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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네모 세모 동그라미로 간다 · 제 25화

시장 교란 작전

📅 2026-10-02 18:10•✍️ 만우자•👁️ 0•

1. 붉은 입방체

 

태성C&I 옥상 테라스의 허공을 가르는 바람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바닥에 널브러진 굵직한 광케이블 단면에서는 여전히 푸르스름한 스파크가 탁탁 튀며 타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강우진은 잘려 나간 케이블에 눈길조차 줄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옥상 출입문 계단 꼭대기에 멎어 있었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짙은 회색 정장에 단정한 은테 안경을 쓴 사내였다.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데도 남자의 옷자락은 기이할 정도로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리고 그 남자의 정수리 위.

 

우진의 시신경이 맹렬하게 타오르며 관자놀이의 흉터가 찢어질 듯한 통증을 내뿜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진이 마주했던 그 어떤 도형과도 완전히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일반 감시관들이 머리 위에 띄우던 3차원의 검은 육면체가 아니었다.

 

3중으로 겹쳐 돌아가던 중앙 집행관들의 큐브도 아니었다.

 

선홍빛에 가까운 핏빛 광채를 뿜어내는 정육면체.

 

그 육면체는 허공에서 제자리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안쪽 면이 바깥으로 뒤집히고 바깥 면이 다시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며 4차원 초입방체처럼 기괴하게 팽창과 역회전을 반복하고 있었다.

 

도형의 표면을 타고 흐르는 문자는 일반적인 제어 코드가 아니었다.

 

도시 전체의 금융망과 생체 신호를 실시간으로 집행하는 붉은 인과율의 수식들이었다.

 

"임무 실패에 따른 노드 폐기."

 

남자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기계음처럼 무미건조했다.

 

"부회장 최원석의 권한은 방금부로 영구 박탈되었다."

 

남자는 안경테를 검지로 가볍게 밀어 올렸다.

 

"그리고 K-07. 미등록 프로토타입 강우진."

 

남자의 뒤편으로 검은 방탄 코트를 입은 네 명의 그림자가 소리 없이 계단을 타고 올라와 테라스 양옆으로 산개했다.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일반적인 화약 총기가 아니었다.

 

총열 전체가 반투명한 푸른 수정 튜브로 이루어진 기괴한 형상의 화기였다.

 

튜브 내부에서는 사각 격자망의 파동이 맹렬한 속도로 압축되며 치익거리는 고주파 소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인과율 집속 병기.

 

물리적 관통력을 넘어 생체의 궤도 신경망 자체를 개념적으로 도려내는 네모 프로젝트 본사의 특수 무장이었다.

 

"본사 통제감사실 수석 감사관, 도진우다."

 

도진우라는 남자가 우진을 내려다보며 담담하게 덧붙였다.

 

"역삼역 중앙 코어의 손실에 이어 태성 노드의 금융 대체 파이프라인까지 물리적으로 차단하다니. 15년 전 폐기되었어야 할 결함품치고는 제법 과분한 변수를 창출했군."

 

우진은 입술을 짓이기며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광케이블을 절단하며 흡수했던 막대한 인과율 역류 에너지 탓에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비릿한 피를 삼켜 넘기며, 우진은 왼손에 쥐고 있던 피 묻은 소방 도끼를 고쳐 쥐었다.

 

"폐기... 결함품? 여전히 사람 목숨을 시스템 부품 따위로 보고 있군."

 

"착각하지 마라, 강우진."

 

도진우의 붉은 큐브가 날카로운 금속음을 내며 회전 각도를 바꿨다.

 

"이 도시는 시스템이 부여한 사각의 규격 덕분에 숨을 쉬고 있는 거다. 네가 방금 끊어버린 케이블로 인해 결손된 인과율 18,400 에러 포인트. 그 오차는 사라지지 않는다. 시스템의 항상성 법칙을 모르는 건 아닐 텐데?"

 

도진우가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의 뒤에 도열한 네 명의 집행관이 일제히 인과율 집속 화기의 총구를 우진에게로 겨누었다.

 

"네가 한 사람의 파멸을 억지로 틀어막을 때마다, 그 반작용은 다른 노드의 목을 조른다. 네오바이오젠의 주가 폭락을 막았다고 해서 구원이 완성되었을까?"

