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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네모 세모 동그라미로 간다 · 제 21화

넥스트 큐브의 이면

📅 2026-10-02 18:10•✍️ 만우자•👁️ 0•

1. 젖은 아스팔트 위의 피신처

 

새벽 비가 그친 강남대로의 이면도로는 매캐한 아스팔트 기름 냄새와 축축한 새벽 냉기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군데군데 움푹 팬 웅덩이마다 번들거리는 네온간판의 잔영이 흐트러졌고, 차가운 빗물을 머금은 바람이 골목 어귀를 스산하게 훑고 지나갔다.

 

강우진(姜宇鎭)은 물기를 흠뻑 머금어 묵직해진 레인코트 옷깃을 턱 끝까지 바짝 세운 채 낡은 5층 상가 빌딩 사이의 비좁은 틈새로 몸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축축하고 거친 콘크리트 외벽에 등을 기대자마자 살갗을 뚫고 뼛속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한기와 함께, 오른쪽 관자놀이에 길게 남은 4센티미터의 흉터가 마치 시뻘겋게 달군 굵은 송곳으로 후벼 파는 것처럼 날카롭게 욱신거렸다.

 

두개골 안쪽의 시신경 다발이 불규칙하게 진동하며 눈앞에 푸른 잔상이 튀었다.

 

선로 위를 구르며 삐걱거리는 발목의 둔탁한 통증보다 더 뼈아프게 가슴을 난도질하는 것은, 불과 수십 분 전 지하 7층 암반 공동에서 겪었던 생생한 감각이었다.

 

어두운 지하철 선로 자갈밭 위에서 서서히 체온을 잃어가던 아버지 강정호(姜正浩)의 싸늘한 손을 놓아야만 했던 그 순간의 질감이 손바닥 가죽 위에 지워지지 않는 붉은 낙인처럼 남아 있었다.

 

'사각의 틀을 깨는 마스터키가 되어라…… 멈추지 마라, 우진아.'

 

폐부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핏물과 함께 아버지가 마지막 숨을 쥐어짜며 남긴 쉰 목소리가 귓바퀴를 맴돌 때마다, 늑골 아래 명치끝에서 차디찬 분노가 불길처럼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그 거대한 상실감에 무릎을 꿇고 통곡할 시간조차 잔혹한 현실은 한 치도 허락하지 않았다.

 

역삼역 지하 깊숙한 곳에서 도시의 인과율을 주무르던 암반층 중앙 코어가 산산이 무너져 내렸음에도, 지상 위의 서울은 소름 끼칠 정도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평온한 아침을 열어가고 있었다.

 

도로 위를 빗자루질하며 지나가는 노란 청소차의 깜빡이 불빛, 지하철 첫차를 타기 위해 우산을 접으며 총총걸음을 옮기는 피로에 찌든 행인들, 그리고 편의점 차양막 아래서 캔커피를 들이켜는 직장인들의 정수리 위에는 여전히 은은한 백색 네모(□)들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질서정연하게 박혀 있었다.

 

중추 연산 장치가 화염 속으로 사라졌는데도 도시를 옭아맨 거대한 사각 격자망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숨을 거두기 직전 피를 토하며 경고했던 '분산 백업 코어'의 존재가 단순한 위협이나 과장이 아니었음을, 눈앞에 펼쳐진 소름 돋는 일상이 차갑게 증명하고 있었다.

 

중앙 심장이 터져 나갔음에도 거대한 괴물은 이미 또 다른 혈관을 찾아 피를 돌리기 시작한 셈이었다.

 

우진이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마른침을 삼키던 찰나, 눅눅한 어둠 저편에서 낮고 조심스러운 음성이 가늘게 울려 퍼졌다.

 

"우진 씨, 이쪽이에요. 어서요."

 

상가 건물 뒤편, 칠이 벗겨진 채 부식된 지하 보일러실 철문을 조심스럽게 밀어 열고 나타난 한서연이 다급하게 손짓하고 있었다.

