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수사팀
1. 가라앉은 새벽의 공기
전주지방검찰청(全州地方檢察廳) 남원지청(南原支廳) 204호 특별수사전담 검사실의 새벽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창밖 요천(蓼川) 너머로 짙은 안개가 낮게 깔려 시가지의 윤곽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밤새 꺼지지 않은 백열전구 아래, 찌그러진 종이컵과 마구 헝클어진 서류철 사이로 비릿한 찬 공기가 감돌았다.
취조실에서 도주했던 건설교통국장 황선태가 15톤 덤프트럭에 들이받혀 의식불명에 빠진 지 불과 네 시간 남짓 지난 시각이었다.
책상 모서리에 걸터앉아 있던 특수부 수사관 강태훈이 이마를 짚은 채 헛기침을 뱉었다.
"검사님, 방금 병원에 다녀온 지원조 녀석들 말로는…… 하정리 삼거리 사고 현장에 있던 덤프트럭, 벌써 견인해서 경찰서 후정으로 치웠다고 합니다."
강태훈의 목소리는 평소의 쩌렁쩌렁한 기운을 완전히 잃고 바닥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교통계 놈들이 현장 핏자국까지 소방 호스로 싹 씻어냈답니다. 스키드 마크도 없는 사고를 단순 빗길 미끄러짐으로 초동 보고서 찍어서 올렸답니다. 아주 작정을 했습니다."
검사실 구석 소파에 앉아 있던 두 명의 파견 수사관은 아예 고개를 떨군 채 담배만 연거푸 비벼 끄고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피로를 넘어선 서늘한 공포가 번져 있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20억 비자금 장부와 하도급 횡령 증거를 손에 쥐고 금방이라도 세상을 뒤엎을 듯 기세를 올리던 수사팀이었다.
그러나 백주대낮도 아닌 새벽 어둠 속에서 핵심 증인이 대형 덤프트럭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지고, 법무부 기획조정실 직인이 찍힌 직무 배제 팩스가 검사실 팩시밀리에서 뿜어져 나온 순간부터 공기는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이건…… 단순한 토착 비리가 아닙니다, 검사님."
지청 수사계 소속으로 특별수사팀에 차출되었던 베테랑 김 경위가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15톤 덤프트럭 앞범퍼에 용접 H빔을 덧대서 밀어버렸습니다. 대놓고 죽이겠다는 신호 아닙니까. 수첩을 털어간 놈들도 그렇고, 저것들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봅니다. 우리라고 다를 것 같습니까?"
검사실 내부의 침묵이 한 뼘 더 깊어졌다.
아무도 선뜻 반박하지 못했다.
성재환은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안개 자욱한 요천 둑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단정한 검은 정장 코트 자락 아래, 백부에게 물려받았던 독일제 검은 옻칠 만년필이 만져졌다.
'Fiat justitia, ruat caelum.'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
캡 상단에 새겨진 그 차가운 금빛 글귀가 손바닥 안에서 묵직한 통증으로 와닿았다.
"김 경위님."
재환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창백한 낯빛이었지만, 깊게 가라앉은 두 눈동자만큼은 칼날처럼 서슬 퍼렇게 벼려져 있었다.
"처자식이 남원에 살고 계시지요?"
김 경위가 흠칫 놀라며 재환을 올려다보았다.
죄책감과 억울함, 그리고 날것의 두려움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예. 큰놈이 올해 남원여중 입학했고, 밑에 아들놈은 초등학교 삼학년입니다."
"다른 수사관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남원에서 나고 자랐거나, 최소한 가족들의 터전이 이곳 전라북도 땅에 묶여 있겠지요."
재환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서류 더미가 수북한 중앙 회의 탁자 앞에 섰다.
탁자 한가운데에는 찢겨나간 법무부의 직무 배제 팩스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최민재가 목숨을 걸고 빼내 온 하정리 주유소 사설 CCTV 비디오테이프가 놓여 있었다.
2. 침묵의 무게
수사관들의 시선이 일제히 탁자 위의 비디오테이프로 쏠렸다.