 

도진우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비틀렸다.

 

"여의도 증권가의 대체 전산망은 이미 가동되었다. 기관과 외국계 펀드로 위장한 넥스트 큐브의 하부 알고리즘이 지금 이 순간에도 네오바이오젠을 향해 매도 물량을 쏟아붓고 있다. 거래 정지는 고작 몇 분 벌어주는 임시 조치에 불과해."

 

"그 매도 타이밍을 흔들어버리면 그만이다."

 

우진이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받아쳤다.

 

"뭐?"

 

"너희 알고리즘은 '정해진 시간'과 '약속된 속보'에 의존하지. 그 균형이 깨진 순간, 너희가 짠 판은 역으로 무너진다."

 

우진의 오른쪽 귀에 꽂힌 무선 이어셋에서 지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한서연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우진아!

 

내 말 들려?

 

방재실 메인 서버에서 금융감독원과 증권거래소 공시망 직통 라인을 열었어!

 

우진은 대답 대신 미세하게 턱을 끄덕였다.

 

도진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소거해라. 궤도 파편 하나 남기지 말고 영구 결번 처리한다."

 

도진우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네 정의 인과율 집속 병기에서 눈이 멀 것 같은 푸른 섬광이 일제히 뿜어져 나왔다.

 

2. 인과율의 탄도

 

투우웅—!

 

공기가 압축되었다가 터져 나가는 파열음은 일반 총성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실탄이 날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허공을 찢으며 날아오는 것은 격자 형태로 직조된 고밀도의 푸른 인과율 에너지 덩어리였다.

 

그것이 스치는 순간 뇌간에 각인된 생체 궤도가 강제로 비틀려 영구적 뇌사 상태에 빠진다는 것을 우진의 직관이 경고하고 있었다.

 

우진은 관자놀이의 흉터에 신경을 집중했다.

 

'심층 구조 분석(Deep Analysis).'

 

시야 전체가 차가운 청색으로 반전되었다.

 

동시에 네 명의 집행관 총구 끝에서 뻗어 나오는 반투명한 푸른 광선 궤적이 허공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0.3초 뒤에 실체화될 공격 탄도였다.

 

왼쪽 둘은 우진의 하체를, 오른쪽 둘은 흉부와 두부를 노리고 있었다.

 

피할 틈새는 오직 한 점뿐이었다.

 

우진은 망설이지 않고 몸을 앞으로 날렸다.

 

바닥을 구르며 케이블이 매설되었던 강철 배관 뒤로 파고들었다.

 

콰아아앙!

 

우진이 찰나 전까지 서 있던 콘크리트 바닥에 푸른 섬광이 내리꽂혔다.

 

파편이 튀는 것이 아니라, 맞닿은 콘크리트 자체가 검붉은 노이즈를 일으키며 입방체 모양으로 깎여 나가 소멸했다.

 

물리적 파괴가 아닌 개념적 소거였다.

 

'저런 걸 맨몸으로 맞았다간 백신이고 뭐고 뼈도 못 추린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우진의 눈동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변화 감지를 유지하는 동안, 우진은 집행관들의 머리 위를 관찰했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고정된 검은 네모(■)가 떠 있었다.

 

일체의 감정도, 망설임도 없는 기계화된 단말들.

 

그러나 바로 그 완벽한 통제가 그들의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0.3초의 데이터 병목.'

 

도진우의 붉은 큐브에서 하달되는 연산 명령이 집행관들의 신경계에 도달하고 근육이 반응하기까지, 반드시 0.3초의 인과율 지연 시간이 발생한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취했을 유연한 대응이 이들에게는 불가능했다.

 

— 탕!

 

우진은 품에서 빼든 권총으로 첫 번째 집행관의 오른쪽 무릎을 정확히 꿰뚫었다.

 

탄환이 푸른 궤적선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어 관절을 부수자, 기계처럼 서 있던 집행관의 신체가 휘청하며 중심을 잃었다.

 

"연산 오차 발생."

 

집행관의 입에서 메마른 음성이 흘러나왔다.

 

우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닥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소방 도끼의 날카로운 자루 끝으로 두 번째 집행관의 총열을 쳐내 허공으로 빗나가게 만든 뒤, 품을 파고들어 그의 관자놀이를 팔꿈치로 강타했다.

