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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네모 세모 동그라미로 간다 · 제 23화

궤도 비틀기

📅 2026-10-02 18:10•✍️ 만우자•👁️ 0•

1. 닫힌 문의 저편

 

태성C&I 본사 18층의 공기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무거웠다.

 

유리벽 너머로 테헤란로의 마천루들이 장난감 블록처럼 늘어서 있었지만, 복도 안쪽은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진공관 같았다.

 

우진은 1호 면접실 문손잡이에 닿았던 손을 천천히 거두었다.

 

방금 전 주입한 윤 연구원의 역위상 패킷은 완벽하게 면접실 내부의 신경망을 뒤흔들어 놓았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당혹스러운 웅성거림과 찢어지는 듯한 기계음이 그 증거였다.

 

우진의 관자놀이 흉터가 파열하듯 욱신거렸다.

 

15년 전 아버지가 머릿속에 심어 두었던 방화벽 백신 코어가 뇌간을 타고 거세게 맥동하고 있었다.

 

시야 전면에 푸른 잔상이 튀어 올랐다.

 

능력 2단계, 심층 분석의 파동이 강제로 열리며 눈앞의 풍경을 기하학적 데이터로 재구성했다.

 

1호 면접실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과율의 파장이 복도 바닥을 타고 붉은 파문처럼 번져 나가고 있었다.

 

그 파문의 종착지는 복도 정면 끝, 겉면을 흑단목으로 위장 마감한 특수 방폭문이 달린 전략기획실 부회장실이었다.

 

문 위쪽에 달린 금빛 명패가 무색하게, 그 문틈에서는 칠흑 같은 검은 선들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허공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도시 상공의 거대한 사각형 격자망과 직결된 초고압 궤도 송출 케이블의 잔상이었다.

 

쿵.

 

복도 뒤편 비상계단 방화문이 거칠게 열리며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특수 경비 요원 네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일체의 떨림도, 망설임도 없는 '고정된 검은 네모(■)'가 기괴할 정도로 정지된 채 박혀 있었다.

 

자유의지가 완전히 거세된 넥스트 큐브의 기계화 단말들이었다.

 

"침입자 식별. Class-D 격리 구역 내 비인가 생체 노드 감지."

 

선두에 선 요원이 감정 없는 음성으로 속삭이며 허리춤에서 고압 전자기 충격봉을 뽑아 들었다.

 

우진의 눈에 그들의 미래 동선이 반투명한 붉은 궤적으로 먼저 그려졌다.

 

0.4초 뒤, 좌측 요원이 우진의 어깨를 노리고 쇄도할 것이며, 우측 요원은 도주로를 차단하기 위해 복도 벽을 타고 압박해 올 터였다.

 

'명령 하달과 근육 반응 사이의 지연 시간, 0.3초.'

 

기계적으로 통제된 인간들이 필연적으로 겪는 시스템의 병목 현상이었다.

 

우진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달려드는 첫 번째 요원의 충격봉이 허공을 가르기 직전, 우진은 상체를 반 보 비틀며 파고들었다.

 

치익, 공기를 태우는 푸른 스파크가 귓가를 스쳤다.

 

우진은 파고든 탄력을 그대로 실어 요원의 명치에 팔꿈치를 내리꽂았다.

 

쿵 하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요원의 신체가 허물어졌다.

 

동시에 우진은 바닥에 떨어진 전자기 충격봉을 발끝으로 걷어 올려 손에 쥐었다.

 

뒤따라오던 두 번째 요원이 완벽하게 각진 궤도로 완력을 휘둘렀지만, 이미 우진의 시야에는 그의 다음 타격 지점이 붉은빛으로 선명히 투영되어 있었다.

 

우진은 몸을 낮추며 충격봉을 적의 무릎 관절 틈으로 찔러 넣고 방아쇠를 당겼다.

 

지지직!

 

요원의 전신이 경련을 일으키며 뒤로 나자빠졌다.

 

머리 위의 검은 네모에 일순간 잡음이 일더니 껍데기만 남은 인형처럼 기능이 정지했다.

 

"물러서지 마라. 코어 연산률 98% 유지 중."

 

남은 두 요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권총형 테이저건의 총구를 들어 올렸다.

 

우진은 망설이지 않고 벽면의 비상소화전함을 충격봉 끝으로 후려쳤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강화유리가 깨져 나가며 소방 호스 밸브가 터졌다.

 

초고압의 물줄기가 좁은 복도를 향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바닥을 가득 채운 물을 향해 우진은 손에 쥔 고압 전자기 충격봉의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내던졌다.

