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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네모 세모 동그라미로 간다 · 제 64화

진실의 생중계

📅 2026-10-02 18:10•✍️ 만우자•👁️ 0•

1. 지하 100미터의 진입

 

철컥, 콰아아앙—.

 

육중한 유압식 방폭 셔터가 거대한 비명을 지르며 양옆으로 갈라져 나갔다.

 

틈새 사이로 뿜어져 나온 차가운 액체 질소 가스와 묵직한 전자기 잔향이 우진의 메마른 뺨을 거칠게 후려쳤다.

 

테헤란로 한복판에 솟아오른 넥스트 큐브 본사 사옥 지하 6층, 그 너머로 수직으로 뚫린 거대한 암반 통로는 한 치 앞의 빛조차 삼켜버리는 끝없는 심연이었다.

 

지하 100미터 아래 암반 심도 구역에서 박동하는 오리진 코어의 기저 주파수가 단단한 화강암 벽면을 타고 올라와 우진의 발바닥과 뼈마디를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쿵.

 

쿵.

 

쿵.

 

그것은 단순한 기계 장치의 모터음이 아니었다.

 

도시 전체의 신경망을 갉아먹고 수천만 인간의 숨결을 연료 삼아 돌아가는 거대한 인과율 흡혈귀의 심장 고동이었다.

 

우진은 코트 주머니 속에 든 단결정 사파이어 '마스터 암호 키'를 쥐었다.

 

모난 사파이어의 차갑고 예리한 모서리가 손바닥을 짓누르며 서늘한 긴장감을 일깨웠다.

 

유년기 신경 궤도 절제술의 상흔이 깊게 박힌 오른쪽 관자놀이에서 규칙적인 통증이 일었다.

 

그러나 과거처럼 뇌수를 쪼개는 듯한 살인적인 편두통은 아니었다.

 

더 이상 그의 시야를 어지럽히던 허깨비 같은 기하학적 도형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타인들의 머리 위를 짓누르던 백색 네모(□)나 파멸의 검은 세모(△)의 환영은 완전히 사라졌다.

 

오직 어둠 속에서 푸른빛으로 타오르는 순수한 눈동자만이 현실의 차가운 질감을 똑바로 포착하고 있었다.

 

계단 난간을 박차고 수직 중성자 차폐 터널로 몸을 던지듯 뛰어내리는 우진의 귓가에 걸린 소형 골전도 이어셋에서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터져 나왔다.

 

- 우진 씨, 들려요?

 

서연이에요.

 

지상 세 블록 밖 폐업한 지하 주차장 구석에 몸을 숨긴 한서연의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녀의 음성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했으나, 그 밑바닥에는 결코 꺾이지 않을 언론인의 단호한 신념이 깃들어 있었다.

 

- 전국 48개 거점의 독립 언론망과 P2P 릴레이 노드가 전원 연결을 마치고 대기 상태에 들어갔어요.

 

- 파주 은신처에서 송 선배와 채린 씨가 미러 큐브 백그라운드 포트의 최종 바이패스 경로를 활짝 열어뒀어요.

 

- 우진 씨가 1차 방어벽을 타격해서 상임이사회의 통제망에 0.1초라도 전압 강하를 일으키는 그 순간, 우리가 전국에 이 모든 증거 영상을 동시 폭격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서연 씨. 신호를 놓치지 마십시오."

 

우진은 낮게 읊조리며 터널 최하단의 완충 에어록 발판 위로 거칠게 착지했다.

 

슈우우욱—!

 

감압 밸브가 비명을 내지르며 고압 공기를 뿜어냈다.

 

눈앞에 열린 광경은 직경 3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원통형 수직 샤프트였다.

 

벽면 전체가 두꺼운 납과 중성자 흡수 합금 패널로 마감되어 외부와의 모든 전파와 인과율을 차단하는 폐쇄 구역.

 

그 거대한 공동의 정중앙, 굵은 탄소 섬유 와이어에 매달린 두 개의 작은 철제 케이지가 허공에 위태롭게 떠 있었다.

 

그리고 그 좁은 철창 안에 갇혀 있는 두 아이.