비디오테이프 표면에는 기름때 묻은 민재의 지문이 엉겨 붙어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저 테이프를 틀어 분석 조서를 작성하고, 한양토건 박철구에 대한 지명수배와 체포영장을 치는 순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는 것을.
전주교도소에 갇혀 있으면서도 덤프트럭을 불러내 사람을 깔아뭉개는 강태석의 손아귀, 그리고 서울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를 손가락 하나로 움직이는 국회 내무위원장 김문현의 외압이 이제 수사관 개개인의 목을 죄어올 것이 뻔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검사님."
창가 쪽 캐비닛에 기대서 있던 파견 수사관 박 경사가 마른침을 삼키며 나직하게 털어놓았다.
"아침 6시에 본청…… 전주지검 총무과에 있는 동기한테 은밀히 연락이 왔습니다. 대검에서 성 검사님 직무 배제 건으로 감찰반을 남원으로 급파했다고요. 만약 남원지청 수사팀이 계속 영장을 치고 수사를 강행하면, 배속된 수사관들 전원 직무유기와 항명으로 징계위에 회부하겠다고 협박조로 떠보고 있답니다. 저희 같은 말단 수사관들은…… 옷 벗으면 당장 아이들 학비 댈 길도 없습니다."
박 경사의 목소리 끝이 잘게 부서졌다.
그것은 비겁함이 아니었다.
현실의 거대한 벽 앞에 선 영세한 공무원들의 지극히 당연하고 처절한 생존 본능이었다.
재환은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응시했다.
강태훈 수사관조차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재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팀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물리적 테러의 공포와 인사권이라는 합법적 흉기가 동시에 덮쳐오자, 굳건하던 특수수사의 대열에 균열이 생기고 만 것이다.
바로 그때, 검사실 철문이 벌컥 열리며 최민재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숨을 헐떡이는 민재의 손에는 남원일보 조간신문 한 뭉치와 가죽 수첩이 들려 있었다.
"재환아! 아니, 성 검사님!"
민재가 신문을 회의 탁자 위에 거칠게 내던졌다.
1면 톱기사의 묵직한 활자가 눈에 박혔다.
'구도심 교통사고, 안갯속 빗길 과속이 부른 참변…… 시청 건설국장 중태.'
강태석의 하수인들이 언론마저 완벽하게 틀어막은 채 진실을 호도하고 있었다.
"배도식 국장이 새벽에 서울에서 전화를 받더니 판을 완전히 엎었습니다. 김문현 의원실 보좌관이 직접 윤전실을 세우고 기사를 이따위로 갈아 끼웠어요. 경찰도, 언론도 전부 저놈들 손아귀에서 춤추고 있습니다!"
민재의 울분에 찬 목소리가 적막한 검사실을 뒤흔들었다.
수사관들의 안색은 더욱 어둡게 질려갔다.
상대가 단순히 지역의 토건 조폭이 아니라, 대한민국 중앙 정계의 최정점에 선 권력 그 자체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확인된 탓이었다.
"보십시오. 신문까지 저러니, 이제 우리가 무슨 수를 써도 저들은 덮어버릴 겁니다."
김 경위가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손이 서류철을 덮으려 슬그머니 움직였다.
수사를 여기서 멈추고, 상부의 지시대로 황선태 개인의 비리와 단순 교통사고로 사건을 종결짓자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 무거운 체념의 순간, 성재환이 묵직한 서류철 하나를 탁자 한가운데에 내려놓았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정적을 깼다.
3. 법이 권력에 지면
수사관들의 시선이 재환의 손끝으로 모였다.
재환이 내려놓은 것은 지난밤 자신이 밤을 새워 직접 작성한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및 살인미수 교사 피의자 강태석·김문현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 초안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 깔려 있던 또 다른 서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삼거리 김밥집의 3개년 결산 장부 사본, 지유의 모친이 평생을 품어왔던 1968년 토지 매각 이면계약서 원본 복사본, 그리고 유성골재 경리 정미숙이 울며 넘겨주었던 14억 저질 골재 납품 장부였다.