 

푸콰쾅!

 

전도된 전류가 푸른빛의 호를 그리며 복도 바닥 전체를 집어삼켰다.

 

두 요원의 정수리 위 검은 네모가 파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파열음을 냈다.

 

뇌간에 직접 연결된 시스템 통제선이 과전류를 이기지 못하고 역류를 일으킨 것이었다.

 

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차가운 물바닥 위로 무너져 내렸다.

 

정적.

 

타는 냄새와 자욱한 수증기 사이로 우진의 거친 숨소리만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우진은 소매로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관자놀이의 4cm 수술 흉터가 불에 덴 듯 뜨거웠다.

 

하지만 쉴 틈은 없었다.

 

복도 끝 부회장실의 검은 선들이 더욱 흉포하게 요동치며 복도의 공기를 조여 오고 있었다.

 

2. 뒤틀린 평가표

 

우진은 걸음을 옮겨 다시 1호 면접실 문 앞에 섰다.

 

문 안쪽의 상황은 처참한 혼돈에 빠져 있었다.

 

내정자 박도현의 정수리 위 검은 네모가 쇼트를 일으켜 헛소리를 지껄인 직후, 면접실 내부는 얼어붙은 침묵과 당혹감에 휩싸여 있었다.

 

우진은 조용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면접관 테이블 중앙에 앉은 태성그룹 인사총괄 전무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정수리 위로 뻗어 나간 검은 통제선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누, 누구야! 경비는 뭐 하고 이런 놈이 들어오게 놔둔 거야!"

 

전무가 쉰 목소리로 소리쳤지만, 테이블 위의 태블릿과 대형 모니터는 여전히 붉은색 오류 코드만을 무한히 뿜어내고 있었다.

 

[CRITICAL ERROR : PHASE INVERSION DETECTED]

 

[BACKUP NODE OVERLOAD]

 

우진은 전무의 고함을 완전히 무시한 채, 면접관 테이블 중앙으로 성큼 다가갔다.

 

테이블 위에는 각 지원자의 이름이 적힌 태성그룹 공식 심사 평가표와 봉인된 심층 질문지 파일철이 놓여 있었다.

 

우진의 시선이 그 종이들을 스쳤다.

 

심사표 상단에는 이미 모든 지원자의 최종 점수가 붉은색 잉크로 인쇄되어 있었다.

 

이진혁: 52점 (D등급, 부적격 - 탈락 확정).

 

면접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 청년이 어떤 대답을 하고 어떤 역량을 보여주든 상관없이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시스템이 설계한 '희생 노드 사전 할당제'의 추악한 민낯이었다.

 

반면 바닥에 쓰러져 뇌전증 환자처럼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박도현의 평가표에는 99점이라는 만점이 찍혀 있었다.

 

우진은 입술을 짓씹으며 주머니에서 한서연이 방재실에서 탈취해 건네주었던 또 다른 봉투를 꺼냈다.

 

그것은 태성C&I가 3년 전 극비리에 개발하다가 외부 유출 사고로 폐기 처분했던 차세대 분산 물류 알고리즘의 원본 분석 과제였다.

 

기존의 정형화된 면접 질문지 따위가 아니었다.

 

오직 시스템의 기만적인 통제망을 꿰뚫어 보고, 현장의 왜곡된 데이터 구조를 스스로 의심할 수 있는 자만이 답할 수 있는 살아있는 질문이었다.

 

우진은 전무의 손밑에 놓여 있던 조작된 평가표와 사전 질문지를 낚아채듯 거두어들였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당장 내려놓지 못해?"

 

전무가 비명을 지르며 우진의 손목을 잡으려 들었다.

 

그러나 우진의 차가운 눈빛이 전무의 망막을 꿰뚫었다.

 

우진의 정수리 주변으로 은빛 파동이 미세하게 소용돌이쳤다.

 

그 순간, 전무의 머리 위에 연결되어 있던 검은 통제선이 지직거리며 일순간 느슨해졌다.

 

전무는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에 부딪힌 사람처럼 숨을 헐떡이며 뒤로 물러앉았다.

 

우진은 준비해 온 원본 기술 질문지를 전무의 테이블 정중앙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전무의 귓가에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당신이 살고 싶다면, 이 질문지를 읽어. 네 정수리를 쥐고 흔드는 그놈들이 널 어떻게 버릴지 똑똑히 보고 싶지 않다면."

 

전무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사정없이 흔들렸다.