 

그녀의 등 뒤편 좁고 어둑한 계단참 아래에는, 헐렁한 검은색 후드티 모자를 눈썹 위까지 깊게 눌러쓴 윤채린이 젖은 골목의 동태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살피며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우진은 흙탕물이 튄 코트 자락을 거칠게 털어내며 삐걱거리는 지하 계단 속으로 빠르게 발을 들였다.

 

묵직한 철문이 둔탁한 금속음을 내며 굳게 닫히고 낡은 빗장이 걸리자, 바깥세상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단절되며 퀴퀴한 곰팡이와 기름때 찌든 먼지가 뒤섞인 미지근하고 탁한 공기가 코끝을 찔렀다.

 

이곳은 서연이 종합일간지 사회부 기자로 뛰던 시절, 권력형 비리를 고발하려는 은밀한 내부 제보자들을 안전하게 접견하기 위해 임시로 마련해 두었던 사설 세이프하우스였다.

 

건물 외벽의 공식 전기계량기는 전원이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지만, 방음판이 덧대어진 벽면 안쪽의 낡은 철제 캐비닛과 간이 테이블 위에는 차량용 대용량 리튬 배터리와 휴대용 사설 위성 단말기가 연결된 채 이미 푸르스름한 모니터 화면을 서늘하게 밝히고 있었다.

 

2. 봉인된 칩과 언론의 장막

 

서연은 낡은 플라스틱 접이식 의자를 우진의 뒤편으로 끌어다 놓으며, 보온병 마개를 열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온수를 종이컵에 조심스럽게 따랐다.

 

"몸 상태는 좀 어때요? 아까 역삼역 폐선로 자갈밭을 내달릴 때 발목을 크게 접질린 것 같아서 걱정했어요. 얼굴도 잿빛이에요."

 

"견딜 만합니다. 뇌간 쪽에서 치솟던 과부하 반작용도 차가운 바람을 맞으니 조금은 가라앉았어요."

 

우진은 떨리는 손으로 종이컵을 받아 쥐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컵 표면을 통해 전해지는 온기가 차갑게 굳어 있던 손가락 마디마디를 녹여주었고, 한 모금 삼켜낸 따뜻한 물이 타들어 가듯 바싹 메말라 있던 식도와 내장을 간신히 진정시켜 주었다.

 

탁자 맞은편에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있던 채린이 점퍼 안쪽 깊숙한 방수 포켓에서 가로세로 3센티미터 남짓한 투명 아크릴 케이스를 조심스럽게 꺼내 탁자 중앙에 내려놓았다.

 

그 단단한 플라스틱 케이스 속에는 인간의 머리카락보다도 가느다란 수천 가닥의 금빛 회로가 기하학적 미로처럼 촘촘히 얽혀 있는 직사각형 마이크로 데이터 칩이 영롱한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15년 전, 화염에 휩싸였던 네모 프로젝트 극비 연구소를 탈출했다가 끝내 의문의 연쇄 추돌 사고로 위장 살해당했던 채린의 부친, 윤 연구원이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며 끝끝내 숨겨두었던 유품이었다.

 

"이 칩 속에…… 우리 아빠가 목숨을 걸고 추적했던 넥스트 큐브의 진짜 핵심 구조가 들어 있어요."

 

채린의 목소리가 억눌린 슬픔으로 가늘게 파르르 떨렸다.

 

소녀는 창백한 입술을 잘근 깨물며 아크릴 케이스를 어루만졌다.

 

"아빠는 생전에 제게 늘 말씀하셨어요. 강정호 박사님이 처음 설계했던 알고리즘이 인간의 결핍과 비극을 사전에 예방하려던 '치유의 백신'이었다면, 태성의 그림자 속에 똬리를 튼 넥스트 큐브는 그 백신을 악랄하게 왜곡해서 인간의 모든 선택을 틀에 가두고 쥐어짜는 '지배의 독약'으로 변질시켰다고요. 그리고 그 거대한 괴물은 심장 하나가 멎는다고 해서 결코 멈추지 않는 다두형 히드라 같다고 하셨어요."