 

콰득!

 

도끼를 내던진 우진은 쓰러지는 집행관의 품에서 인과율 집속 병기를 낚아챘다.

 

묵직한 금속성의 무게감과 함께 차가운 전자기 진동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K-07, 장비 노획 확인."

 

나머지 두 명의 집행관이 총구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우진의 반응이 0.3초 더 빨랐다.

 

우진은 방아쇠를 당겼다.

 

투우웅—!

 

총구에서 터져 나온 푸른 격자 파동이 세 번째 집행관의 흉부를 직격했다.

 

그 순간 집행관의 머리 위에 떠 있던 검은 네모가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파열음을 냈다.

 

푸른 전류가 온몸을 감싸자 집행관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의식을 잃었다.

 

시스템과의 링크가 끊겨 셧다운된 것이다.

 

"쓸모없는 인형들 같으니."

 

도진우의 서늘한 목소리가 옥상에 울려 퍼졌다.

 

어느새 마지막 남은 집행관마저 우진의 정확한 견착 사격에 가슴을 얻어맞고 쓰러진 뒤였다.

 

불과 10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4인의 감사실 특수 집행관이 무력화되었다.

 

그러나 도진우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머리 위에 뜬 4차원 붉은 큐브가 더 거대한 크기로 부풀어 오르며 옥상 전체를 핏빛 그림자로 뒤덮기 시작했다.

 

공간 자체가 우그러지는 듯한 기괴한 중압감이 우진의 어깨를 짓눌렀다.

 

"기초적인 반응 속도와 궤적 예측인가. 강정호 박사가 남긴 장난감이 제법 쓸만하군."

 

도진우가 천천히 품 안에서 은색 만년필 모양의 소형 단말기를 꺼냈다.

 

"하지만 네가 착각하는 게 있다. 현장에서 몇 명을 쓰러뜨린다고 해서, 이미 거대하게 직조된 금융 격자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다."

 

도진우가 단말기의 상단을 가볍게 눌렀다.

 

치지직—

옥상 상공에 매설된 보이지 않는 통제 격자망이 반응하듯, 하늘 한구석에 붉은색 시스템 상태창이 홀로그램처럼 투영되었다.

 

[네오바이오젠(098420) 시장 재개 카운트다운: 00:03:00]

 

[기관 연합 알고리즘 공매도 매도 주문 대기: 5,800,000주]

 

[체결 즉시 하한가 진입 및 연쇄 마진콜 발동 예정]

 

[예상 희생 노드(검은 세모) 동기화 인원: 4,198명]

 

한국거래소의 거래 정지가 풀리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3분.

 

그 3분이 지나면 넥스트 큐브의 차명 기관 계좌들이 580만 주에 달하는 가공의 매도 물량을 쏟아부어 네오바이오젠을 기어이 바닥으로 처박을 터였다.

 

그렇게 되면 여의도 증권가 객장의 수천 명은 다시 한번 파멸의 검은 세모를 머리 위에 띄우고 투신 궤도로 내몰리게 된다.

 

"보아라, 강우진."

 

도진우가 차갑게 웃었다.

 

"이것이 네모의 섭리다.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인간들은 스스로 공포에 질려 주식을 내던지고 파멸의 나락으로 뛰어내릴 것이다. 그들이 가진 나약한 탐욕과 공포가 바로 우리 시스템을 지탱하는 가장 완벽한 톱니바퀴니까."

 

3. 방재실의 역습

 

같은 시각, 태성C&I 본사 1층 중앙 방재실.

 

모니터 수십 대가 벽면을 가득 채운 통제실 내부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바닥에는 기절한 사내 특수 경비 요원 서넛이 결박된 채 쓰러져 있었고, 메인 콘솔 앞에는 한서연이 앉아 있었다.

 

서연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를 맹렬한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타타타타탁!

 

화면 위로 복잡한 전산망 네트워크 경로와 대한일보 기자 전용 송고 시스템, 그리고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 관리자 백도어가 겹겹이 떠올랐다.

 

윤채린이 전해주었던 부친 윤 연구원의 마이크로 칩 데이터가 콘솔의 USB 포트에서 푸른빛을 점멸하며 방대한 양의 암호화 로그를 풀어내고 있었다.

