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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약속] 끝까지 남은 사랑 · 제 68화

시장의 거짓 해명

📅 2026-10-02 18:04•✍️ 만우자•👁️ 0•

1. 옥중의 뱀

 

철창 너머로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은 차가웠다.

 

전주교도소(全州矯導所) 미결수 특별 면회실 안쪽의 공기는 곰팡내와 퀴퀴한 소독약 냄새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탁자 맞은편에 앉은 강태석은 수의(囚衣) 깃을 거칠게 매만졌다.

 

손목에 채워진 수갑은 면회 규정상 풀려 있었으나, 푸르스름하게 멍든 손목에는 억압의 흔적이 선명했다.

 

그의 두 눈은 핏발이 서다 못해 번들거리는 광기로 물들어 있었다.

 

탁자 위에 놓인 조간신문과, 방금 전 비서실장이 들고 온 속보 전단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JBS 정오 뉴스 특보: 요천 제방 붕괴는 40억 횡령에 의한 인재! 삼거리 김밥집 테러 및 살인미수 배후 강태석 시장 추가 구속영장 발부!'

 

새까만 활자가 강태석의 망막을 송곳처럼 쑤셔댔다.

 

"성재환……."

 

그의 입술 사이로 이빨 갈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애송이 놈이 기어이 내 목에 줄을 걸겠다 이거지."

 

"시장님, 시간이 없습니다."

 

맞은편에 선 변호인이 땀에 젖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남원지원에서 구속적부심이 기각되자마자 특수살인교사와 특가법 뇌물수수로 영장이 재발부됐습니다. 성재환 검사가 대검 감찰반의 직무 배제 지시까지 법정 앞에서 정면으로 뭉개버렸습니다. 지금 법원 앞마당엔 시민들이 수백 명 몰려들어 시장님 사퇴와 구속 처벌을 외치고 있습니다. 방송까지 나가서 전북 전역이 들끓고 있습니다!"

 

"닥쳐라."

 

강태석이 나직하게 으르렁거렸다.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었지만 면회실 바닥을 긁어내리는 듯한 흉포한 살기가 실려 있었다.

 

변호인은 숨이 턱 막힌 채 입을 다물었다.

 

강태석은 천천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신이 30년간 쌓아 올린 남원의 성채가 고작 스물다섯 애송이 검사의 만년필 끝에서, 그리고 그 가난뱅이 김밥집 기집애의 꿋꿋한 주둥이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모욕감과 함께, 뼈골 깊은 곳에서 악마 같은 집념이 솟구쳤다.

 

'내가 누군가.'

 

남원의 흙바닥에서 주먹 하나로 삼거리 토건을 일구고, 남원시장 자리까지 꿰어 찬 몸이었다.

 

성호석(成浩錫) 같은 유약한 행정 관료 따위는 1989년에도 협박 한 번으로 주저앉혔고, 1993년에는 중앙 정무라인과 결탁해 아예 남원에서 영구 축출해 버렸다.

 

그 성호석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놈이 감히 제 아비의 복수를 하겠다고 남원에 내려와 칼을 휘두르고 있는 꼴이었다.

 

"김문현(金文鉉) 위원장에게 연락은 닿았나?"

 

강태석의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변호인을 꿰뚫었다.

 

"그게…… 의원회관 직통 전화는 계속 통화 중이고, 비서관들은 면담을 피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서울에서도 이번 방송 때문에 발을 빼려는 분위기인 듯싶습니다."

 

"발을 빼?"

 

강태석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내가 지어다 바친 돈이 얼마인데 발을 빼? 춘향 테마랜드와 요천 수변공원에서 빼돌린 돈의 절반이 김문현 그 작자의 대선 경선 자금으로 들어갔어. 내 목이 날아가면 그 영감탱이 목도 단두대에 올라가는 거야. 내가 혼자 죽을 것 같아?"

 

강태석은 주먹을 불끈 쥐어 탁자를 내리쳤다.