"김 경위님, 박 경사님."
재환의 음성은 낮았지만, 검사실 구석구석을 찌르고 들어갈 만큼 또렷하고 단단했다.
"두 분이 두려워하시는 것을 압니다. 처자식의 안위가 걱정되고, 검사 한 놈 잘못 만나 평생 몸담은 직장에서 파면당할까 겁이 나는 것, 당연합니다. 저 역시 인간이기에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재환은 천천히 수사관들을 향해 다가섰다.
"하지만 묻겠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손을 털고 물러나면, 그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재환이 탁자 위의 서류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강태석은 오늘 오전 구속적부심으로 전주교도소 문을 열고 걸어 나올 겁니다. 황선태 국장은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찾지 못한 채 단순 교통사고 피해자로 처리될 것이고, 그가 입을 열지 못하는 사이 강태석과 조상태, 박철구는 남은 증거들을 모조리 불태우겠지요."
재환의 시선이 민재를 거쳐 다시 수사관들의 떨리는 눈동자에 닿았다.
"그리고 요천 제방 붕괴로 집과 가게를 잃은 수백 명의 남원 시민들은 천재지변이라는 거짓말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삼거리 김밥집의 어린 여학생은 조폭들의 쇠파이프와 포클레인 앞에 또다시 홀로 서야 할 것이고, 정의를 믿고 용기를 내어 장부를 건네준 유성골재의 가난한 여직원은 저들의 보복에 생매장당할 겁니다."
재환의 목소리에 서서히 쇳소리가 섞여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이자, 법조인으로서의 처절한 신념이었다.
"우리가 검찰 배지를 달고, 법의 이름으로 권총과 수갑을 차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높은 자리에 앉아 권세를 부리고, 힘 있는 자들의 뒤꽁무니를 닦아주며 안락하게 정년을 채우기 위함입니까?"
재환은 자신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강하게 쳤다.
"법이 권력에 지면, 힘없는 시민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일갈이 검사실 천장을 때렸다.
김 경위의 어깨가 덜컥 떨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박 경사도 충격을 받은 듯 숨을 멈추었다.
"우리가 법의 칼날을 쥔 마지막 방파제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비겁하게 물러서면, 남원은 영원히 조폭과 부패 관료들의 노예로 남을 겁니다. 여러분이 흘린 땀과 지난 세월의 자부심은 전부 저 썩은 권력의 발밑에 던져지는 쓰레기가 되는 겁니다!"
재환은 주머니에서 백부의 각인 만년필을 꺼내 탁자 위에 쾅 내려놓았다.
검은 옻칠 위로 차가운 형광등 불빛이 번뜩였다.
"감찰이 두려우십니까? 징계가 두려우십니까? 모든 책임은 주임검사인 제가 집니다. 직무 배제 팩스를 찢은 것도 나이고, 대검의 지침을 거부하고 영장을 청구하는 것도 접니다. 만약 사법 처벌을 받거나 옷을 벗어야 한다면, 제가 가장 먼저 벗겠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공소장과 수사 보고서 어디에도 올리지 않고 오직 제 이름 석 자, '성재환'만 적어 넣겠습니다!"
검사실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오직 재환의 가쁜 숨소리와 창밖을 때리는 차가운 새벽바람 소리만이 맴돌았다.
강태훈 수사관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성큼 앞으로 걸어 나왔다.
"검사님."
강태훈이 굵은 주먹으로 회의 탁자를 내리쳤다.
"그런 섭섭한 말씀 마십시오. 제가 대검 특수부에서 성 검사님 모시고 남원으로 내려올 때, 이미 제 목숨줄은 검사님께 맡겼습니다. 옷 벗는 게 대수입니까? 저런 버러지 같은 놈들한테 꼬리 내리고 살 바에는 차라리 검찰 밥 굶는 게 낫습니다!"
그 말에 김 경위가 붉어진 눈시울로 마른세수를 했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가슴 안주머니에서 돋보기안경을 꺼내 썼다.
"……제기랄. 성 검사님 말씀이 백번 천번 맞습니다."