 

"서연 선배! 거래 재개까지 이제 2분 40초 남았어요!"

 

방재실 문가에서 동그라미의 은빛 파동을 전개해 복도의 보안 스캐너를 교란하고 있던 윤채린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채린의 이마에도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건물 외부에서 방재실로 접근하려는 추가 경비 병력의 발걸음 소리가 복도 너머에서 희미하게 울리고 있었다.

 

"알고 있어, 채린아. 거의 다 됐어."

 

서연의 눈동자가 모니터의 푸른빛을 받아 날카롭게 빛났다.

 

서연은 단순한 기자가 아니었다.

 

15년 전, 테헤란로 한복판에서 연구소가 불타고 강정호 박사가 실종되었을 때부터 이 거대한 음모의 배후를 추적해 온 유일한 추적자였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넥스트 큐브가 언론과 금융을 어떤 방식으로 주물러왔는지에 대한 방대한 취재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었다.

 

화면에 붉은 경고창이 깜빡였다.

 

[대한일보 편집국 데스크: 긴급 기사 승인 대기 중]

 

[기사 제목: [단독] 네오바이오젠 횡령설은 사실무근...

 

3상 임상 성공 공식 데이터 단독 입수]

[작성자: 사회부 한서연 기자]

 

하지만 송고 버튼은 회색으로 비활성화되어 있었다.

 

화면 우측 상단에 붉은색 자물쇠 아이콘과 함께 차가운 알림창이 떴다.

 

[편집국장 직권 보류: 확인되지 않은 미확인 정보로 인한 송고 차단]

 

"하, 역시나."

 

서연이 냉소를 터뜨렸다.

 

편집국장 류진태.

 

평소에는 합리적인 언론인 행세를 하던 그 작자의 머리 위에도, 지난번 사옥 로비에서 스쳐 지나갈 때 보았던 꼭두각시 줄이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시스템의 검은 손길은 이미 메이저 언론사의 데스크 깊숙한 곳까지 뻗어 있었다.

 

사전 작성된 허위 폭락 기사는 1초의 지체도 없이 메인 포털에 걸어주면서, 진실을 밝히는 반박 보도는 직권으로 묵살한다.

 

이것이 그들이 여론을 통제하고 사람들의 궤도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류 국장, 당신이 잊은 게 있어."

 

서연의 입꼬리가 단호하게 올라갔다.

 

"기자는 데스크의 결재판만 바라보는 샐러리맨이 아니야."

 

서연은 주저 없이 편집국의 승인 절차를 우회하는 비상 송고 프로토콜을 가동했다.

 

과거 방송통신위원회와 인터넷 진흥원 출입 시절 확보해 두었던 국가 재난 언론 전송망(K-Alert) 우회 포트였다.

 

윤 연구원의 칩에서 추출한 시스템 관리자 마스터 키가 방화벽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팟—!

 

모니터에 녹색 승인 창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긴급 정정보도 및 공시 승인 완료]

 

[국내 14개 주요 포털 및 증권사 HTS/MTS 뉴스 피드 동시 강제 팝업 전송 시작]

 

[금융감독원 DART 시스템: 네오바이오젠 관련 허위 풍문 유포 세력 조사 착수 긴급 공시 등록]

 

동시에 서연은 헤드셋의 마이크를 턱밑으로 바짝 당겼다.

 

"우진아! 지금이야! 지상의 언론과 공시망에 불을 질렀어! 놈들의 전산망 알고리즘에 직접 쐐기를 박아!"

 

4. 호가창의 균열

 

— 지이이잉!

 

옥상 테라스의 허공에 떠 있던 도진우의 단말기가 거칠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도진우의 표정이 처음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의 머리 위에 떠서 유려하게 역회전하던 4차원 붉은 큐브의 꼭짓점이 미세하게 떨리며 불협화음을 냈다.

 

[경고: 예상치 못한 외부 팩트 데이터 난입]

 

[포털 및 금융 전산망에 정정 보도 팝업 강제 노출]

 

[개인 투자자 매도 심리 지수: 98% - 42%로 급락]

 

"한서연 기자... 쥐새끼 같은 언론인 하나가 감히 시스템의 승인 체계를 우회해?"