 

쿵 하는 굉음과 함께 면회실 유리창이 덜컹거렸다.

 

"기자들을 불러들여라."

 

"예? 기, 기자들이요?"

 

"남원 주재 기자들, 전북 일간지 데스크들, 그리고 남원일보 놈들까지 모조리 이 전주교도소 접견실로 소환해."

 

강태석의 눈에 핏줄이 곤두섰다.

 

"성재환 그 애송이가 언론 플레이로 나를 묻으려 했다면, 나 역시 칼을 쥐어야지. 남원은 아직 내 땅이야. 관급 공사비로 밥 빌어먹는 토건 놈들이 몇이고, 번영회와 노인회, 관변 단체에 내 손 안 거친 놈이 어디 있어? 성호석의 아들이 사적인 원한으로 현직 시장을 조작 기소하고 남원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떠벌려야 한다."

 

"하지만 시장님, JBS 방송에 콘크리트 시편과 감리 보고서, 덤프트럭 영상까지 낱낱이 공개됐습니다. 그걸 어떻게 뒤집습니까?"

 

"멍청한 놈!"

 

강태석이 변호인의 멱살을 잡을 듯 들이받았다.

 

"정치판의 진실은 증거 따위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 누가 더 그럴듯한 깃발을 들고 대중을 선동하느냐에 달렸지. 콘크리트가 부서진 건 백 년 만의 기습 폭우 때문이라고 밀어붙이면 돼. 덤프트럭? 시청 공무원이 뇌물 먹고 제 발이 저려 야반도주하다 난 단순 교통사고를, 정치 검찰이 무리하게 엮어 나를 암살 교사범으로 몰았다고 피를 토하면 그만이야!"

 

강태석의 얼굴에 비열하고 교활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

 

"성재환 그놈의 치명적인 약점이 뭔지 아나? 바로 그놈 아비가 성호석이라는 거다. 전임 시장의 아들이 검사 완장을 차고 내려와, 제 아비에게 밀려난 시장을 보복 표적 수사하고 있다. 남원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자극적인 먹잇감이 어디 있겠나?"

 

그는 죄수복 안주머니를 뒤져 손가락으로 가슴팍을 꾹꾹 찔렀다.

 

"기자회견을 열어라. 오늘 오후 세 시, 여기 교도소 접견실이다. 남원의 보수 유지들과 번영회 놈들에게도 전해. 내일 아침 남원지청 앞에 관광버스를 대절해 모이라고. 성재환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걸어라. 저 어린 검사놈의 숨통을 법정이 아니라 여론의 몽둥이로 박살을 내주마."

 

2. 교도소 접견실의 거짓 선풍

 

오후 세 시, 전주교도소 대형 접견실에는 숨 막히는 열기와 함께 플래시 세례가 빗발치고 있었다.

 

남원 지역 일간지와 통신사, 전북 도내 신문사 기자 삼십여 명이 좁은 접견실을 가득 메웠다.

 

교도관 두 명의 호위를 받으며 문을 열고 들어선 강태석의 모습은 한 시간 전 독방에서의 살기등등한 맹수와는 딴판이었다.

 

그는 핏기 없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왔다.

 

퀭한 눈망울, 헝클어진 머리칼, 수척해진 볼.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고를 치르는 비운의 지도자처럼 연출된 완벽한 가면이었다.

 

"시장님! JBS 특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천 제방 붕괴가 40억 공사비 횡령에 따른 부실시공이라는 주장이 사실입니까!"

 

"건설국장 덤프트럭 청부 살인미수 혐의로 추가 구속영장이 발부됐는데 인정하십니까!"

 

마이크와 녹음기가 강태석의 코앞으로 쇄도했다.

 

강태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눈가에 순식간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어지간한 배우 뺨치는 처절한 연기였다.

 

"존경하는 십만 남원 시민 여러분……."