 

평생 대기업의 정점에 서서 남들의 운명을 재단해 왔다고 믿었던 남자의 눈에, 처음으로 자신이 거대한 도살장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는 원초적 공포가 스쳐 지나갔다.

 

우진은 뒤돌아 면접자 석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지원자 이진혁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의 머리 위, 칠흑처럼 어두운 검은 세모(△)가 여전히 불길한 회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불합격, 그로 인한 학자금 대출의 압박, 가족의 파탄, 영구적인 사회적 낙오.

 

시스템이 이 청년에게 배정해 둔 파멸의 시간표가 초읽기에 들어가 있었다.

 

그 세모의 꼭짓점에서 뻗어 나온 가느다란 검은 실선이 천장 너머, 부회장실의 백업 코어를 향해 연결되어 있었다.

 

3. 벼랑 끝의 증명

 

우진은 천천히 이진혁의 앞으로 걸어갔다.

 

진혁은 온몸을 떨며 우진을 올려다보았다.

 

자신과 함께 면접을 보던 완벽한 스펙의 내정자가 기계처럼 무너져 내리고, 정체불명의 남자가 난입해 면접장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광경에 그의 이성은 붕괴 직전이었다.

 

"너, 4년간 준비했던 물류 네트워크 최적화 논문."

 

우진이 입을 열었다.

 

건조하지만 단단한 목소리가 얼어붙은 면접실의 공기를 갈랐다.

 

"그거, 태성C&I의 중앙 집중형 허브 방식이 가진 치명적인 결함을 지적한 내용이었지?"

 

진혁의 눈이 크게 뜨였다.

 

누구에게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학계의 주류 교수들조차 '비현실적인 궤변'이라며 폐기하라고 면박을 주었던 자신의 졸업 논문이었다.

 

"너는 알고 있었어. 중앙 서버가 모든 데이터를 독점하고 통제하는 방식은 언젠가 반드시 병목을 일으키고, 한 번 무너지면 전체 시스템이 마비된다는 걸."

 

우진은 진혁의 멱살을 잡듯 그의 시선을 똑바로 응시했다.

 

"하지만 너는 세상이 요구하는 네모난 틀에 맞추기 위해 그 생각을 스스로 죽였지. 미러 큐브가 추천해 주는 모범 답안을 달달 외우고, 그들이 원하는 정답만을 읊조리며 네 생각을 지워버렸어. 그 결과가 뭔지 아나?"

 

우진의 손끝이 진혁의 머리 위 허공을 가리켰다.

 

진혁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우진의 시야 속에서 검은 세모는 점점 더 짙은 어둠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들이 널 위해 준비한 자리는 합격이 아니야. 시스템의 쓰레기를 치우기 위한 소모품, 희생양의 자리다."

 

"그, 그게 무슨……."

 

진혁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눈물이 고인 눈동자에 억울함과 절망이 뒤섞여 요동쳤다.

 

"저는…… 저는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에요! 시키는 대로 다 했단 말입니다! 학점도, 토익도, 자격증도, 그 AI 앱이 시키는 시간에 맞춰서 자고 일어났어요! 그런데 왜…… 대체 왜 저한테 이러는 건데요!"

 

청년의 절규가 면접실 벽을 때렸다.

 

그것은 시스템에 길들여진 수백만 평범한 소시민들이 언젠가 터뜨려야 할 피 맺힌 고함이었다.

 

테이블 너머에서 전무가 떨리는 손으로 우진이 던져둔 질문지를 집어 들었다.

 

우진이 뿜어내는 기형적인 위압감과, 모니터에 떠오른 시스템 오류 메시지의 공포에 짓눌린 전무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종이에 적힌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지, 지원자 1047번 이진혁……."

 

전무의 메마른 음성이 침묵을 깼다.

 

"중앙 집권형 물류 코어가 외부의 악의적인 인과율 왜곡 공격을 받았을 때…… 각 지역의 분산 노드가 독자적인 생존성을 확보하기 위한 자율 복구 아키텍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면접관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진혁에게 쏠렸다.

 

미러 큐브의 예상 질문집에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 오직 현장의 극한과 시스템의 본질을 이해해야만 던질 수 있는 질문.

 

진혁의 호흡이 멎었다.

 

그의 뇌리 속에 지난 4년간 도서관 구석에서 밤을 지새우며 홀로 스케치했던 수천 장의 네트워크 다이어그램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교수도, 선배들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오직 자신만의 논리와 집념으로 완성했던 바로 그 이론이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어.'