김 경위가 덮어두려 했던 서류철을 다시 거칠게 펼쳤다.
"내 새끼들한테 아비가 조폭 놈들 덤프트럭이 무서워서 도망쳤다는 소리는 죽어도 못 듣습니다. 검사님, 비디오테이프 틀어 주십시오. 제가 남원에서만 삼십 년 굴러먹은 놈입니다. 저 화면에 찍힌 놈들 뼉다구만 봐도 어디 숨었는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가라앉았던 공기가 순식간에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망설이던 박 경사와 다른 수사관들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눈빛에서 비겁한 망설임은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4. 현장 속으로
"시간이 없습니다. 전주지법 남원지원에서 강태석의 구속적부심 심문이 열리는 시각은 오늘 오전 10시입니다."
재환이 시계를 확인하며 벽면의 대형 남원 지도 앞으로 걸어갔다.
현재 시각은 오전 6시 40분.
남은 시간은 불과 세 시간 남짓이었다.
"적부심 판사 앞에 저들이 제출할 논리는 명확합니다. 핵심 증인인 황선태가 교통사고로 진술 능력을 상실했고, 황선태의 비밀 수첩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기존 피의자 신문 조서는 신빙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법무부의 검사 직무 배제 결정까지 들이밀며 절차적 위법을 주장해 강태석을 즉각 석방하려 할 겁니다."
재환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였다.
"우리는 판사의 법정에 단순한 의혹이 아니라, 반박할 수 없는 '현행 살인교사'의 증거를 들이밀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적부심 개정 전까지 덤프트럭 테러를 실행한 한양토건 행동대장 박철구의 신병을 확보하거나, 그가 버리고 간 범행 도구를 완전히 특정해야 합니다."
"검사님, 비디오 판독 결과 나왔습니다!"
모니터 앞을 지키고 있던 박 경사가 소리쳤다.
화면 속에는 15톤 덤프트럭이 황선태의 승용차를 들이받은 직후, 운전석에서 뛰어내린 사내가 안갯속을 가로질러 골목 어귀에 대기 중이던 흰색 베스타 봉고차로 옮겨 타는 장면이 정지 화면으로 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드러난 흉터투성이의 옆얼굴.
틀림없는 한양토건 행동대장 박철구였다.
"봉고차 뒷번호판 두 자리가 보입니다. 전북 1 라, 뒤에는 7로 시작합니다. 73이나 78로 보입니다."
"민재야."
재환이 돌아보았다.
민재가 곧바로 취재 수첩을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양토건 법인 명의로 등록된 승합차가 세 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전북 1 라 7842' 흰색 베스타입니다. 주로 박진철 회장의 경호조와 철거 용역들이 타고 다니던 차입니다!"
"좋아. 강태훈 수사관은 기동타격조 두 명을 데리고 남원 시내 외곽에 있는 한양토건 자재 야적장과 폐차장 일대를 뒤져. 놈들이 범행에 쓴 차량을 은닉하거나 불태우려 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예, 알겠습니다!"
강태훈이 권총 집을 점검하며 즉시 검사실을 박차고 나갔다.
"김 경위님과 박 경사님은 저와 함께 갑니다."
재환이 코트를 걸쳐 입었다.
김 경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검사님,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
"하정리 삼거리 사고 현장, 그리고 남원경찰서 교통계입니다."
재환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경찰이 물청소로 지워버렸다고 안심하고 있을 때, 놈들이 미처 지우지 못한 바닥의 진실을 우리가 직접 긁어모을 겁니다. 검사가 직접 흙탕물에 무릎을 꿇어야 저들도 뒤를 돌아보는 법입니다."
수사관들의 눈에 경외심이 스쳤다.
명문 로스쿨을 나와 서울 특수부에서 내려온 엘리트 검사가 책상머리에 앉아 결재나 하는 것이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아스팔트 바닥으로 직접 뛰어들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가시지요, 검사님! 제가 운전대 잡겠습니다!"
김 경위가 검사실 열쇠를 낚아채며 앞장섰다.