 

마이크를 쥔 강태석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리고 정론직필을 위해 애쓰시는 기자 여러분. 참으로 비통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천재지변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눈물 흘리시는 수재민들을 생각하면, 옥중에 갇힌 제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그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울먹였다.

 

기자들의 셔터가 요란하게 터졌다.

 

"하지만!"

 

갑자기 강태석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변했다.

 

그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자, 억울함으로 일그러진 서슬 퍼런 눈빛이 기자실을 압도했다.

 

"지금 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가혹한 사태는, 단순한 수해 원인 규명이 아닙니다. 이것은 특정 정치 검찰과 구시대의 망령이 결탁하여, 시민의 손으로 정당하게 선출된 민선 시장을 제거하고 남원의 미래를 압살하려는 추악한 정치 공작입니다!"

 

장내가 술렁거렸다.

 

남원일보의 어용 기자가 기다렸다는 듯 마이크를 들이댔다.

 

"정치 공작이라니, 구체적으로 어떤 배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강태석은 탁자를 양손으로 짚고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저를 수사하고 있는 전주지검 남원지청의 주임검사가 누구입니까? 바로 성재환 검사입니다. 그 성재환 검사가 누구의 자식입니까! 7년 전, 남원의 발전을 가로막고 무능과 독선으로 일관하다 시민들의 원성을 사고 쫓겨났던 성호석 전 남원시장의 친아들입니다!"

 

접견실에 모인 기자들의 펜이 맹렬하게 백지 위를 내달렸다.

 

"성호석 씨가 누구입니까? 과거 군수와 관선 시장을 지내며 남원 요천 개발을 독점하려다 실패하고 중앙으로 도망친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검사 완장을 차자마자 남원으로 내려왔습니다. 제 아비의 정적이었던 저 강태석을 제거하고, 성씨 가문의 묵은 원한을 풀기 위해 사적인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공정한 대한민국 사법부의 법 집행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강태석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절규하듯 말을 이었다.

 

"요천 제방은 백 년 만에 쏟아진 320밀리미터의 기습 폭우로 인해 불가항력으로 무너진 천재지변입니다. 그런데 성재환 검사는 검찰 권력을 남용하여, 불량 콘크리트니 뭐니 하는 날조된 시편을 조작해 저에게 덮어씌웠습니다. 심지어 지병과 뇌물 수수로 제 발이 저려 야반도주하던 황선태 국장의 단순 빗길 교통사고를, 제가 옥중에서 살인을 청부했다는 파렴치한 특수살인교사 혐의로 둔갑시켰습니다!"

 

"시장님! 하지만 한양토건 박철구가 시장님의 사주를 받았다고 자백했지 않습니까!"

 

한 일간지 기자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강태석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내저었다.

 

"자백? 하! 검찰의 가혹행위와 회유에 넘어간 깡패 놈의 거짓 진술이 무슨 자백입니까! 성재환 검사는 지금 무고한 사람들을 쥐어짜 거짓 자백을 받아내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성 검사는 남원 동문 우체국 골목에서 김밥을 파는 한지유라는 계집과 학창 시절부터 깊은 사적 연애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 김밥집이 무허가 도로 점용과 불법 구조로 시정명령을 받자, 사적인 감정에 눈이 멀어 직권을 남용해 법원에 집행정지를 신청하고 시청 공무원들을 협박했습니다. 사사로운 계집의 환심을 사고, 제 아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 국가 공권력을 사유화한 자가 바로 성재환입니다!"

 

강태석의 독기 서린 궤변이 接見室(접견실)의 탁한 공기를 타고 기자들의 뇌리에 꽂혔다.

 

성재환과 한지유의 애절하고 순결했던 약속이, 강태석의 더러운 혀끝에서 '사적인 치정'과 '가문의 복수극'이라는 저열한 스캔들로 왜곡되는 순간이었다.

 

"존경하는 남원 시민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강태석은 마이크를 향해 주먹을 쥐어 보였다.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뒤로, 승리를 확신하는 음흉한 광기가 번뜩였다.