 

서연이 숨을 죽인 채 정전기 방지 장갑을 끼고 얇은 핀셋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케이스에서 꺼낸 마이크로 칩을 외부 인터넷망과 물리적으로 완벽히 격리된 군용 등급 오프라인 분석 리더기에 정밀하게 결착했다.

 

치직거리는 미세한 전자음과 함께 노트북 모니터 중앙에 짙은 녹색 명령 프롬프트 창이 떠올랐고, 해독할 수 없는 수만 줄의 암호화된 기계어와 16진수 바이트 코드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보안이 극도로 삼엄해요. 128비트 다중 양자 암호화 레이어가 겹겹이 씌워져 있어요. 보통 방식으로는 디컴파일조차 불가능한 수준인데…… 이상하네요."

 

서연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기계식 키보드 위를 쉴 새 없이 두드리며 경쾌한 타건음을 뿜어냈다.

 

"이 해시 키 구조, 15년 전 아버님 연구팀의 원천 소스코드 보안 프로토콜과 뿌리가 완전히 같아요. 아버님 연구실의 고유 마스터 키 알고리즘을 역으로 대입하면 우회 경로가 열릴 것 같아요."

 

서연의 동공 위로 녹색의 코드 스트림이 잔상을 그리며 맹렬하게 깜빡였다.

 

우진은 주먹을 꽉 쥔 채 모니터 화면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비록 뇌 신경계의 과열을 막기 위해 '도형 투시'의 인지 심도를 1단계 기본 상태로 억제해 두고 있었지만, 화면 중앙에 불쑥 솟아오른 'NEXT CUBE : Phase-4 Social Allocation System'이라는 극비 디렉터리 폴더 명칭을 마주하는 순간, 오른쪽 관자놀이의 흉터 부위가 감전된 듯 찌릿하게 요동쳤다.

 

"풀렸어요! 방화벽 우회 성공했어요!"

 

서연이 거칠게 엔터 키를 내리누르자,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던 난수표들이 일제히 정렬되며 방대한 트리 구조의 내부 기밀 문서들이 줄지어 열렸다.

 

그곳에 기록된 데이터들은 일개 사기업의 내부 전산 자료 따위가 결코 아니었다.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 전역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수많은 대형 참사, 지방 저축은행의 연쇄 파산, 촉망받던 벤처 창업가들의 기이한 동반 자살, 그리고 정재계 거물들의 갑작스러운 몰락과 실각 일정이 분초 단위로 빼곡하게 사전 기획되어 적혀 있는 끔찍한 '인과율 집행 타임테이블'이었다.

 

3. 조작된 비극의 계보

 

"세상에…… 맙소사. 이게 대체 다 뭐죠?"

 

서연이 바짝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마우스 휠을 아래로 스크롤했다.

 

그녀가 방송사와 신문사 사회부 기자로 현장을 누비며 피눈물을 흘리는 유족들을 취재하고 고발 기사를 썼던 참혹한 사건들이, 차가운 엑셀 스프레드시트의 행과 열처럼 고스란히 화면에 박혀 있었다.

 

3년 전 수만 명의 서민들을 피눈물 흘리게 만들었던 지방 저축은행 연쇄 부도 사건.

 

2년 전 유망한 청년 창업가 4명이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앉아 일제히 한강 다리 밑으로 몸을 던졌던 암호화폐 폭락 사기극.

 

그리고 작년 가을, 강남 도심 한복판 복합 쇼핑몰 신축 공사 현장을 덮쳐 수십 명의 사상자를 냈던 대형 지반 침하 싱크홀 참사까지.

 

그 끔찍한 인명 피해의 목록 옆에는 기계적으로 계산된 '집행 코드', '희생 노드 수(Loss Node)', '엔트로피 상쇄량(Entropy Balance Value)'이라는 소름 끼치는 식별 기호와 소수점 수치가 정밀하게 매겨져 있었다.

 

"우발적으로 터져 나온 천재지변이나 단순한 사회적 사고가 아니었던 겁니다."

