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함정
1. 벼랑 끝의 대치
"팀장님, 어젯밤 11시 20분 서버 로그 기록…… 정말 제가 접속한 게 맞습니까?"
우진의 입에서 흘러나온 음성은 낮고 건조했지만, 밀폐된 팀장실의 공기를 단숨에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평소의 그였다면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어깨를 움츠렸을 터였다.
박민재 팀장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늘 상대를 깔아뭉개던 오만한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지며, 입술 꼬리가 기괴하게 비틀렸다.
"뭐? 강 대리, 지금 나랑 말장난하자는 거야? 감사팀에서 이미 내부 IP랑 계정 로그 다 털어서 내 책상 위에 올려놨어. 자네가 어젯밤 야근하면서 사내 통합망에 로그인한 기록이 분초 단위로 남아 있다고!"
박 팀장은 신경질적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책상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서류철 위에 얹혀 있던 검은색 USB가 바닥으로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렀다.
그러나 우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박 팀장의 얼굴이 아니라, 그의 정수리 위 칠흑 같은 어둠을 뿜어내는 '검은 세모(△)'에 고정되어 있었다.
우진의 관자놀이를 찌르는 극심한 편두통은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을 짓이기듯 묵직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통의 이면에서 기이할 정도로 냉철한 감각이 깨어나고 있었다.
검은 세모의 표면에서 일렁이는 타르 같은 점성 물질 사이로, 미세한 균열이 벌어지며 파르르 떨리는 궤적이 보였다.
불안정하다.
이 함정은 완벽한 시나리오처럼 보이지만, 박 팀장이 쫓기듯 급조해 낸 탓에 치명적인 구멍이 존재하고 있었다.
'박 팀장은 누군가에게 등을 떠밀리고 있어. 실패하면 자기가 파멸하니까, 가장 만만하고 뒤탈 없는 나를 제물로 던진 거다.'
6년 동안 숨을 죽이고 팀의 부속품처럼 살아왔던 강우진.
튀지 않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침묵하던 만년 대리.
박 팀장의 계산 속에서 강우진은 사직서 한 장 던져주면 겁에 질려 회사를 뛰쳐나갈 완벽한 희생양이었을 터였다.
"강 대리. 내가 자네를 생각해서 조용히 덮어주려는 거야. 회사 차원에서 경찰에 고발장 들어가는 순간 자네 인생은 끝이야. 알아들어? 젊은 놈이 전과자 딱지 붙어서 어디 가서 밥 빌어먹고 살래?"
박 팀장이 의자에서 일어나 우진의 턱밑까지 다가왔다.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독한 니코틴 냄새와 함께, 검은 세모에서 흘러내린 불길한 실선들이 박 팀장의 어깨를 옭아매고 있었다.
그 꼭두각시 줄은 허공 너머, 보이지 않는 거대한 어둠으로 이어져 있었다.
우진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굳어 있던 어깨의 힘을 풀었다.
"팀장님. 저는 어젯밤 11시 20분에 사내 통합 물류망 서버에 접속한 적이 없습니다."
"이 자식이 끝까지 발뺌을 해?"
"어젯밤 11시 15분부터 11시 35분까지, 저는 본관 4층 대회의실에서 빔프로젝터 점검을 하고 있었습니다. 최 과장님이 퇴근하시기 직전에 제게 부탁하셨거든요. 대회의실 출입문 전자 도어록에 제 지문이 찍혀 있고, 복도 CCTV에도 제가 걸어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겁니다."
"……!"
박 팀장의 동공이 일순간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크게 흔들렸다.
2. 균열 속의 패착
박민재 팀장의 머리 위 검은 세모가 격렬하게 좌우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찌르르-
고주파 소음 같은 파열음이 우진의 귓가를 찔렀다.
박 팀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최, 최 과장……? 최 과장이 왜 자네한테 그걸 부탁해?"