 

"저는 결코 굴복하지 않습니다. 전임 시장의 아들이 휘두르는 사법 테러 앞에 무릎 꿇지 않고, 끝까지 옥중에서 남원의 자존심과 시민 여러분의 명예를 지켜낼 것입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집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살아 있습니다!"

 

'Fiat justitia, ruat caelum.'

 

성재환의 만년필에 새겨진 그 고결한 법언마저 도용하며, 강태석은 기자회견을 마쳤다.

 

플래시 불빛이 터지는 가운데 교도관들에게 이끌려 나가는 강태석의 등 뒤로, 왜곡된 진실의 칼날이 남원 전역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3. 왜곡된 지면, 흔들리는 여론

 

교도소 접견실의 문이 닫히자마자, 윤전기가 요란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남원일보를 필두로 한 지역 어용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강태석의 거짓 해명을 대서특필했다.

 

저녁이 되자 가판대에 쏟아져 나온 석간 신문들의 1면은 온통 자극적인 활자로 도배되었다.

 

'강태석 남원시장 옥중 절규: 요천 참사는 불가항력의 천재지변!'

 

'성재환 검사의 표적 수사 논란! 전임 시장 성호석의 아들이 벌이는 가문의 복수극인가?'

 

'검찰 권력의 사유화 의혹: 사적 연인 관계인 삼거리 김밥집 비호하려 직권남용?'

 

'남원 토착 발전 가로막는 서울 특수부의 횡포, 시민사회 분노 폭발!'

 

남원 시내 다방과 식당, 정류장 곳곳에 신문이 뿌려졌다.

 

오전에 JBS 뉴스 특보를 보며 통쾌해하던 민심에 거대한 혼란의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진실을 똑똑히 보지 못한 채 평생을 지역 토착 유지들의 입김에 휘둘려 온 노인들과 보수 상인들은 신문을 움켜쥐며 혀를 찼다.

 

"거 봐라, 내가 뭐랬어. 아무리 그래도 시장이 제 손으로 제방을 무너뜨렸겠어?"

 

"성호석이 아들이 검사가 돼서 내려왔다더니, 지 애비 쫓겨난 한풀이를 남원에서 하고 자빠졌구먼."

 

"그 김밥집 가시나랑 검사놈이 옛날부터 보통 사이가 아니었다더니, 시청에서 법대로 철거하려는 걸 검사 완장으로 틀어막았다는 게 사실이었네!"

 

의구심은 독버섯처럼 번져 나갔다.

 

삼거리 토건과 한양토건이 푼 검은돈이 구도심 번영회와 관변 단체들의 주머니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성재환이 밝혀낸 콘크리트 시편과 40억 비자금의 진실은, '전임 시장 아들의 정치적 보복'이라는 자극적인 프레임 뒤로 희미하게 가려지기 시작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남원 시내 외곽의 한 설렁탕집.

 

남원 구도심 번영회 간부들과 토착 보수 단체 대표 십여 명이 둘러앉아 소주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탁자 한가운데에는 한양토건 박진철 회장의 심복이 던져두고 간 두툼한 흰 봉투 세 개가 놓여 있었다.

 

"들었지? 강 시장님이 옥중에서 저렇게 피를 토하고 계신다."

 

포목점 오 회장이 기름진 입술을 닦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남원 꼴이 어떻게 되겠어? 저 파란 피도 안 마른 어린 검사놈이 제 애비 복수한답시고 시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우리 상가 재개발까지 다 틀어막을 텐가!"

 

"맞습니다, 오 회장님! 요천 둑이 터진 것도 천재지변인데, 그걸 꼬투리 잡아 시장님을 살인마로 몰다니요."

 

"내일 아침 당장 관광버스 세 대 맞췄습니다. 남원 발전을 염원하는 시민 연대 명의로 플래카드도 스무 개 주문 제작 들어갔어요."