 

우진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내려앉았다.

 

그는 이를 악물며 모니터 화면의 그래프를 응시했다.

 

"시스템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질서와 항상성을 유지한다는 명목 아래, 무고한 누군가에게 강제로 파멸의 세모(△)를 배당해 온 겁니다. 누군가가 부당한 특권을 누리며 성공의 궤도를 달리면, 그 이면에는 반드시 통제 불가능한 잉여 엔트로피의 찌꺼기가 쌓이기 마련이니까요. 시스템은 그 찌꺼기를 정화하기 위해 가장 힘없고 저항할 수 없는 자들을 골라 사전에 희생양으로 분쇄해 버린 겁니다."

 

서연이 캐비닛에서 낡은 취재 수첩을 꺼내 화면에 뜬 타임스탬프와 사건 일지를 대조하기 시작했다.

 

메모장을 넘기는 그녀의 손가락이 하얗게 질려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우진 씨 분석이 소름 끼치도록 정확해요. 여기 좀 보세요. 저축은행 연쇄 파산 사건 당시, 은행 문 앞에 예금주들이 길게 줄을 서서 뱅크런 사태가 본격화된 시점보다 무려 4시간 18분 전에 이미 금융감독원 내부 인트라넷에 '부실 금융기관 긴급 영업정지 고시' 데이터 패킷이 예약 전송되어 있었어요. 어디 그뿐인 줄 알아요? 복합 쇼핑몰 붕괴 참사 때도 현장 인부들이 119 종합상황실로 비명을 지르며 첫 신고를 접수하기 12분 전에, 태성C&I가 관할하던 인근 기지국 통신망에서 원인 불명의 '데이터 트래픽 강제 셧다운'이 발생했어요. 인부들이 밖으로 구조 전화를 걸지 못하도록, 탈출 통로가 무너지기 직전까지 통신을 완전히 먹통으로 만들어 버린 거라고요!"

 

언론을 통해 세상에 중계되었던 수많은 비극은, 넥스트 큐브라는 거대한 연출가가 철저하게 계산된 각본에 따라 무대 위에 올린 잔혹극의 마지막 장면에 불과했다.

 

모든 슬픔과 죽음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의해 밀리초 단위로 사전에 기안되고 인가되었으며, 시스템의 손발 역할을 하던 사내 암약 세력들과 집행관 조직인 '큐브 네트웍스'가 그 잔인한 각본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현장에서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채린이 작고 가녀린 주먹을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꽉 쥐며 모니터 한구석을 떨리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리 아빠도…… 이 끔찍한 표 속에 갇혀 있었어요. 아빠 이름이 여기에 있어요……."

 

채린의 시선이 멎은 화면 귀퉁이에는 서슬 퍼런 붉은색 글씨가 박혀 있었다.

 

'2016-04-12 23:41 / Node-R-09 (윤상현 수석연구원) / 집행 완료: 심야 국도 화물차 추돌 및 브레이크 유압 고장 위장 / 사유: 오메가 코드 및 백업 아키텍처 외부 유출 위험.'

 

소녀의 커다란 눈망울에 투명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지만, 채린은 입술 안쪽 살을 피가 배어 나오도록 깨물며 끝내 오열을 삼켜냈다.

 

"경찰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전부 졸음운전과 정비 불량으로 인한 단순 교통사고라고 발표했었어요. 아빠 차의 브레이크 파이프가 낡아서 오일이 샜다고…… 전부 거짓말이었어. 저 괴물들이 아빠의 차를, 아빠의 삶을 통째로 조작해서 지워버린 거였어!"

 

우진은 말없이 채린의 떨리는 좁은 어깨 위에 묵직한 손을 얹었다.

 

그의 시야에 채린의 머리 위에서 은은하게 떠오르는 순백의 은빛 동그라미(○)가 포착되었다.