 

진혁의 눈동자 속에서 흔들리던 절망의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시스템이 주입했던 패배감과 열등감의 껍질이 금이 가며 부서져 내렸다.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남들이 정해준 네모난 궤도를 따라 걷던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발로 세상의 법칙에 의문을 제기했던 그 시절의 순수한 열망이 피어올랐다.

 

"……중앙의 승인을 기다리지 않는 것입니다."

 

진혁의 입술 사이로 단단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면접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각 노드가 중앙 서버의 지령을 수동적으로 수신하는 구조를 버려야 합니다. 이상 징후가 감지되는 즉시, 말단 노드들은 스스로 자율 폐쇄망을 형성하고…… 인접한 노드들과 상호 검증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중앙이 썩었다면, 가지를 잘라내고 뿌리부터 다시 자라나야 합니다!"

 

진혁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떨림이 없었다.

 

그것은 억눌려 있던 한 인간의 지성과 자유의지가 거대한 통제 시스템을 향해 내던지는 당당한 선전포고였다.

 

4. 백색의 전환

 

파지직!

 

그 순간, 우진의 시야에 기적이 일어났다.

 

이진혁의 정수리 위에 떠 있던 검은 세모(△)가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검은 표면 위로 가느다란 백색 실금이 거미줄처럼 번져 나갔다.

 

진혁이 스스로의 의지로 시스템의 각본을 깨부수고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증명해 낸 순간, 외압에 의해 강제되었던 왜곡의 궤도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었다.

 

우진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관자놀이의 흉터가 찢어지는 듯한 격통을 뿜어냈지만, 우진은 방화벽 백신 코어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우진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방화벽 백신 코어의 강력한 백색 파동이 허공을 갈랐다.

 

우진은 진혁의 정수리로 뻗어 있던 검은 꼭두각시 줄을 맨손으로 움켜쥐듯 공간을 낚아챘다.

 

쩌저적!

 

유리창이 깨지는 듯한 명징한 파열음이 허공에서 울렸다.

 

진혁의 영혼을 옭아매고 있던 시스템의 통제선이 우진의 백색 파동에 의해 단칼에 절단되었다.

 

"크아악!"

 

동시에 진혁의 머리 위에 갇혀 있던 파멸의 에너지가 우진의 몸을 향해 무섭게 역류해 들어왔다.

 

인과율 보존 법칙.

 

한 사람의 정해진 파멸을 거두어낼 때 발생하는 엔트로피의 쓰나미였다.

 

우진의 뇌혈관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코끝으로 뜨거운 비혈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그러나 우진의 신경계에 각인된 강정호의 방화벽 백신 코어가 맹렬히 회전하며 그 검은 파멸의 에너지를 집어삼켜 중화하기 시작했다.

 

우진은 이를 악물며 버텨냈다.

 

'사라져라…… 이 아이의 삶에서 꺼져라!'

 

우진이 낮게 포효하며 손을 털어내자, 진혁의 머리 위에 위태롭게 떠 있던 검은 세모가 눈부신 백색의 섬광을 뿜어냈다.

 

탁하고 더러운 칠흑의 색상이 순식간에 탈색되며 투명하고 맑은 백색으로 반전되었다.

 

그리고 세모의 세 꼭짓점이 부드럽게 늘어나며, 기존의 파멸 궤도를 벗어난 새로운 가능성의 파동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체된 일상의 네모(□)도, 파멸의 검은 세모(△)도 아니었다.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눈부시게 빛나는 '백색 세모(△)'였다.

 

새로운 삶의 방향을 향해 힘차게 꺾여 올라가는, 자유의지의 벡터.

 

"허억…… 헉……."

 

진혁은 가슴을 움켜쥐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를 짓누르고 있던 보이지 않는 거대한 맷돌이 산산조각 난 것처럼, 폐부 깊숙이 상쾌한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눈앞이 거짓말처럼 맑아져 있었다.

 

면접관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이진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태블릿 화면에서, 붉은색으로 고정되어 있던 이진혁의 점수가 실시간으로 요동치며 95점, A등급으로 강제 갱신되고 있었다.

 

면접장의 전산망이 우진의 백신 코드와 진혁의 궤도 반전에 의해 완전히 오버라이드된 것이었다.

 

우진은 피를 흘리는 입가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한 영혼을 도살장의 궤도에서 낚아채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진혁의 궤도가 강제로 비틀리며 방출된 인과율의 충격파는, 18층 복도를 지나 저 멀리 도시 전체를 관제하는 거대한 신경망의 심장부를 직격하고 있었다.