 

"좋아. 내일 아침 아홉 시, 전주지검 남원지청 정문 앞을 완전히 포위한다."

 

오 회장의 눈에 비열한 탐욕이 번득였다.

 

"성재환 그놈이 청사 문턱도 못 넘게 멱살을 잡아야 해. 감찰부에서도 내려왔다며? 우리가 밖에서 불을 질러주면, 검찰청 위에서도 그 애송이놈 모가지를 비틀어 버릴 수밖에 없을 거다!"

 

술잔이 부딪치며 검은 음모가 밤의 어둠 속으로 잦아들었다.

 

4. 지유의 결기

 

같은 시각, 남원 동문 우체국 뒷골목 삼거리 김밥집.

 

낮 동안 손님들로 북적이던 골목은 썰물처럼 인적이 끊겨 있었다.

 

가게 안쪽 조리대 앞에는 한지유가 홀로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방금 전 배달된 남원일보 석간신문이 쥐어져 있었다.

 

신문 1면 중앙에 실린 강태석의 얼굴.

 

눈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 뱀 같은 표정 아래로, 성재환과 자신을 난도질한 악의적인 기사 문구들이 선명했다.

 

'김밥집 한 모 양과의 부적절한 밀월 관계…… 검찰 권력으로 사적 특혜 제공.'

 

지유의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신문지 모서리가 바스락거리며 구겨졌다.

 

가슴속 밑바닥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밀어 올랐다.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가고, 30년 전 아버지의 과수원을 빼앗았으며, 굴착기로 가게를 부수려던 자가 바로 저 강태석이었다.

 

그런 살인마가, 이제는 7년 동안 피눈물을 삼키며 법을 갈고닦아 내려온 재환의 순결한 정의를 시궁창에 처박으려 하고 있었다.

 

"지유야……."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 윤하은이 울먹이며 다가왔다.

 

하은의 품에는 길거리에서 주워 온 신문 서너 장이 더 안겨 있었다.

 

"골목 사람들 말이 너무 심해. 낮에는 그렇게 고맙다고 김밥을 사 가던 사람들이, 이 몹쓸 신문 한 장에 다들 수군거리고 있어. 성 검사님이…… 너 때문에 사적인 보복을 한 거라고, 검사가 권력을 남용해서 남원을 망치고 있다고……!"

 

하은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지유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을 거두고, 구겨진 신문을 차분하게 조리대 한구석에 내려놓았다.

 

석유와 철 수세미로 붉은 페인트를 지워내느라 살갗이 벗겨지고 반창고가 칭칭 감긴 손가락.

 

그 아린 상처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오히려 지유의 차가운 이성을 날카롭게 벼려주었다.

 

"하은아, 울지 마."

 

지유의 목소리는 거짓말처럼 담담했다.

 

"저들은 지금 두려운 거야."

 

"뭐?"

 

"강태석은 지금 살기 위해 발악하고 있는 거야. 가진 게 거짓말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가진 유일한 무기로 재환이를 물어뜯으려는 거지."

 

지유는 앞치마 끈을 단단히 동여맸다.

 

그리고 찬장 서랍을 열었다.

 

어머니가 남겨주신 낡은 수첩과, 7년 전 재환이 주고 간 증명사진이 그곳에 있었다.

 

'약속. 반드시 돌아온다. 成宰桓.'

 

사진 뒷면에 적힌 그 서슬 퍼런 흑청색 글씨를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지유는 입술을 짓씹었다.

 

재환은 지금 혼자 싸우고 있었다.

 

법정 안에서는 거악의 카르텔과, 등 뒤에서는 중앙 권력과 대검 감찰반의 칼날과 홀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런 재환에게 자신은 짐이 될 수 없었다.

 

저들이 자신을 '검사의 약점'이라 손가락질한다면, 기꺼이 그 칼날을 온몸으로 받아내어 부러뜨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

 

딸랑.

 

처마 끝에 매달린 놋쇠 풍경이 밤바람에 맑게 울렸다.