 

소녀가 느끼는 깊은 분노와 슬픔에 호응하듯, 은빛 원환은 부드럽고 따스한 척력의 파동을 방사하며 지하 보일러실의 차갑고 음습한 공기를 조용히 밀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시스템이 규정해 놓은 닫힌 사각의 감옥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 이 세상에 몇 남지 않은 순수한 자유의지의 원형이었다.

 

4. 알고리즘의 덫, 미러 큐브

 

서연이 심호흡을 하며 마우스 커서를 움직여 칩 내부에 저장된 압축 실행 파일 하나를 조심스럽게 더블클릭했다.

 

모니터에 선명한 푸른색 정육면체 심볼이 떠오르며, 세련된 디자인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기술 분석 기획서가 화면 가득 로딩되었다.

 

'프로젝트 명칭: 미러 큐브(Mirror Cube) - 대국민 라이프 스타일 최적화 AI 통합 플랫폼.'

 

"미러 큐브……?"

 

우진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그 이름은 결코 낯선 단어가 아니었다.

 

매일 아침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 2호선 안에서, 신호 대기 중인 버스 정류장과 카페에서 수많은 2030 세대 청년들과 직장인들이 홀린 듯 들여다보던 바로 그 국민 애플리케이션이었다.

 

개인의 소비 성향, 카드 결제 내역, 수면 주기, 심박수, 심지어 출퇴근 최단 동선과 직장 내 대인관계 스트레스 수치까지 정밀하게 분석하여, 매일 아침 '오늘의 최적 행동 지침'과 맞춤형 금융 상품, 그리고 이직 및 취업 정보를 추천해 주는 초개인화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

 

'당신의 삶을 가장 완벽한 궤도로 이끌어 드립니다'라는 매혹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출시 반년 만에 다운로드 수 500만을 돌파하며 대한민국의 일상을 장악한 괴물 플랫폼이었다.

 

"이 친숙한 라이프스타일 앱이 왜 넥스트 큐브의 극비 코어 서버 파일에 들어 있는 거죠?"

 

서연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소스코드를 디컴파일러 툴로 분해했다.

 

모니터 위로 수천 줄의 알고리즘 수식과 이벤트 핸들러 코드가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 알고리즘의 가장 밑바닥에 숨겨진 은밀한 조건문(Conditional Statement)들을 확인한 순간, 우진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것은 어린 시절 아버지 강정호의 서재에서 보았던, 친필 연구 노트 47페이지에 붉은 잉크로 적혀 있던 '신경망 궤도 동기화 수식'의 변형 공식이었다.

 

"이건 단순한 편의성 앱이 아닙니다. 아주 교묘하고 악랄한 덫이에요."

 

우진이 모니터 화면의 특정 코드 블록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짓씹듯 말했다.

 

"과거 네모 프로젝트 연구소에서 나 같은 피실험체 아이들의 뇌간에 물리적으로 칩을 심으려 했던 방식은 너무나 막대한 비용이 들었고, 치명적인 신체적 거부반응과 이탈자(K-07)를 양산하는 한계를 노출했습니다. 15년 전 화재로 연구소가 파괴되자 놈들은 방식을 완전히 바꾼 겁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원격으로 사람들을 통제했다는 뜻인가요?"

 

서연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굳이 인간의 두개골을 열고 뇌에 칼을 댈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현대인들이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단 한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 고해상도 액정을 통해, 시신경과 뇌파를 시스템의 메인 프레임에 실시간으로 동기화시킨 겁니다. 미러 큐브가 추천해 주는 '가장 합리적인 출근길', '가장 효율적인 점심 메뉴', '가장 안전한 적금 상품'을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따르는 순간,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방황할 권리를 반납한 채 시스템이 짜놓은 거대한 사각형(□) 궤도 안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노예가 되어버린 겁니다."

 

서연이 사색이 된 얼굴로 언론사 사내 기밀 빅데이터망에 서둘러 원격 접속했다.

 

그녀는 최근 1년간 미러 큐브 앱을 일상적으로 활성화해 온 대규모 표본 집단의 금융 거래 내역, 병원 진료 기록, 신용 데이터베이스를 추출해 칩의 알고리즘과 다각도로 교차 분석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화면에 기괴하고 끔찍한 통계 곡선이 그려졌다.