침체되었던 남원지청 204호가 거대한 전투함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5. 지워지지 않는 흔적
아침 7시 15분, 안개가 자욱한 하정리 삼거리 교차로.
경찰이 소방 호스로 바닥을 쓸어낸 탓에 아스팔트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옅은 피비린내가 기름 냄새와 뒤섞여 코를 찔렀다.
노란색 폴리스 라인은 이미 맥없이 끊어져 길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지나가는 행인 하나 없는 차가운 교차로에 검은색 검찰 관용 세단이 급정거했다.
차 문이 열리고 성재환 검사와 김 경위, 박 경사가 차에서 내렸다.
재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고급 양복바지에 시커먼 기름 흙탕물이 스며들었지만, 재환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스팔트 바닥의 결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검사님, 옷 버리십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김 경위가 황급히 손을 뻗었지만 재환은 고개를 저었다.
"보십시오, 김 경위님. 물로 씻어냈다고 흔적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재환의 손가락이 멈춘 곳은 교차로 모퉁이의 콘크리트 경계석 모서리였다.
그곳에는 15톤 덤프트럭이 황선태의 승용차를 밀어붙이며 경계석을 짓이긴 깊은 타이어 파임 자국과 함께, 페인트 조각들이 엉겨 붙어 있었다.
짙은 청색 페인트.
덤프트럭의 범퍼 하단에 칠해져 있던 색상이었다.
"단순한 빗길 미끄러짐이라면 차량이 회전하면서 원형의 마찰흔을 남깁니다. 하지만 이 자국을 보십시오. 경계석을 완전히 타고 넘을 정도로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은 직선 궤적입니다. 충돌 순간에도 브레이크를 전혀 밟지 않았다는 명백한 고의 충돌의 물증입니다."
재환이 품에서 증거물 채취용 비닐봉지와 소형 나이프를 꺼냈다.
그는 직접 경계석에 박힌 페인트 조각과 타이어 고무 파편을 정성스럽게 긁어 비닐봉지에 담았다.
빗방울이 다시 한두 방울씩 떨어져 재환의 코트 어깨를 적셨지만, 그의 손동작은 외과의사처럼 정밀하고 단호했다.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김 경위와 박 경사의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서초동 대검찰청의 고관대작 자제이자 연수원 수석 출신의 청년 검사가, 억울하게 짓밟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남원의 차가운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흙을 파내고 있었다.
"박 경사, 뭐 해! 카메라 꺼내서 각도별로 다 찍어! 경계석 파손 깊이랑 궤적 전부 센티미터 단위로 실측해!"
김 경위가 외치며 줄자를 꺼내 들었다.
"예, 반장님!"
플래시가 잇달아 터지며 안갯속 삼거리 아스팔트를 하얗게 밝혔다.
남원경찰서가 은폐하려 했던 살인미수의 현장이 검찰 수사팀의 손에 의해 낱낱이 재구성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김 경위의 무전기에서 지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다급한 강태훈 수사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치직…… 검사님!
강태훈입니다!
찾았습니다!
재환이 비닐봉지를 묶으며 무전기를 낚아챘다.
"강 수사관, 어디인가?"
- 요천 하류, 송동면 방면 폐염전 창고 뒤편입니다!
흰색 베스타 승합차 발견했습니다!
놈들이 차량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려던 찰나에 현장을 덮쳤습니다!
용역 놈 둘은 제압했고, 박철구 놈은 갈대밭으로 도주 중입니다!
지원이 필요합니다!
재환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였다.
"즉시 포위망을 좁혀라. 박철구의 신병을 반드시 살려서 확보해야 한다. 내가 지금 바로 그쪽으로 간다!"
재환은 무전기를 김 경위에게 넘기며 몸을 일으켰다.
바지에 묻은 진흙을 털어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재환은 단호하게 차에 올라탔다.
"송동면으로 쏩니다. 밟으십시오!"
관용차의 사이렌이 새벽의 남원 시가지를 가르며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6. 새벽의 갈대밭 추격
송동면 외곽, 요천 하류의 갈대밭은 간밤의 폭우로 물이 무릎까지 차올라 있었다.