 

열두 살 남짓의 앳된 소년과 소녀였다.

 

15년 전 연구소 참사 당시 납치되어 장기 동면과 생체 개조를 당했던 피실험자 아이들, Subject-05 한지혜와 Subject-06 박태호였다.

 

2. 인간 방패의 비극

 

아이들의 여윈 목덜미에는 50원짜리 동전 크기의 차가운 티타늄 소켓이 흉측하게 박혀 있었다.

 

그 표면의 미세한 틈새로 붉은색 LED 경고등이 1초에 서너 번씩 번뜩이며 살인적인 고열을 뿜어내고 있었다.

 

[PROJECT NEMO : PROTO-DETONATOR / CLASS-S]

 

상임이사회가 어린아이들의 뇌간과 척수 신경에 직접 결속해 둔 최악의 살상 무기, '인과율 자폭 테르밋'이었다.

 

외부에서 비인가 생체 신호나 척력 파동이 반경 30미터 안으로 침범하는 즉시, 0.01초 만에 쇼트를 일으켜 아이들의 뇌세포를 하얗게 태워버리고 수천 도의 고온 플라스마로 터널 전체를 산화시키는 궁극의 인간 방패 트랩.

 

철창 속에 웅크려 이마를 무릎에 파묻고 있던 소년, 태호가 미세한 인기척을 느끼고 떨리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초점을 잃고 탈색되어 있던 아이의 메마른 눈동자가 허공을 헤매다 발판 위에 우뚝 선 우진을 포착했다.

 

"도…… 도망…… 쳐요……."

 

거칠게 튼 입술 사이로 피딱지가 찢어지며 갈라진 목소리가 터널 벽면을 울렸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팔다리가 사시나무 떨듯 경련하고 있었다.

 

"오면…… 안 돼요…… 머릿속에서…… 불이…… 붙어요…… 아저씨도 죽어요……."

 

옆 케이지에 갇힌 어린 소녀 지혜 역시 가냘픈 신음을 토해내며 철창 모서리에 머리를 짓이기고 있었다.

 

소녀의 목덜미에 박힌 티타늄 소켓 주변의 살갗은 이미 고열로 인해 검붉게 짓물러 매캐한 단백질 타는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우진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차가운 얼음 송곳 같은 분노가 솟구쳤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타인의 삶을 부품 취급하며, 아이들의 목숨마저 방패막이로 내세우는 서지훈과 상임이사회의 광기.

 

저 어린 생명들을 죽음의 문지기로 세워둔 채, 서지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코어 챔버 안에서 아버지 강정호의 뇌수를 짜내고 있었다.

 

우진은 숨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한 걸음을 내딛었다.

 

삐이익—!

 

터널 상부의 레이저 그리드가 우진의 움직임을 포착하자마자, 아이들의 목덜미 소켓에서 귓전을 찢는 듯한 고주파 기폭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자폭 시퀀스의 강제 가동이었다.

 

- 경고.

 

비인가 생체 노드 침범.

 

테르밋 기폭 회로 충전율 40%…… 60%…… 80%…….

 

천장에 매설된 인터콤 스피커에서 합성된 여성 기계음이 무감각하게 울려 퍼졌다.

 

- 우진 씨!

 

안 돼요!

 

놈들이 아이들을 터뜨릴 거예요!

 

당장 물러서요!

 

골전도 이어셋을 통해 서연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고막을 때렸다.

 

하지만 우진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발끝에 체중을 싣고 허공을 향해 벼락처럼 도약했다.

 

동시에 우진의 오른쪽 관자놀이 흉터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내리며, 체내에 각인된 방화벽 백신 코드가 전신의 혈관을 타고 맹렬하게 역류하기 시작했다.

 

'0.05초.'

 

과거 민도현의 목덜미에서 제어 칩을 뜯어냈을 때 그의 뇌리에 각인되었던 시간의 절대적 틈새.

 

상위 시스템의 살상 명령이 목덜미 소켓 회로에 도달해 물리적인 기폭 뇌관을 때리기까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인과율의 데이터 병목 시간.

 

파아아앗!