 

미러 큐브를 스마트폰에 설치하고 '알고리즘 추천 순응도'가 90%를 초과한 활성 이용자 12만 명의 궤적 데이터였다.

 

앱을 처음 설치하고 따른 3개월 동안, 그들의 삶은 겉보기에 완벽할 정도로 안정되고 눈부셔 보였다.

 

불필요한 지출이 통제되어 신용등급이 수직으로 상승했고, 출퇴근 시간 낭비가 줄어들어 직장에서의 고과 평가도 상위권에 랭크되었으며, 오차 없는 시간표대로 기계처럼 반듯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순응도가 극에 달해 95%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도저히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기괴한 궤도 변색 현상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우진이 그동안 매일 밤 도형 관찰 일지를 작성하며 수첩에 기록해 두었던 비극의 규칙들과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히 일치했다.

 

알고리즘에 자신의 모든 판단을 온전히 의탁한 지 6개월이 지난 이용자 중 무려 14.8%가, 아무런 정신과적 전조 증상도 없이 갑작스러운 급성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으며 납득하기 힘든 초고위험 파생상품에 전 재산을 쏟아붓거나 악성 불법 사채에 손을 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의 삶의 궤적이, 지극히 평범하고 안정적이던 일상의 '백색 네모(□)'에서 외부의 악의적인 조작과 외압을 상징하는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썩어 문드러지듯 오염되어 가는 적나라한 지옥의 궤적이었다.

 

5. 검은 세모의 대량 살포

 

"우진 씨, 이것 좀 잠깐 보세요! 상태 코드가 이상해요!"

 

서연이 비명을 삼키듯 낮게 탄식하며 모니터 화면의 특정 사용자 클러스터 목록을 마우스로 다급하게 확대했다.

 

화면에 나열된 수백 명의 익명화된 이용자 식별 번호(User ID) 바로 옆에, 넥스트 큐브의 메인 알고리즘이 내부적으로 강제 부여한 붉은색 상태 코드가 불길하게 점멸하고 있었다.

 

'System Status : Black Triangle Target (검은 세모 대상자 지정 완료).'

 

그 끔찍한 파멸의 낙인이 찍힌 대상자들은 놀랍게도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완벽하게 동일한 특정 그룹에 속해 있었다.

 

바로 오늘 오전 9시, 서울 테헤란로 한복판에 우뚝 솟은 태성그룹 본사 사옥 18층 면접실과 대기실에서 진행될 예정인 '2026 하반기 태성그룹 대졸 신입사원 공개채용' 최종 면접 대상 청년들이었다.

 

"태성그룹 공채 최종 면접자들이라고요……?"

 

우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채린의 부친이 목숨 걸고 지켜낸 마이크로 칩의 로드맵과 서연의 언론사 데이터베이스가 거대한 퍼즐 조각처럼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모니터에는 오늘 오전 면접장에 상기된 얼굴로 들어설 300명의 청년 중, 유독 특정 80명의 프로필 사진과 인적 사항 둘레에 피처럼 붉은 테두리가 쳐진 채 완전히 격리되어 있었다.

 

그 80명 전원은 지난 3개월 동안 미러 큐브가 제공하는 유료 '태성그룹 합격 보장 면접 종합 솔루션'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실하게 결제하며 구독해 온 청년들이었다.

 

앱이 지시하는 1분 자기소개 모범 답안을 달달 외우고, 앱이 권장하는 감청색 정장과 구두를 갖춰 입었으며, 앱이 지정해 준 지하철 호선과 칸을 이용해 매일 새벽 도서관으로 향했던 지극히 평범하고 성실한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믿고 따랐던 시스템이 그들을 위해 준비해 둔 최종 결말은 영광스러운 합격 통지서가 아니었다.

 

'할당 번호 : Class-D 희생 노드 (Sacrificial Node).'

 

'집행 명령 : 전원 최종 불합격 처리 및 사회적 궤도 강제 하향.'