 

5. 붉게 물든 서버

 

우진의 예상은 정확했다.

 

면접실에서 불과 수십 미터 떨어진 18층 복도 끝, 겉면을 흑단목으로 위장 마감한 특수 방폭문 너머의 부회장실 내부.

 

그곳은 대기업 임원의 집무실이 아닌, 수십 대의 슈퍼컴퓨터 랙과 초고압 광케이블이 얽혀 있는 거대한 전산 요새였다.

 

역삼역 지하 7층 중앙 코어가 폭발한 직후, 도시의 궤도 통제를 이어받은 '분산 백업 코어 1호'가 웅웅거리며 냉각 팬을 돌리고 있었다.

 

치지직, 팟!

 

갑작스러운 전압 폭주와 함께 룸 중앙을 채우고 있던 대형 메인 프레임 모니터들이 일제히 핏빛으로 물들었다.

 

수천 줄의 녹색 시스템 로그가 멈추더니, 화면 전체를 뒤덮는 거대한 붉은 경고창이 팝업되기 시작했다.

 

[FATAL SYSTEM ALERT : NODE INTEGRITY COMPROMISED]

 

[TARGET ID : NODE-1047 (LEE JIN-HYUK)]

 

[ORBIT STATE CORRUPTED : BLACK TRIANGLE - WHITE TRIANGLE]

 

[CAUSE : UNKNOWN EXTERNAL INTERFERENCE (K-07 SIGNATURE DETECTED)]

 

[ENTROPY REVERSAL FAILED.

 

CAUSALITY OVERFLOW : +48.7%]

방 한가운데, 칠흑 같은 암흑의 프레임을 머리 위에 띄운 채 콘솔 앞에 서 있던 남자가 거칠게 키보드를 내리쳤다.

 

콘솔의 백라이트가 남자의 얼굴을 창백하게 비추었다.

 

태성C&I 부회장이자, 15년 전 넥스트 큐브 시절부터 강정호 박사의 곁에서 프로젝트의 자금과 인프라를 총괄했던 배후의 거물, 최원석이었다.

 

그의 머리 위에서 회전하는 암흑의 프레임은 서지훈의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흉측했다.

 

사각의 빈 테두리 사이로 수백 가닥의 은빛 신경선이 그의 척수와 두개골을 파고들어, 방 전체의 서버 랙과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K-07. 강우진, 네놈이 기어이 여기까지 기어 올라왔구나."

 

최원석의 메마른 입술 사이로 기괴하게 변조된 음성이 흘러나왔다.

 

모니터 속의 붉은 에러 로그는 멈출 줄 모르고 증식했다.

 

면접장 지원자 80명의 불합격 궤도를 집행하여 태성그룹의 인적 자원을 완벽한 꼭두각시들로 교체하려던 넥스트 큐브의 계획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것이었다.

 

이진혁이라는 단 하나의 노드가 백색 세모로 전환되자, 인접한 다른 지원자들의 검은 세모에도 연쇄적인 균열이 발생하고 있었다.

 

시스템의 항상성을 유지하던 엔트로피의 수치가 위험 수위인 90%를 돌파하며 붉은 경고등이 요란하게 회전했다.

 

삐이이익—!

 

관제실 전체에 고막을 찢는 비상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최원석은 붉게 물든 화면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감히 중앙 코어의 유지를 거부하고 버러지 같은 놈들의 궤도를 비틀어? 섭리를 거스른 대가가 무엇인지 내 친히 가르쳐주마."

 

최원석이 콘솔 옆의 붉은색 레버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도시 상공, 태성C&I 옥상에 설치된 거대한 위성 송수신 안테나가 푸른 방전을 일으키며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서울 전역의 금융망과 주식 시장 전산망을 향해, 잠복해 있던 또 다른 파멸의 알고리즘을 강제 송출하기 위한 준비였다.

 

쾅!

 

그때, 굳게 닫혀 있던 부회장실의 방폭문이 굉음과 함께 안쪽으로 찌그러지며 날아갔다.

 

자욱한 연기와 불꽃 사이로, 피를 흘리면서도 흔들림 없는 눈빛을 한 강우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푸른빛을 번뜩이는 전자기 충격봉이 들려 있었고, 양 눈동자는 차가운 은빛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추악한 기계 놀음, 여기서 끝내러 왔다."

 

우진의 서늘한 선언이 부회장실의 붉은 경고음을 짓누르며 울려 퍼졌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