 

우진의 두 눈동자 속에서 투명한 푸른빛의 안광이 거대한 반원을 그리며 폭발했다.

 

우진의 신형이 허공을 갈라 두 철제 케이지의 한가운데로 번개처럼 파고들었다.

 

기폭 충전율이 99%를 넘어서며 소켓의 붉은 불빛이 백색 섬광으로 변하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우진의 양손이 허공을 갈라 두 아이의 목덜미 소켓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켜쥐었다.

 

"절대, 너희를 두고 가지 않는다."

 

우진의 낮고 묵직한 읊조림과 함께, 그의 양 손바닥에서 은빛과 푸른빛이 뒤섞인 역위상 백신 펄스가 거대한 격류가 되어 소켓의 미세 단말 핀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찌지지지직—!

 

콰쾅!

 

맹렬한 고전압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며 허공에서 파열음을 냈다.

 

시스템의 살상 기폭 신호와 우진의 백신 코드가 소켓 내부의 초전도 회로에서 정면으로 충돌했다.

 

살점이 타들어 가는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찔렀고, 과부하를 견디지 못한 우진의 손등 모세혈관이 터져 나가며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아이들의 어깨를 적셨다.

 

하지만 우진은 악문 어금니를 풀지 않았다.

 

오히려 손끝에 특이점의 절대 척력을 집속해, 소켓과 뇌간을 연결하던 나노 전극 다발을 단숨에 비틀어 뜯어냈다.

 

콰드득!

 

두 개의 티타늄 소켓이 불꽃을 뿜으며 허공으로 사출되었다.

 

공중으로 튕겨 나간 자폭 뇌관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푸르스름한 플라스마 불꽃으로 산화했다.

 

"크아아악!"

 

우진은 거친 숨을 토해내며 두 아이를 품에 안고 터널 바닥으로 부드럽게 낙하했다.

 

목덜미의 지옥 같은 고열에서 해방된 태호와 지혜가 우진의 피 묻은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은 채 가늘게 숨을 몰아쉬었다.

 

아이들의 거칠던 호흡이 점차 평온을 되찾기 시작했다.

 

생체 펄스 안정.

 

자폭 트랩 완전 무력화.

 

우진은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아이들의 등을 토닥인 뒤, 벽면의 두꺼운 방사선 차폐 격벽 안쪽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터널 바닥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선 최후의 관문, 오리진 코어의 거대한 방폭 정문을 응시했다.

 

두께 1미터에 달하는 특수 티타늄 합금 장갑판.

 

그 문 너머에서 거대한 슈퍼컴퓨터의 굉음과 함께, 촛불처럼 꺼져가는 부친 강정호의 마지막 뇌파 신호가 우진의 신경을 찌르고 있었다.

 

우진은 오른손 주먹을 쥐고 격벽 중앙의 전자 락 제어 패널을 향해 체중을 실어 내리꽂았다.

 

특이점의 절대 척력이 거대한 강철 쐐기가 되어 문짝을 강타했다.

 

콰아아앙—!

 

천지를 뒤흔드는 파쇄음과 함께 1미터 두께의 방폭문이 엿가락처럼 찌그러지며 안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오리진 코어의 1차 방어벽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그 충격으로 본사 사옥 전체의 전력망이 단락되며 붉은 비상등이 깜빡거렸다.

 

상임이사회가 방송망과 포털에 걸어두었던 레벨-4 언론 보안 락에, 마침내 0.1초의 전압 강하가 발생했다.

 

우진은 무전기를 향해 벼락처럼 포효했다.

 

"서연 씨! 지금입니다! 쏘세요!"

 

3. 엔터키를 누르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지상의 어두운 폐업 주차장 기둥 뒤편.

 

골전도 이어셋을 타고 꽂힌 우진의 외침에 서연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무릎 위에 올려둔 노트북 화면 우측 상단, 붉게 타오르던 상임이사회의 보안 락 게이지가 주황색으로 깜빡이며 0.1초의 공백을 드러냈다.