시커먼 진흙탕 사이로 억새와 갈대가 어지럽게 엉켜 시야를 가로막았다.
끼이익!
검찰 관용차가 비포장 제방길에 거칠게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자마자 재환과 수사관들은 진흙탕 속으로 뛰어내렸다.
저 멀리 갈대밭 한가운데에서 거친 육성과 함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서, 이 개자식아! 검찰이다!"
강태훈 수사관이 흙투성이가 된 채 몽둥이를 휘두르며 도주하는 거구의 사내를 뒤쫓고 있었다.
도주하는 사내, 박철구였다.
박철구는 손에 쇠파이프를 든 채 뒤를 돌아보며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오지 마! 다 죽여버릴 거야! 시장님이 가만둘 줄 알아?!"
박철구가 휘두른 쇠파이프가 갈대를 후려치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강태훈이 진흙에 발이 빠져 휘청거리는 틈을 타, 박철구가 제방 수문 쪽 콘크리트 계단을 향해 필사적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계단을 넘어가면 인근 국도로 이어지는 야산이었다.
놓치면 끝이었다.
그 순간, 김 경위가 권총을 뽑아 들려 하자 재환이 그의 팔을 제지했다.
"쏘지 마십시오. 실탄 발포는 저들에게 빌미를 줍니다!"
재환은 코트를 벗어 던진 채 그대로 진흙탕 속으로 몸을 던졌다.
물살을 가르며 질주하는 청년 검사의 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빨랐다.
고시촌 세 평 단칸방에서 7년간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버텨온 재환이었다.
지유의 흉터와 고통, 그리고 아버지 성호석의 피눈물을 가슴에 품고 달리는 그의 질주에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었다.
철퍽, 철퍽!
진흙탕을 박차고 날아오른 재환이 수문 계단 난간을 붙잡으려던 박철구의 허리를 등 뒤에서 그대로 덮쳤다.
"커억!"
두 사람의 몸이 뒤엉켜 진흙탕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박철구가 눈을 까뒤집으며 쇠파이프를 거칠게 내리찍으려 했다.
재환은 팔을 뻗어 박철구의 손목을 꺾어 비틀었다.
우드득, 하는 뼈마디 비명과 함께 쇠파이프가 진흙탕 속으로 맥없이 떨어졌다.
"놔! 이 새끼야, 놓으라고!"
박철구가 진흙 묻은 주먹을 재환의 얼굴을 향해 날렸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재환의 입술이 터지며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재환의 눈빛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늘한 살기마저 감도는 눈으로 박철구의 멱살을 틀어쥔 재환은, 그의 안면을 향해 단단한 주먹을 내리꽂았다.
퍽!
박철구의 고개가 꺾이며 진흙 바닥에 처박혔다.
재환은 박철구의 등을 짓누르고 팔을 뒤로 꺾어 결박했다.
뒤따라온 강태훈과 김 경위가 헐떡이며 달려와 철컥, 소리와 함께 박철구의 양 손목에 차가운 쇠수갑을 채웠다.
"하아…… 하아……."
진흙투성이가 된 재환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에는 진흙과 핏자국이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승리자의 그것이었다.
박철구가 진흙탕에 얼굴을 묻은 채 바들바들 떨며 헐떡였다.
"너…… 너 도대체 뭐야…… 검사 새끼가 왜 이래……."
재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박철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형법 제250조 살인, 제254조 미수, 그리고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피의자 박철구."
재환은 가슴 안주머니에서 젖지 않은 미란다 원칙 카드를 꺼내 낭독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다. 당신이 지금부터 하는 모든 말은 법정에서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
그 서슬 퍼런 낭독을 들으며, 강태훈과 김 경위, 박 경사는 전율 어린 시선으로 성재환을 바라보았다.
도망치려던 수사팀의 마음을 하나로 묶고, 직접 진흙탕을 뒹굴며 조폭 두목의 팔을 꺾어 수갑을 채운 검사.