"오늘 오전 9시 30분에 예정된 중국 바이어 화상 회의 장비 세팅이었습니다. 최 과장님이 어제 야근 지원을 요청하셨고, 저는 11시 10분에 14층 사무실을 나와 4층으로 내려갔습니다. 팀장님께서 말씀하신 유출 시간인 11시 20분에, 저는 14층 제 자리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우진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바닥에 떨어진 사직서 양식을 구두 끝으로 툭 건드렸다.
"제가 자리에 없던 그 시간에, 제 컴퓨터에 로그인해서 물류망 보안 코드를 복사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제 자리는 팀장실 바로 앞이라 사각지대도 아닙니다."
"강우진, 너……!"
박 팀장의 목소리가 찢어지듯 뒤집혔다.
오만하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궁지에 몰린 짐승 같은 당혹감이 그의 눈을 가득 채웠다.
우진은 놓치지 않고 쐐기를 박았다.
관자놀이의 통증을 악물며 박 팀장의 표정과 손짓, 그리고 허공에 매달린 검은 도형의 궤적을 꿰뚫어 보았다.
"그리고 팀장님. 저희 회사 통합 물류 시스템 2차 보안 코드는 일반 대리 직급의 계정으로는 다운로드 권한 자체가 없습니다. '팀장급 이상'의 마스터 보안 키와 OTP 인증이 동시에 들어가야만 파일 추출이 가능하죠. 제 계정으로 로그인되었다면, 그것은 누군가 제 아이디를 도용해 팀장님의 마스터 권한을 승인했다는 뜻이 됩니다."
"닥쳐! 네가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여!"
박 팀장이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떨리고 있었다.
박 팀장은 자신이 파놓은 함정이 얼마나 조잡했는지 그제야 깨달은 것이었다.
위에서 내려온 압박에 쫓겨, 어젯밤 늦게까지 남아 있던 만년 대리 우진의 컴퓨터를 켜고 대충 로그를 조작해 뒤집어씌우려 했던 졸렬한 계획.
우진이 평소처럼 공포에 질려 사직서에 도장을 찍고 회사를 나가주기만을 바랐던 요행수.
그 모든 계산이 우진의 정확한 알리바이와 시스템적 맹점 앞에서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우진은 서늘한 눈빛으로 박 팀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감사팀에서 올라오고 있다고 하셨습니까? 잘됐네요. 제가 직접 내려가서 감사팀장님께 삼자대면을 요청하겠습니다. 4층 대회의실 출입 기록과 14층 복도 CCTV 포렌식을 정식으로 의뢰하죠."
"강 대리! 잠깐, 내 말 들어봐!"
우진이 뒤돌아 팀장실 문고리를 잡으려 하자, 박 팀장이 다급하게 달려들어 우진의 팔을 붙잡았다.
그 순간, 박 팀장의 손을 통해 차갑고 끈적한 냉기가 우진의 피부를 타고 스며들었다.
그리고 우진의 시야에 믿을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
3. 뒤집히는 궤도
박민재 팀장의 머리에 떠 있던 '검은 세모(△)'의 모서리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뒤틀리기 시작했다.
칠흑 같던 검은 표면에 붉은 균열이 번개처럼 뻗어나가더니, 삼각형의 형태 자체가 사방으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우진의 머릿속에 벼락같은 충격이 내리꽂혔다.
‘바뀐다……!’
박 팀장의 운명 궤도가 우진의 반격으로 인해 통제 불능의 파멸 궤도로 꺾여 들어가고 있었다.
우진을 희생양으로 삼아 위기를 모면하려던 박 팀장의 계획이 좌절되면서, 본래 그가 짊어져야 했던 모든 죄과가 부메랑처럼 그 자신에게 쏟아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검은 세모는 이제 더 이상 우진을 겨냥하지 않았다.