 

[SYSTEM ALERT : ORIGIN CORE BREACH / VOLTAGE DROP 0.12s]

 

서연의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쳤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15년간 억눌려 왔던 모든 진실의 파편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었다.

 

서연의 검지손가락이 노트북의 커다란 엔터키를 망설임 없이 내리찍었다.

 

탁—!

 

모니터 화면이 순백의 섬광을 뿜어내며, 소월도 관제실에서 추출했던 1,024개의 암호화 분할 패킷들이 광케이블 백본망을 타고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쏟아져 나갔다.

 

[프로메테우스 그리드 : P2P 분산 스트리밍 활성화]

 

[전국 48개 독립 거점 동시 락온 완료]

 

[미러 큐브 백그라운드 포트 역위상 침투 개시]

 

같은 시각, 경기도 파주시 문산천 외곽의 차폐 벙커.

 

송민규가 벽면에 설치된 거대한 기계식 나이프 스위치를 두 손으로 쥐고 온몸의 체중을 실어 아래로 내리꽂았다.

 

쿠구구궁—!

 

벙커 천장에 매달린 진공관 앰프 세 대가 붉은빛을 토해내며 살인적인 고주파음을 내뿜었다.

 

옥상에 솟아 있는 거대한 대형 단파 지향성 안테나가 150%의 오버클럭 전력을 머금고, 서울 상공의 사각 격자 돔을 향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전자기 빔을 쏘아 올렸다.

 

"열렸다! 뚫렸다고!"

 

송민규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며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전국의 500만 미러 큐브 단말기 포트가 전부 열렸어! 상임이사회 방화벽이 우리 패킷을 정상 시스템 데이터로 오인하고 지들이 직접 전국에 뿌리고 있다고!"

 

채린이 모니터로 달려들었다.

 

대한민국 전도 위에 찍혀 있던 수천 개의 푸른 점들이 일제히 붉은색과 백색으로 격렬하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서울, 인천, 수원, 춘천, 대전, 대구, 광주, 부산, 제주.

 

전국 48개 독립 언론인들의 거점에서 릴레이 서버들이 풀가동되며, 국가 기간망의 모든 검열 라우터를 완벽하게 우회한 탈중앙화 스트리밍 신호가 대한민국 전역의 디스플레이로 쏟아져 들어갔다.

 

"서연 기자님! 송출 시작됐어요!"

 

채린이 떨리는 두 손으로 마이크를 쥐고 외쳤다.

 

"대한민국 모든 스크린이…… 진실을 보기 시작했어요!"

 

4. 검은 화면의 반란

 

오후 2시 정각.

 

서울 광화문 네거리.

 

비상 계엄 선포로 인해 장갑차와 바리케이드가 도로를 점거하고, 소총을 든 계엄군들이 시민들의 통행을 통제하고 있던 그 회색빛 거리였다.

 

갑자기, 광화문 교보빌딩과 동아일보 사옥 외벽에 걸려 있던 수십 미터 크기의 거대한 옥외 상업 전광판들이 일제히 치직거리며 꺼졌다.

 

송출되던 정부의 비상 계엄 훈령과 공익 광고가 한순간에 지워졌다.

 

검은 침묵이 도심을 덮쳤다.

 

"어? 저거 왜 저래?"

 

"전광판 나갔는데?"

 

발걸음을 멈춘 시민들과 경계를 서던 군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허공으로 쏠렸다.

 

치지직…… 쉭…….

 

거친 백색 노이즈가 전광판 화면을 가로지르더니, 스피커를 통해 고막을 찢는 듯한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화면에 떠오른 거대한 텍스트.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세상은 조작되었습니다.]

 

그 직후, 거대한 전광판 화면이 분할되며 소월도 해상 요새 지하 관제실의 고화질 감시 카메라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화면 속에는 넥스트 큐브의 푸른색 정육면체 로고 아래, 수도권 전력망과 상수도를 마비시키고 팔당댐 수문을 강제 개방하려던 '플랜 B'의 카운트다운 모니터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뒤이어 서지훈의 차가운 육성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벼락처럼 울려 퍼졌다.

 

- 개돼지 같은 대중들에게 선택권 따위는 필요 없다.