 

'사유 : 태성C&I 동아시아 차세대 스마트 물류망 독점 인허가 및 주가 부양에 수반되는 잉여 엔트로피 상쇄용 파멸 에너지 확보.'

 

"미쳤어…… 이건 정말 인간이 할 짓이 아니야!"

 

서연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경악을 참지 못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눈가에 고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청년들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래요? 그저 남들처럼 취업해서 밥벌이하고 싶어서, 학자금 대출 갚고 부모님 호강시켜 드리고 싶어서 앱이 시키는 대로 밤잠 안 자고 코피 흘려가며 면접을 준비했을 뿐인데…… 시스템이 애초부터 이 가엾은 아이들을 제물로 쓰려고 불합격자로 낙인찍어 둔 거였다고요?"

 

우진은 턱관절이 부서져라 이를 악물었다.

 

귓속에서 이명이 울리며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지난날 도시의 뒷골목과 지하철역에서 마주쳤던 무수한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엄마의 손을 놓치고 차디찬 지하철 선로로 뛰어내릴 뻔했던 어린아이 민우.

 

자신이 궤도를 비틀어 살려낸 대가로 튕겨 나간 잔여 인과율 때문에 아버지가 타워크레인에 깔려 으스러지는 것을 보며 절규하던 스물네 살 청년 민수.

 

그리고 큐브 네트웍스가 설계한 불공정 가맹 계약의 덫에 걸려 피를 토하고 뇌출혈로 쓰러졌던 편의점 점주 김 씨 아저씨까지.

 

그 잔혹한 비극들은 결코 우연히 일어난 불운이나 개인의 부주의 탓이 아니었다.

 

넥스트 큐브라는 거대한 탐욕의 포식자가 자신들의 기득권과 도시의 왜곡된 질서를 유지한다는 미명 아래, 아무런 힘도 없는 소시민들의 머리 위에 강제로 칠흑 같은 검은 세모(△)를 꽂아 넣으며 인위적으로 양산해 낸 생지옥이었던 것이다.

 

"저들은 오늘 면접장에서 이 청년들의 영혼을 철저하게 짓밟아 파괴할 겁니다."

 

우진의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가 지하 보일러실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단순히 취업 문턱에서 떨어뜨리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가장 간절하고 절박한 청춘의 정점에서 사회적 파멸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어, 그들의 가슴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깊은 절망과 자멸의 에너지를 도시의 사각 격자망을 유지하는 대체 연료로 흡수하려는 겁니다."

 

채린이 모니터 화면 하단에서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네트워크 통신 로그를 가리켰다.

 

"우진 아저씨, 이것 좀 보세요. 백업 서버의 고유 IP 주소가 활성화됐어요! 역삼역 메인 코어가 폭발하자마자, 이 80명의 공채 궤도 조작 데이터 패킷이 테헤란로 태성C&I 사옥 최상층인 33층 메인 서버실로 우회 전송되었어요. 여기 타이머가 돌고 있어요. 오늘 아침 8시 30분 정각, 18층 면접실 면접관들이 쥐고 있을 전용 태블릿 PC로 최종 탈락 조작 데이터가 일괄 동기화될 예정이에요."

 

6. 태성(泰成)을 향한 선전포고

 

지하 벽면에 걸린 낡은 괘종시계의 바늘은 이미 새벽 4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공채 면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4시간 남짓.

 

서연이 결연한 눈빛으로 눈물을 훔치며 우진을 똑바로 응시했다.

 

"어떻게 할 건가요, 우진 씨? 이 내부 문건과 조작 타임테이블을 지금 당장 지상파 방송국과 통신사 동기들에게 긴급 타전해서 사상 초유의 특종으로 터뜨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언론에 나간다 한들, 저들은 또다시 대형 로펌을 동원하고 실무자 몇 명을 꼬리 자르기 식으로 구속시키며 궤도 조작을 다른 방식으로 덮어쓸 게 뻔해요."

 

"언론 폭로만으로는 이 괴물의 숨통을 끊을 수 없습니다."