날카롭게 깨진 파편들이 거꾸로 박 팀장의 정수리를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강 대리, 제발…… 내가 잠깐 착각했나 봐. 어젯밤에 내가 술을 좀 마셔서 제정신이 아니었어. 감사팀에는 내가 다시 보고할게. 응? 우리가 3년을 같이 일했는데 이렇게 얼굴 붉힐 필요 없잖아."
박 팀장의 목소리는 이제 비굴한 애원에 가까웠다.
이마에서는 비 오듯 식은땀이 흘러내려 턱 끝으로 뚝뚝 떨어졌다.
셔츠 카라는 이미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우진은 박 팀장의 손을 차갑고 매몰차게 뿌리쳤다.
"착각이요? 사람 하나를 산업스파이로 몰아 인생을 매장하려 해놓고, 이제 와서 착각이라고 하십니까?"
"강우진!"
그 순간, 쾅 소리와 함께 팀장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사내 셋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선두에 선 남자는 차가운 은테 안경을 쓴 기획본부장, 정현석 본부장이었다.
규칙과 사규에 따라 한 치의 감정 없이 움직이는 조직의 집행자다운 형상이었다.
"박민재 팀장."
정 부장의 서늘한 목소리가 방 안을 갈랐다.
박 팀장의 얼굴은 이미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정, 정 부장님…… 여긴 어쩐 일로……."
"어젯밤 발생한 차세대 물류 소스코드 유출 건으로 긴급 감사가 발동됐습니다. 박 팀장, 당신 자리 PC와 외장 하드, 그리고 개인 랩톱 전부 압류합니다."
감사팀 직원 둘이 신속하게 박 팀장의 책상으로 다가가 컴퓨터 본체 선을 뽑고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박 팀장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휘청거리며 책상을 짚었다.
"아닙니다, 부장님! 오해입니다! 그건 제가 아니라 저기 있는 강우진 대리가……!"
"추하게 굴지 마십시오, 박 팀장."
정 부장이 태블릿 PC를 들어 올려 화면을 박 팀장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방금 전 본사 보안관제센터에서 전송된 실시간 패킷 분석 보고서가 띄워져 있었다.
"당신이 외부 IP로 쏜 암호화 파일, 당신 개인 명의로 개설된 해외 차명 계좌로 연결된 컨설팅 회사 서버로 들어간 게 10분 전에 확인됐습니다. 강우진 대리의 계정으로 1차 접속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자, 당신 본인의 마스터 OTP로 우회 승인한 로그까지 전부 포렌식으로 복구됐어요."
완벽한 사형선고였다.
4. 박 팀장의 몰락과 검은 궤도
박민재 팀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머리 위에서 파열하던 검은 세모는 이제 완전히 붕괴되어, 붉은 피와 검은 먹물이 뒤섞인 듯한 흉측한 독극물의 형상으로 변해 있었다.
그 검은 잔해들이 박 팀장의 온몸을 휘감으며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환영이 우진의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감사팀 직원들이 박 팀장의 양팔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박민재 팀장, 사내 보안 규정 위반 및 업무상 배임, 영업비밀 유출 혐의로 즉시 직위 해제 처리되었습니다. 본사 법무팀에서 형사 고발장 접수 중이니 감사실로 동행하시죠."
박 팀장은 넋이 나간 눈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
그의 입술은 덜덜 떨리고 있었고, 신발 카운터에 발이 걸려 비틀거렸다.
팀장실 문을 나서는 순간, 그가 우진과 눈이 마주쳤다.
그 눈동자에는 우진을 향한 원망이 아니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공포가 담겨 있었다.
박 팀장이 떨리는 입술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놈들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날 버렸어. 그놈들이……."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혼잣말이었다.
우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놈들?’
박 팀장의 배후에 누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의 입을 통해 직접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사무실 밖 기획 2팀 직원들은 웅성거리며 끌려 나가는 박 팀장을 경악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쥐 죽은 듯 조용한 사무실에는 키보드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정 부장이 우진을 향해 돌아섰다.