 

사고의 순번을 정해주고, 죽음의 시간표를 배정하는 것만이 이 문명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다.

 

경악과 공포가 광화문 네거리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지나가던 회사원이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바리케이드를 지키던 어린 의경의 손에서 소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삐이익—!

 

삐이익—!

 

도심에 서 있던 수천, 수만 명의 시민들의 주머니와 가방 속에서 동시에 날카로운 재난 문자 알림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 500만 명이 사용하던 최적화 AI 앱, '미러 큐브'.

 

화면을 잠가두었던 스마트폰들이 사용자의 조작 없이 스스로 화면을 켜며 강제 팝업창을 띄웠다.

 

[긴급 공익 제보 : 당신의 인생 궤도는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 위로 쏟아져 내린 것은 단순한 영상이 아니었다.

 

각 사용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그리고 그들이 언제 취업에 실패하고, 언제 사기를 당하며, 언제 암에 걸려 죽을지가 사전에 수학 공식처럼 세팅되어 있던 'Class-D 희생 노드 할당 문서'의 원본 스캔본이었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승강장.

 

운행이 중단되어 멈춰 서 있던 전동차 안에서 승객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 이게 뭐야?! 내 이름이 왜 여기 있어?!"

 

"태성그룹 공채 탈락자 명단…… 사전 배정 코드?! 내가 시험을 못 봐서 떨어진 게 아니었다고?!"

 

"엄마! 아빠 병원비 대출 막힌 게…… 이 회사 놈들이 전산 조작한 거래! 여기 계좌 내역 다 나와 있어!"

 

스크린도어에 설치된 광고 모니터, 지하철 안내 단말기, 편의점 포스기, 은행 ATM 기기의 터치스크린까지.

 

대한민국의 전산망에 연결된 모든 디스플레이가 넥스트 큐브의 추악한 범죄 증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여의도 증권가 전광판에는 네오바이오젠 주가를 강제로 폭락시켜 수천 명의 개미 투자자들을 자살로 몰아넣었던 허위 공시 조작 IP와 내부 감사실의 녹취록이 실시간으로 흘렀다.

 

법조계와 정계 인사들의 자제들을 H-스퀘어 앱으로 세뇌해 정략결혼시키고 차세대 혈통을 가축화하려 했던 '상류층 3대 규격화 로드맵'의 친필 서명 문건이 고해상도 이미지로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숨이 멎을 듯한 진실의 쓰나미가 온 나라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5. 요동치는 도형들

 

그 순간, 기괴한 현상이 서울 도심을 뒤덮기 시작했다.

 

광화문, 강남역, 여의도, 명동.

 

스마트폰 화면과 전광판을 바라보며 진실을 마주한 수많은 시민들의 정수리 위였다.

 

우진의 눈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지만, 세상의 인과율 네트워크 속에서 그것은 분명한 물리적 파동이 되어 요동치고 있었다.

 

평생 동안 사회의 규격과 시스템의 명령에 순응하며 안정된 일상을 상징하던 '백색 네모(□)'.

 

그 무수히 많은 사각형들이 진실을 마주한 대중의 충격과 분노, 배신감에 의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위잉…… 윙…….

 

공간 전체가 공명하듯 낮은 진동음이 도심을 짓눌렀다.

 

시민들의 머리 위에 떠 있던 백색 네모의 네 꼭짓점에 미세한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떤 이의 네모는 자신의 삶이 조작되었다는 절망감에 휩싸여 검붉은 빛으로 오염되며 파멸의 '검은 세모(△)'로 뒤틀려 꺾여 올라갔다.

 

"거짓말이야…… 내 인생이 전부 거짓말이었다고?!"

 

무릎을 꿇고 통곡하는 중년 남성의 정수리 위에서 검은 세모가 위태롭게 회전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머리 위에서는 전혀 다른 파동이 일어났다.

 

자신의 삶을 통제하려 들었던 거대한 악에 대한 주체적인 분노.

 

더 이상 사각 틀에 갇히지 않겠다는 영혼의 각성이 터져 나오며, 검게 물들어가던 도형의 모서리가 스스로 깨어지고 상방을 향해 날카롭게 솟구쳤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뿜어내는 '백색 세모(△)'의 폭발이었다.