그들의 눈앞에 서 있는 이는 더 이상 유약한 서울 도련님이 아니었다.
진정한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진짜 칼잡이였다.
"김 경위님."
재환이 입가의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명령했다.
"놈을 즉시 지청 호송차에 태우십시오. 그리고 차량에서 압수한 방화용 휘발유통과 피 묻은 장갑, 전부 국과수 긴급 감식 의뢰 넣으십시오."
"예, 검사님!"
김 경위가 절도 있게 경례를 붙였다.
수사관들의 눈빛에는 이제 공포 대신 맹렬한 투지만이 불타고 있었다.
7. 결전의 법정으로
오전 8시 45분, 전주지방검찰청 남원지청 204호 검사실.
세면대에서 대충 흙과 피를 씻어낸 재환은 찢어진 입술에 반창고를 붙이고 새로운 와이셔츠로 갈아입었다.
검사실 한쪽 조사실에서는 강태훈과 김 경위가 박철구를 의자에 결박해 둔 채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서슬 퍼런 심문을 쏟아붓고 있었다.
현장에서 압수된 승합차 트렁크에서 황선태 국장의 차량 조수석에서 뜯어낸 서류 가방 파편과 피 묻은 작업복이 쏟아져 나온 이상, 박철구도 더 이상 발뺌할 수 없었다.
"불었습니다, 검사님!"
조사실 문을 열고 나온 김 경위의 얼굴에 흥분이 가득했다.
"전주교도소에 있는 강태석의 처남, 동서개발 조상태한테 어젯밤 직접 지령을 받았답니다. 황선태를 확실하게 밀어버리고 수첩을 빼앗아 오면 밀항 자금 삼억을 주겠다고 약속했답니다! 조상태와 나눈 녹음 통화 삐삐 번호까지 전부 실토했습니다!"
완벽한 스모킹 건이었다.
강태석이 옥중에서 처남 조상태를 통해 청부 살인을 지시했다는 연결고리가 완벽하게 복원된 것이다.
재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그는 영장실질심사 담당 문성현 판사 앞으로 보낼 '구속적부심 청구 기각 의견서 및 추가 살인교사 혐의 영장 청구서'에 일필휘지로 서명을 마쳤다.
'성재환(成宰桓).'
검은 옻칠 만년필에서 흘러나온 깊고 푸른 흑청색 잉크가 백지 위를 서늘하게 수놓았다.
바로 그때, 검사실 문이 열리며 최민재가 따뜻한 보온병과 은박지에 싼 김밥 세 줄을 들고 들어왔다.
민재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재환아…… 지유가 보냈다."
민재가 떨리는 손으로 김밥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지유가 가게 앞에서 널 기다리다가, 네가 새벽부터 진흙탕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을 떨면서 싼 김밥이다. 밥 굶지 말라고. 끝까지 믿는다고."
재환의 손끝이 은박지에 닿았다.
아직 식지 않은 온기.
고소한 방앗간 참기름 냄새가 피비린내와 잉크 냄새 가득한 검사실 안으로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재환은 말없이 은박지를 벗겨 김밥 한 알을 입에 넣었다.
어머니의 맛, 그리고 지유의 결기가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듯했다.
'지유야, 흔들리지 않는다. 결코 지지 않는다.'
재환은 가슴속으로 맹세를 삼키며 시계를 보았다.
오전 9시 20분.
남원지원 대법정에서 열릴 강태석의 구속적부심까지 남은 시간은 40분이었다.
"김 경위님, 강 수사관."
재환이 코트를 단정하게 여미며 차갑게 선언했다.
"박철구의 자백 조서와 현장 증거물 카트를 챙기십시오. 남원지원으로 갑니다."
"예, 검사님!"
수사관 전원이 일제히 일어서며 재환의 뒤를 따랐다.
흔들리던 수사팀은 이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강철의 군단이 되어 있었다.
지청 복도를 울리는 그들의 구두 굽 소리는, 부패한 토착 권력의 숨통을 끊어놓을 사법 심판의 장엄한 진군가였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