 

가게 문이 열리며 최민재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

 

민재의 코트 자락은 땀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고, 손에는 취재용 수첩이 쥐어져 있었다.

 

"지유야, 신문 봤지?"

 

"응, 봤어, 민재야."

 

"강태석 그 인간 말종이 완전히 미쳤어. 전주교도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형과 너를 도마 위에 올렸어. 지금 서울 본청이랑 대검에서도 난리가 났대. 안 그래도 형을 쳐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던 감찰부가 이 거짓 해명 기사를 명분 삼아 내일 아침 정식 표적 감찰에 착수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민재는 안경을 벗어 거칠게 닦으며 분통을 터뜨렸다.

 

"게다가 내일 아침 남원 번영회 놈들이 시골 노인들까지 돈으로 매수해서 지청 앞으로 몰려간대. '정치 검사 성재환 사퇴하라'고 집회를 연다는 거야!"

 

하은이 경악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지청 앞에서 집회를? 그럼 성 검사님은 어떻게 되는 거야? 출근도 못 하시는 거 아냐?"

 

민재가 이를 악물었다.

 

"JBS 강혁 선배와 내가 후속 보도를 준비하고는 있지만, 방송은 내일 저녁에나 나가. 내일 오전이 고비야. 그 사이에 여론이 완전히 뒤집히고 대검 감찰반이 형의 손발을 묶어버리면, 영장 집행이고 뭐고 다 끝장날 수도 있어!"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지유에게로 쏠렸다.

 

하지만 지유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깊은 호수처럼 고요하고 차가웠다.

 

지유는 조리대 아래에서 큰 양푼을 꺼냈다.

 

그리고 갓 지어낸 하얀 쌀밥을 쏟아부었다.

 

고소한 참기름 향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은 가게 안으로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지유야……? 이 밤중에 뭘 하려는 거야?"

 

하은이 멍하니 물었다.

 

지유는 단정한 손길로 주걱을 쥐고 밥을 가르며 말했다.

 

"밥 해야지."

 

"지금 신문에서 너랑 성 검사님을 파렴치범으로 몰고 있는데, 밥이 넘어가?"

 

"재환이는 오늘 밤도 지청 204호에서 한숨도 못 자고 기록을 검토하고 있을 거야."

 

지유의 담담한 목소리에 서글프면서도 꺾이지 않는 결기가 배어 있었다.

 

"저들이 거짓말로 성을 쌓고 남원을 속이려 든다면, 우리는 진실로 맞서면 돼. 내일 아침, 재환이가 그 더러운 함성 속을 걸어갈 때 굶주리지 않게 해줄 거야. 밥을 먹어야 싸우지. 밥을 먹어야 그 무거운 법복을 입고 버티지."

 

지유는 김을 펼치고 밥을 얇게 폈다.

 

어머니에게 배운 그대로, 1원의 거짓도 없는 정직한 손길이었다.

 

"민재야."

 

"어, 지유야."

 

"재환이가 법으로 우리를 지켜줬듯이, 이번에는 우리가 재환이의 등 뒤를 지켜야 해. 내일 아침 지청 앞이 아수라장이 된다면, 나도 그곳으로 갈 거야."

 

민재와 하은의 눈이 커졌다.

 

지유는 말없이 김밥을 말아 올렸다.

 

칼끝이 도마를 두드리는 규칙적인 소리가, 어두운 밤을 가르는 북소리처럼 맑고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5. 204호 검사실의 서리발

 

자정이 깊어 가는 시각.

 

전주지방검찰청 남원지청 204호 특별수사전담 검사실.

 

방 안은 뿜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와 묵은 서류 냄새로 자욱했다.

 

책상 위에는 남원지원에서 발부된 강태석에 대한 추가 구속영장 원본이 놓여 있었다.

 

'피의자 강태석: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형법 제250조 및 제31조(특수살인교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붉은 직인이 찍힌 영장 옆으로, 남원일보의 야간 호외가 아무렇게나 구겨진 채 던져져 있었다.