"강우진 대리."
"네, 부장님."
"본의 아니게 조사가 늦어져 곤욕을 치를 뻔했군요. 사내 인트라넷 계정 보안 점검이 끝나는 대로 정상 업무 복귀하시면 됩니다. 고생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장님."
정 부장과 감사팀 직원들이 팀장실을 빠져나갔다.
사무실 안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묘한 고요함에 휩싸였다.
동료들이 우진의 주위로 몰려와 괜찮냐며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우진의 귀에는 그 어떤 소리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박 팀장의 마지막 마디로 가득 차 있었다.
우진은 바닥에 뒹굴고 있던 박 팀장의 만년필을 내려다보았다.
관자놀이를 짓누르던 두통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안도감 대신, 거대한 빙산의 일각을 목격한 자의 서늘한 전율이 온몸을 지배했다.
5. 궤도의 법칙
점심시간, 우진은 식사를 거르고 회사 옥상으로 올라왔다.
테헤란로의 빌딩 숲 위로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지만,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난간에 팔을 얹고 까마득한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수천 명의 사람들.
그들의 머리 위에는 저마다의 백색 네모가 질서정연하게 떠서 움직이고 있었다.
우진은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과 볼펜을 꺼냈다.
어젯밤 지하철 사고와 오늘 박 팀장의 사건을 머릿속에서 차분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첫째.
'네모(□)'는 안정된 일상이다.
아무런 사고나 위기 없이, 기존의 삶을 그대로 반복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둘째.
'세모(△)'는 삶의 궤도가 크게 꺾이는 파동과 변화다.
어젯밤의 임원은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변화를 맞이했고, 박 팀장은 사회적 몰락과 파멸이라는 변화의 기로에 섰다.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도형의 색깔.'
우진은 수첩에 굵은 글씨로 적어 내려갔다.
[흰색 =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 / 본인의 선택]
[검은색 = 외부의 강제적 개입 /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조작]
박 팀장의 머리 위에 떴던 그 칠흑 같은 검은 세모.
그리고 박 팀장이 끌려가며 내뱉었던 마지막 말.
‘그놈들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날 버렸어.’
박 팀장은 단순히 개인의 탐욕 때문에 산업스파이 짓을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거대한 배후 조직이 박 팀장의 약점을 쥐고 흔들며 비리를 강요했고, 일이 틀어지자 가차 없이 그를 꼬리 자르기로 버린 것이었다.
어제 지하철에서 보았던 대기업 임원의 죽음과 3분의 속보 오차.
그리고 나에게 정보유출의 누명을 씌우려던 박 팀장의 조작된 몰락.
이 모든 사건들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누군가 도시 전체의 보이지 않는 전산망과 사람들의 인생 경로를 쥐락펴락하며, 특정 궤도를 강제하고 있었다.
우진은 관자놀이의 흉터를 다시 한번 매만졌다.
찌릿한 잔류 통증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15년 전, 천재 통계학자였던 아버지가 갑자기 실종되기 직전에 남겼던 마지막 메모가 뇌리를 스쳤다.
[인간의 선택은 자유롭지 않다. 시스템이 완성되는 순간, 인류는 영원히 네모 속에 갇히게 될 것이다.]
"아버지…… 대체 무엇을 연구하셨던 겁니까."
우진의 나지막한 읊조림이 메마른 바람을 타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바로 그때였다.
지상을 내려다보던 우진의 시야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수많은 백색 네모들 사이로 이질적인 형태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네모도, 세모도 아닌 완벽한 곡선의 형태.
'동그라미(○)?'
우진이 숨을 멈추고 눈을 비볐을 때, 그 형상은 이미 빌딩 숲의 인파 속으로 자취를 감춘 뒤였다.
거대한 진실의 소용돌이가 강우진이라는 인간을 향해 서서히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