 

수백만 명의 도형이 집단적으로 요동쳤다.

 

백색과 검은색이 뒤섞이고, 사각형의 모서리가 파열되며 허공으로 무수한 빛의 파편을 흩뿌렸다.

 

시스템이 15년간 견고하게 유지해 왔던 '엔트로피 항상성 네트워크'가 대중의 집단적인 감정 폭발을 감당하지 못하고 임계치를 초과했다.

 

파지직!

 

콰직!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붉고 푸른 3차원 입체 사각 격자망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번져 나갔다.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 유리 파편들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도시 전체를 짓누르던 시스템의 중압감이 급격하게 붕괴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공포와 충격,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타오르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

 

"넥스트 큐브로 가자!"

 

누군가의 입에서 터져 나온 외침이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우리 인생을 장난감 취급한 놈들의 멱살을 잡아야 한다!"

 

"테헤란로로 가자! 본사로 가자!"

 

장갑차를 둘러싸고 있던 시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군인들은 총을 쏘지 못했다.

 

그들의 스마트폰에도 똑같은 진실이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총구를 내린 군인들의 틈새를 뚫고, 분노한 거대한 인간의 물결이 강남 테헤란로를 향해 노도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6. 오리진 코어의 문턱에서

 

지하 100미터, 넥스트 큐브 본사 최하층.

 

콰아아앙—!

 

찌그러진 방폭 셔터의 잔해를 밟고 우진이 마침내 오리진 코어 메인 통제 홀로 들어섰다.

 

사방을 둘러싼 벽면 전체가 수만 개의 광자 연산 블록으로 가득 차 있었고, 천장 높이 20미터의 거대한 돔형 공간 한가운데에는 칠흑 같은 액체로 가득 찬 원통형 생체 챔버가 솟아 있었다.

 

그리고 챔버 앞, 중앙 콘솔 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넥스트 큐브의 최고 설계자, 서지훈.

 

그의 얼굴은 극도의 분노와 경악으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벽면에 설치된 수백 대의 모니터 위로, 한서연과 전국 독립 언론인들이 쏘아 올린 폭로 영상과 함께 폭주하는 시민들의 실시간 중계 화면이 쏟아지고 있었다.

 

[SYSTEM ALERT : GLOBAL ENTROPY DEFICIT / OVERFLOW]

 

[결손 엔트로피 임계치 초과 : +9,840,000 EP]

 

[전국 사각 격자망 동기화율 12%로 급락]

 

대중의 각성으로 인해 시스템이 통제할 수 있는 한도를 아득히 넘어선 천문학적인 결손 엔트로피가 전산망을 불태우고 있었다.

 

서지훈이 핏발 선 눈으로 고개를 돌려 우진을 노려보았다.

 

그의 정수리 위에는 텅 빈 사각 테두리 형태의 '암흑의 프레임'이 미친 듯이 삐걱거리며 검은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다.

 

"강우진…… 네놈이…… 감히 네놈 따위가 문명을 불태우려 드느냐!"

 

서지훈이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질서가 무너지면 남는 것은 혼돈뿐이다! 통제 없는 자유는 재앙이란 말이다!"

 

우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서지훈의 등 뒤, 차가운 액체 챔버 안을 향해 있었다.

 

그곳에는 수십 가닥의 굵은 전극 케이블을 뇌간과 척수에 꽂힌 채, 의식을 잃어가고 있는 부친 강정호가 매달려 있었다.

 

챔버 상단의 전압 게이지는 이미 붉은색 한계선을 가리키고 있었다.

 

앞으로 수 분.

 

강정호의 뇌신경계가 완전히 타버리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우진이 코트 주머니에서 단결정 사파이어 '마스터 암호 키'를 꺼내 들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서지훈의 일그러진 얼굴을 똑바로 꿰뚫었다.

 

"질서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삶을 훔친 자여."

 

우진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거대한 코어 돔을 울렸다.

 

"네가 만든 가짜 천국은 여기서 끝이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