은색 감찰 압수 딱지와 직무 배제 공문이 들려 있었다.
정태섭은 마당에 모여든 취재진과 시위대를 향해 공문을 높이 치켜들었다.
"보았는가! 사적인 치정에 눈이 멀어 감찰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직무를 유기한 성재환 검사의 추태를!"
정태섭의 서슬 퍼런 목소리가 메가폰을 타고 지청 앞마당에 울렸다.
"본 감찰본부는 이 시각부로 성재환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권 및 모든 수사권을 박탈한다! 성재환을 직권남용 및 폭행 현행범으로 긴급 체포하라!"
감찰 수사관들이 계단을 뛰어내려 오기 시작했다.
지청 앞마당을 가득 메운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다.
성재환은 지유의 작은 손을 자신의 거친 손으로 단단히 감싸 쥐었다.
그는 지유를 자신의 등 뒤로 숨기며, 계단 위의 정태섭을 향해 돌아섰다.
그의 얼굴에서 눈물은 이미 말라붙어 있었다.
남은 것은 오직 이 썩어빠진 권력의 카르텔을 단 한 놈도 남김없이 단죄하겠다는 절대적인 사법의 분노뿐이었다.
그는 품 안에서 흑청색 잉크가 채워진 만년필과 함께, 강태석에 대한 추가 구속영장 원본을 높이 치켜들었다.
지청 청사 위로, 마침내 먹구름을 뚫고 핏빛 같은 아침 햇살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법복을 입은 검사의 가장 위태롭고 처절한 사법 전쟁이, 바로 그 문턱에서 폭발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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