 

우진이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깊은 눈동자 속에서 푸른빛의 궤적선들이 기하학적인 나선을 그리며 강렬하게 소용돌이쳤다.

 

지하 7층의 화염 속에서 각성했던 '변화 감지(Change Perception)'의 초감각 잔향이 척추를 타고 뇌간으로 전율하듯 뻗어 올라갔다.

 

"현장에 내가 직접 들어가서 깨부숴야 합니다. 놈들이 힘없는 청년들의 머리 위에 씌워둔 그 저주스러운 검은 세모의 꼭두각시 줄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 모조리 끊어낼 겁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절대로 불가능해요! 태성C&I 사옥은 지금 역삼역 폭발 여파로 사설 경비 인력과 집행관들이 2중, 3중으로 쫙 깔려 비상 경계 태세일 텐데요?"

 

서연이 다급하게 우진의 팔을 붙잡으며 만류하려 했다.

 

그때, 곁에 서 있던 채린이 자신의 백팩 지퍼를 열고 손바닥만 한 원통형 은색 금속 캔 두 개를 탁자 위에 결연하게 내려놓았다.

 

역삼역 지하에서 집행관들의 동기화 센서와 격자 추적망을 일순간에 마비시켰던 바로 그 '그리드 교란 연막(Grid Disruptor)'이었다.

 

"내가 아저씨를 도울게요."

 

채린의 앳된 얼굴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단단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은빛 동그라미(○) 파동은 저들이 쳐놓은 사각 격자망을 밀어내는 척력을 가지고 있어요. 내가 사옥 1층 로비와 지하 주차장 진입로 쪽에서 교란탄을 터뜨리고 동그라미 파동을 최대로 방사해서 시스템 센서의 거대한 사각지대를 만들어 낼게요. 그러면 아저씨가 면접 구역이 있는 18층까지 은밀하게 침투할 수 있는 15분의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예요."

 

서연 역시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가방에서 태블릿과 함께 위조된 사원증 케이스를 챙겼다.

 

"좋아요. 난 예전에 파견 취재 때 받아두었던 태성그룹 본사 홍보실 정식 출입 기자 명패를 위조해서 지상 1층 미디어 브리핑룸으로 들어갈게요. 우진 씨가 18층 면접장 내부로 진입해서 면접관들의 태블릿 동기화 코드를 물리적으로 끊어내는 바로 그 순간, 내가 이 조작 로드맵의 원본 데이터를 태성그룹 전 사내 인트라넷망과 기자실 메인 전광판 스크린으로 동시에 강제 송출하겠어요. 아무리 언론을 통제하려 해도, 수백 명의 기자들 눈앞에서 생방송으로 터져 나오는 데이터까지 막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세 사람의 시선이 차가운 지하 보일러실 공중에서 하나로 뜨겁게 맞물렸다.

 

그것은 시스템의 거대하고 절대적인 통제력 앞에 내던져진 세 개의 이레귤러(Irregular)가 마침내 목숨을 걸고 체결한 첫 번째 저항의 연대였다.

 

우진은 벽면에 비스듬히 걸린 녹슨 거울을 바라보았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정수리 위에는 여전히 그 어떤 도형도, 그 어떤 굴레도 씌워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 깊은 곳, 신경망 전역에 각인된 '방화벽 백신 코어'가 세차게 박동하며 온몸의 피를 뜨겁게 덥히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을 불합리한 시스템의 희생양으로 남겨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사각의 감옥에서 해방할 유일한 마스터키로 남겨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열쇠는 지금, 거대한 괴물의 심장을 정면으로 겨누며 회전할 준비를 마쳤다.

 

"출발하죠. 날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우진이 레인코트의 단추를 단단히 여미며 나직하지만 서릿발처럼 단호하게 읊조렸다.

 

지하 보일러실의 무거운 철문이 다시금 삐걱거리며 열리고, 세 사람은 푸르스름한 새벽 여명이 차갑게 번져오는 테헤란로의 짙은 안개 속을 향해 거침없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