 

도진우의 서늘한 목소리에 서릿발 같은 살의가 깃들었다.

 

하지만 흔들림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우진이 들고 있던 인과율 집속 병기의 총구를 바닥에 꽂힌 메인 분전함의 광케이블 단자로 겨누고 있었다.

 

"내가 말했지."

 

우진의 눈동자가 푸르게 타올랐다.

 

"너희 알고리즘은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움직인다고. 그 타이밍을 단 1초라도 어긋나게 만들면, 쏟아부은 매도 폭탄은 너희 목을 꺾는 흉기가 된다."

 

"멈춰라, K-07! 그 라인을 완전히 태워버리면 이 일대의 통신 격자망 자체가 영구 쇼트를 일으킨다!"

 

도진우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이며 손을 뻗었다.

 

그러나 우진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투우웅—!

 

고밀도의 인과율 파동이 태성C&I 옥상 메인 분전함의 심장부를 관통했다.

 

콰지지지직!

 

옥상 바닥 전체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진동하며 눈이 멀 것 같은 백색 섬광이 폭발했다.

 

사옥 18층의 분산 백업 코어로 연결되던 고압 광통신 루프가 내부에서부터 타올라 전산망에 막대한 역위상 전류를 역류시켰다.

 

그 역류는 서울 상공의 사각 격자망을 타고 여의도 한국거래소와 외국계 투자은행 서버로 직결된 전용선으로 사납게 번져나갔다.

 

치지직, 콰아앙!

 

도진우의 허공 모니터에 떠 있던 네오바이오젠의 호가창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오전 09:30:00 - 매매 거래 재개]

 

본래 시스템의 각본대로라면 거래가 재개되자마자 580만 주의 공매도 매도 폭탄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며 단 1초 만에 하한가로 직행했어야 했다.

 

그러나 서연이 띄운 긴급 정정보도와 금감원의 허위 풍문 조사 착수 공시가 전국의 HTS 화면을 뒤덮었다.

 

그리고 우진이 터뜨린 인과율 쇼트로 인해, 넥스트 큐브 기관 계좌의 매도 주문 패킷이 0.7초의 치명적인 전송 지연(Lag)을 일으켰다.

 

금융 시장에서 0.7초는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매도 주문이... 엉켰어?"

 

도진우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정정보도를 보고 패닉 바잉(Panic Buying)으로 돌아선 수만 명의 개인 매수세와, 저가 매수를 노리고 유입된 거대 기관의 봇(Bot) 프로그램들이 하한가에 걸려 있던 물량을 순식간에 집어삼키기 시작한 것이다.

 

체결창에 붉은색 매수 숫자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네오바이오젠: -29.8% - -15.2% - -4.1% - +8.9%]

 

하한가로 곤두박질치던 주가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단숨에 플러스로 반전되었다.

 

사전에 하한가를 예상하고 막대한 규모의 무차입 공매도를 쳤던 넥스트 큐브의 차명 계좌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천문학적인 숏 스퀴즈(Short Squeeze) 위기에 직면했다.

 

주가가 폭등하자 공매도 포지션을 유지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강제 환매수(숏 커버링) 주문이 연쇄 발동된 것이다.

 

[시스템 에러: 기관 계좌 인과율 회수 실패]

 

[추정 손실액: 1,420억 원 돌파]

 

[금융 파이프라인 붕괴: 엔트로피 결손 수치 +64,000 EP로 급증]

 

"크윽... 허억!"

 

도진우가 가슴을 움켜쥐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던 거대한 4차원 붉은 큐브의 외벽에 쩌적, 하는 불길한 파열음과 함께 깊은 균열이 생겨났다.

 

자신들이 남들을 집어삼키기 위해 파놓았던 파멸의 궤도가 역류하여, 고스란히 시스템 수뇌부의 목덜미를 물어뜯은 탓이었다.

 

궤도 붕괴 및 자멸 역류 현상.

 

타인을 파멸시키려던 악의적인 함정이 논리적으로 좌절될 때 발생하는 인과율의 무자비한 보복이었다.

 

5. 끊어진 올가미

 

같은 시각, 여의도의 대형 증권사 영업부 객장.

 

유리창 밖으로 뿌연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객장 안은 쥐 죽은 듯한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곡소리와 비명이 난무하던 아수라장이었다.