 

성재환 검사는 의자에 등을 기대지 않은 채, 꼿꼿한 자세로 조서를 넘기고 있었다.

 

소매를 걷어붙인 와이셔츠 차림이었지만, 흐트러짐 없는 그의 자태에서는 한 치의 빈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검은 옻칠 만년필이 갱지 위를 날카롭게 스치며 흑청색 잉크를 뿜어냈다.

 

사각, 사각.

 

만년필 촉이 종이를 가르는 소리만이 적막한 검사실을 채웠다.

 

쾅!

 

문이 거칠게 열리며 강태훈 수사관이 뛰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서울 대검찰청에서 날아온 팩스 용지 수십 장이 쥐어져 있었다.

 

"검사님!"

 

강 수사관이 숨을 헐떡이며 보고서를 책상 위에 내리꽂았다.

 

"강태석의 기자회견 이후 서울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여당 내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법무부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개인적 원한으로 현직 단체장을 탄압하는 표적 검사를 당장 파면하라'고 길길이 날뛰고 있답니다. 대검 감찰부에서는 내일 아침 정식 감찰반을 추가로 급파하겠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성재환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는 만년필을 멈추지 않은 채 조서의 각주를 달아 나갔다.

 

"피의자의 범죄 혐의 사실과 관련 없는 소음입니다."

 

"검사님! 소음이 아닙니다!"

 

강태훈이 답답함에 가슴을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일 아침 남원지원 앞이 아니라, 우리 지청 정문 앞에 토착 보수 단체와 번영회 상인들이 수백 명 집결한다고 합니다. 성 검사님 사퇴 촉구 비난 집회를 열겠답니다. 언론사 카메라들도 모조리 진을 칠 텐데, 그 아수라장을 뚫고 어떻게 출근하십니까! 감찰반 놈들은 그걸 구실 삼아 검사님의 영장 집행 권한을 강제로 정지시키려 할 겁니다!"

 

성재환이 마침내 만년필을 내려놓았다.

 

탁 하는 나직한 소리와 함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스탠드 불빛 아래 드러난 성재환의 눈빛은, 얼어붙은 호수처럼 시리도록 투명하고 차가웠다.

 

흔들림 따위는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사법적 확신의 눈빛이었다.

 

"강 수사관님."

 

"예, 검사님."

 

"강태석이 왜 저렇게 발악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재환은 담담하게 구겨진 신문을 가리켰다.

 

"진짜 무죄를 확신하는 피의자는 법정에서 증거로 다툽니다. 하지만 죄가 목을 조여올 때,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는 범죄자는 어디로 향하는지 아십니까? 법정이 아니라 길거리로 나갑니다. 대중의 눈을 가리고, 상대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어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들어가지요."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으로 멀리 요천의 어두운 물줄기와, 그 너머 구도심의 희미한 불빛들이 내려다보였다.

 

"저자가 내 아버지를 물고 늘어지고, 지유를 모욕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박철구의 자백 조서, 부실 콘크리트 시편, 남원상호신용금고의 20억 비자금 분배 대장. 이 세 가지 물증이 법정에 올라가는 순간, 자신의 목숨이 끝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겁니다."

 

재환의 손이 코트 안주머니로 향했다.

 

그곳에는 7년 전 지유가 건네주었던 요천 둑길의 자전거 스케치와, 백부에게 물려받은 검은 만년필이 들어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

 

만년필 캡에 새겨진 라틴어 문구가 가슴뼈를 서늘하게 찔러왔다.

 

"저들이 밖에서 아무리 거짓의 나팔을 불어도, 법정에 서는 것은 오직 증거와 법리뿐입니다."

 

재환이 차갑게 돌아섰다.

 

"내일 아침 아홉 시, 예정대로 강태석에 대한 추가 구속영장을 집행하고, 남원시청 건설교통국과 비서실에 대한 2차 압수수색을 강행합니다."