 

전광판 아래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50대 남성 강태식은 멍하니 전광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충혈되어 있었지만, 눈빛을 가득 채우고 있던 시커먼 광기는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전광판 한가운데, 시퍼런 파란색으로 곤두박질치며 절망을 고하던 네오바이오젠의 글자가 선명한 붉은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네오바이오젠: 74,200원 (+14.5%) - 거래량 폭증]

 

"올라간다..."

 

누군가의 떨리는 중얼거림이 객장의 침묵을 깼다.

 

"올라간다고! 가짜 뉴스였어! 임상 성공이 맞대!"

 

"살았다... 하느님 맙소사, 살았어!"

 

객장 곳곳에서 울음 섞인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는 노인도 있었고, 멍하니 전광판을 바라보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회사원도 있었다.

 

강태식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옥상 난간으로 자신을 끌고 가던 그 끔찍한 강박과 환청이 거짓말처럼 멎어 있었다.

 

'뛰어내려라. 다 끝났다. 네 인생은 여기서 끝이다.'

 

귓가를 맴돌며 영혼을 옥죄던 그 차갑고 끈적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뭔가가 툭 끊어지는 느낌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강태식의 눈앞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던 칠흑 같은 검은 세모(△)는 산산이 부서져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본래 그가 누려야 했을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 은은한 빛을 발하는 안정된 백색 네모(□)가 천천히 제 형태를 찾아 내려앉았다.

 

객장 안에 있던 수백 명, 아니 대한민국 전역에서 네오바이오젠의 모니터를 쳐다보며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렸던 4,200여 명의 투자자들.

 

그들의 머리 위를 짓누르던 검은 꼭두각시 줄이 일제히 끊겨 나가며 하늘 높이 흩날렸다.

 

그것은 시스템이 강제로 집행하려던 대규모 파멸 궤도가 인간들의 자각과 진실의 폭로 앞에 완벽히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강태식은 주머니에서 진동하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에는 '우리 딸'이라는 세 글자가 떠 있었다.

 

"아빠... 뉴스 봤어? 괜찮은 거야? 걱정돼서..."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딸아이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강태식은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주저앉았다.

 

"그래... 아빠 괜찮다. 괜찮아... 이제 집으로 갈게. 집으로 갈 테니까 울지 마라..."

 

그는 살아남았다.

 

시스템이 정해둔 붉은 죽음의 시간표를 찢어버리고, 평범하고 소중한 하루를 되찾은 것이다.

 

6. 어둠 속의 지령

 

태성C&I 옥상 테라스.

 

도진우는 가슴팍을 부여잡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은테 안경 너머 눈동자가 핏발로 물들어 있었다.

 

머리 위의 붉은 큐브는 본래의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를 잃고, 모서리가 찌그러진 채 위태롭게 삐걱거리고 있었다.

 

"시장 교란이라... 대규모 숏 스퀴즈를 유도해 시스템의 자본 파이프라인을 역으로 타격하다니."

 

도진우의 목소리에 전에 없던 서늘한 증오가 묻어났다.

 

"네깟 결함품 놈이 감히... 시스템의 자산을 탕진하게 만들어?"

 

우진은 차갑게 식어가는 인과율 집속 화기를 도진우의 미간으로 겨누었다.

 

"남의 피눈물로 지탱하던 시스템이다. 무너지는 게 당연해."

 

"오만하군, K-07."

 

도진우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의 몸 주위로 붉은색 노이즈가 지지직거리며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공간 전송을 위한 시스템 비상 회수 프로토콜이었다.

 

"오늘의 손실은 기록되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서울의 격자망은 네 생각보다 훨씬 깊고 방대하게 뿌리내려 있다."

 

도진우의 신체가 붉은 입방체 파편으로 흩어지며 허공으로 녹아들기 시작했다.

 

"네 놈의 궤도는 이미 시스템의 최고 위험 등급으로 갱신되었다. 다음 집행은... 이런 식의 경고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팟—!

 

붉은 빛무리와 함께 도진우의 신체가 옥상에서 완전히 소멸했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차가운 강풍만이 휑하니 불어닥칠 뿐이었다.

 

"하아... 쿨럭!"