 

"하지만 정문 앞의 시위대는……!"

 

"피하지 않습니다."

 

재환의 입술에서 서릿발 같은 단언이 떨어졌다.

 

"내가 고개를 숙이고 뒷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저들의 거짓말은 진실이 됩니다. 나는 대한민국 검사입니다. 법을 집행하는 자가 어찌 불의의 소음 앞에 비겁하게 숨겠습니까. 정문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갈 겁니다."

 

강태훈은 성재환의 서슬 퍼런 결기 앞에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어떤 만류도 통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재환은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만년필을 쥐었다.

 

그의 흑청색 잉크는, 내일 아침 자신을 집어삼키려 몰려올 거대한 폭풍을 향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조준되고 있었다.

 

6. 폭풍 전야의 새벽

 

새벽 다섯 시.

 

남원 시가지 위로 자욱한 물안개가 깔리기 시작했다.

 

지리산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 요천의 수면을 잘게 흔들었다.

 

남원 시내 곳곳에서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었다.

 

남원 외곽 공터에 대형 관광버스 넉 대가 시동을 건 채 웅웅거리는 소리를 냈다.

 

붉은 어깨띠를 두른 사내들이 버스에서 내려 '정치 검찰 규탄', '성재환 검사 즉각 파면'이라 적힌 대형 현수막과 피켓을 트렁크에서 꺼내 나누어 들었다.

 

한양토건의 돈을 받은 조폭들과 번영회 간부들이 시골 장터에서 일당 3만 원을 주고 끌고 온 노인들과 부녀자들을 줄지어 세웠다.

 

"자, 다들 똑똑히 들으쇼! 남원지청 앞에 도착하면 무조건 소리를 질러야 합니다! 성재환 물러나라! 조작 수사 중단하라! 악을 써야 돈을 줍니다, 알겠소?"

 

사내들의 험악한 고함이 새벽 공기를 찢었다.

 

그 시각, 남원 동문 우체국 뒷골목 삼거리 김밥집의 불은 꺼지지 않고 있었다.

 

주방 안쪽에서는 고소한 밥 냄새와 함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지유는 조리대 앞에 서서 마지막 도시락 뚜껑을 닫고 있었다.

 

정성스럽게 싼 은박지 도시락 두 통.

 

한 통에는 두툼하게 썬 김밥 세 줄이 정갈하게 담겨 있었고, 다른 한 통에는 따뜻한 보온병에 담긴 맑은 장국이 곁들여져 있었다.

 

도시락 위에는 하얀 손수건이 단정하게 매듭지어져 있었다.

 

7년 전, 비 오는 날 광한루원 처마 밑에서 재환의 젖은 얼굴을 닦아주었던 바로 그 손수건이었다.

 

지유는 거칠어진 손등을 어루만지며 벽에 걸린 낡은 괘종시계를 바라보았다.

 

오전 일곱 시 삼십 분.

 

이제 곧 날이 밝아오고, 남원은 거짓과 진실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전쟁터가 될 터였다.

 

"지유야, 나도 갈게."

 

하은이 두꺼운 외투를 걸쳐 입으며 지유의 곁으로 다가왔다.

 

눈가는 밤새 울어 짓물러 있었지만, 눈빛만은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그 사람들이 너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혼자 보낼 순 없어."

 

"고마워, 하은아."

 

지유는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도시락을 품에 안았다.

 

가슴팍을 통해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가, 얼어붙었던 심장을 힘차게 뛰게 만들었다.

 

딸랑.

 

가게 문을 열고 나서는 지유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골목 어귀를 돌아서자, 저 멀리 남원지청 방향에서 불길한 확성기 소리가 웅웅거리며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거짓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거대한 파도를 향해 걸어가는 지유의 뒷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의연하고 꼿꼿했다.

 

성재환을 향한, 그리고 그들이 함께 지켜내야 할 정의를 향한 가장 단단한 방파제가 되기 위해.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