 

적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우진은 들고 있던 총기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참아왔던 피가 입술 사이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단기간에 방화벽 백신 코어를 극한까지 오버클럭하고, 집속 병기의 반동과 인과율 쇼트를 온몸으로 받아낸 대가였다.

 

시야가 흐려지고 오른쪽 관자놀이의 수술 흉터가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쑤시는 것처럼 욱신거렸다.

 

— 우진아!

 

강우진!

 

정신 차려!

 

무선 이어셋을 통해 서연의 찢어지는 듯한 외침이 들려왔다.

 

— 1층 방재실 상황 정리됐어!

 

건물 밖으로 나와!

 

채린이가 차를 대기시켜 놨어!

 

우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옥상 난간을 짚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비틀거리며 비상계단을 향해 발을 내딛는 우진의 시야 저 멀리, 서울 도심의 풍경이 흐릿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같은 시각, 서울 모처의 지하 깊숙한 암반 통제실.

 

역삼역 지하 7층 코어가 무너진 뒤 가동된 넥스트 큐브의 비상 대체 작전실이었다.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둘러싸인 방 한가운데, 거대한 홀로그램 스크린이 허공에 떠 있었다.

 

스크린에는 붉은색 글씨로 깜빡이는 시스템 로그가 끝없이 갱신되고 있었다.

 

[긴급 인과율 보고서]

 

[발생 위치: 태성C&I 및 여의도 금융망]

 

[결손 엔트로피: +64,000 EP (임계치 초과)]

 

[주요 원인: 프로토타입 K-07(강우진)의 직접 개입 및 시장 교란 작전]

 

[판정: Class-AAA 시스템 영구 소거 대상]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머리 위에는 텅 빈 사각 테두리, 수백 가닥의 제어선에 신경계를 꿰뚫린 채 삐걱거리며 회전하는 '암흑의 프레임(Dark Frame)'이 떠 있었다.

 

서지훈이었다.

 

역삼역 코어 폭발 당시 가까스로 탈출한 그의 얼굴은 한쪽 뺨이 불에 덴 듯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눈동자는 핏빛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치익—

서지훈의 뒤편 통신 콘솔에서 붉은 불빛이 켜지며 변조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 감사실의 보고는 들었다.

 

최원석에 이어 도진우 감사관마저 K-07을 제압하는 데 실패했더군.

 

"면목 없습니다, 상임이사회."

 

서지훈이 뼈마디가 하얗게 드러나도록 주먹을 쥐며 고개를 숙였다.

 

머리 위의 암흑의 프레임이 신경계를 쥐어짜듯 욱신거렸지만, 그는 고통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 K-07 강우진.

 

그 결함품은 이제 단순한 국소적 방해꾼이 아니다.

 

도시 전체의 격자망을 내부에서부터 갉아먹는 '시스템 위협체(System Hazard)'로 규정한다.

 

스피커 너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 더 이상의 관용이나 데이터 수집은 무의미하다.

 

일반 집행관이나 감사실의 형식적인 프로토콜로는 놈의 백신을 무력화할 수 없어.

 

"그렇다면..."

 

서지훈의 눈이 번뜩였다.

 

— 2단계 각성 개체에게는 그에 걸맞은 집행자가 필요하지.

 

봉인되어 있던 '검은 집행관(Black Executor)'을 기동해라.

 

서지훈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번졌다.

 

검은 집행관.

 

자유의지는 물론이고 인간으로서의 모든 뇌 기능을 완벽히 거세한 채, 오직 중앙 시스템의 살상 알고리즘만을 직접 수신해 움직이는 네모 프로젝트의 살아있는 인간 병기였다.

 

"즉시 기동하겠습니다. 놈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 가장 완벽한 절망을 꽂아 넣겠습니다."

 

— 놈의 숨통을 끊고, 머릿속에 각인된 백신 코어 데이터를 통째로 적출해 와라.

 

실패는 곧 네 존재의 영구 삭제다, 서지훈.

 

통신이 뚝 끊겼다.

 

서지훈은 홀로그램 스크린에 떠 있는 강우진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화면 속 우진의 얼굴 위로 붉은색 조준경 마크가 낙인처럼 찍혔다.

 

"강우진... 네 아비 곁으로 곧 보내주마."

 

어둠 속에서 서지훈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음산하게 메아리쳤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