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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네모 세모 동그라미로 간다 · 제 115화

첫 주문 제작

📅 2026-10-02 18:10•✍️ 만우자•👁️ 0•

1. 톱밥과 커피 향

 

상도동 147번지의 아침은 언제나 맑고 차진 톱밥 내음으로 열렸다.

 

골목 안쪽으로 비스듬히 스며든 초여름의 볕이 낡은 목공 작업실의 마당을 따스하게 비추고 있었다.

 

어제저녁 한강 변에서 한서연과 나누었던 체온이 여전히 손끝에 남아 있는 듯했다.

 

기계적인 알고리즘도, 초 단위로 사람의 숨통을 죄어오던 푸른 격자망도 영영 사라진 세상이었다.

 

강우진(姜宇鎭)은 푸른 작업용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고 작업대 앞에 섰다.

 

작업대 위에는 제천의 부모님 댁에서 가져온 낡은 흑연 연필과 황동 버니어캘리퍼스가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아침 일찍 들른 모퉁이 서재의 북카페 사장이 건네주고 간 따뜻한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이 놓여 은은한 김을 피워 올렸다.

 

"강 목수, 오늘은 얼굴이 아주 훤칠하네?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봐?"

 

담장 너머로 고개를 삐죽 내민 복덕방 할머니가 빗자루를 든 채 벙긋 웃었다.

 

우진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허리를 숙였다.

 

"그냥 잠을 깊이 잤습니다, 할머니."

 

"거짓말하네. 어제 한 기자가 눈이 벌게져서 가더니, 밤늦게 돌아올 때는 둘이 아주 딱 붙어서 내려오더구먼. 젊은 처자가 고생 끝에 좋은 짝 만났지 뭐람. 아무튼 오늘 골목에 낯선 양복쟁이 하나가 두리번거리며 올라오던데, 손님 아니야?"

 

할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작업실의 삐걱거리는 나무 대문 앞턱에서 조심스러운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계십니까? 여기가 강우진 목수님의 공방이 맞습니까?"

 

우진은 들고 있던 사포를 내려놓고 대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짙은 회색 리넨 정장에 갈색 가죽 서류가방을 든 50대 초반의 사내가 안경을 고쳐 쓰며 서 있었다.

 

정갈하게 빗어 넘긴 희끗희끗한 머리칼과 지적인 눈매 사이로 묻어나는 조용한 피로감.

 

하지만 그 눈동자 깊은 곳에는 활자를 평생 만져온 사람 특유의 예리한 통찰력이 깃들어 있었다.

 

우진은 단박에 그가 누구인지 직감했다.

 

어제 노을빛 한강 산책로에서 서연이 깍지를 끼며 말해주었던 그 손님이었다.

 

2. 찾아온 손님

 

"맞습니다. 제가 강우진입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우진이 앞치마의 먼지를 가볍게 털어내며 마당 안뜰로 길을 열었다.

 

사내는 마당 한편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벼락 맞은 백 년 참나무 거목을 보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거목의 옆구리에 깊게 팬 검은 흉터와, 그 주변을 감싸며 바위처럼 단단하게 솟아오른 수십 개의 옹이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유난히 깊어졌다.

 

"과연…… 한 기자가 입이 닳도록 이야기할 만하군요. 상처를 억지로 깎아내지 않고 품어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겠습니다."

 

사내가 돌아서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도서출판 '지평'의 대표이자 한서연 기자의 단행본을 책임지고 있는 편집장 이현석(李炫碩)이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편집장님. 서연 씨에게서 개정판 교정본이 무사히 넘어갔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우진은 그를 작업실 안채에 딸린 소박한 다다미 응접실로 안내했다.

 

방 안에는 규격 미달로 공모전에서 1차 탈락했던 그 호두나무 비대칭 다이닝 테이블이 묵직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현석 편집장은 다다미방에 들어서자마자 의자에 앉지도 않고, 홀린 듯 호두나무 테이블의 모서리로 다가갔다.

 

그는 손가락을 뻗어 천연 수지로 메워진 상판 중앙의 깊은 옹이와, 자를 대지 않고 나무의 자생적 곡선을 따라 흘러내린 측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스쳐 지나가는 손끝 아래로 단단한 나이테의 결이 살아 숨 쉬듯 전해졌다.

 

"이거군요."

 

편집장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한 기자가 가져온 원고 에필로그에 적혀 있던 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합격품'이라는 게 바로 이 탁자였군요."

 

"부끄럽습니다. 대량 생산 규격에도 맞지 않고, 기계가 가공하기에는 너무 거칠어서 떨어진 물건입니다."

 

우진이 찻잔에 따뜻한 둥굴레차를 따라 건네며 겸손하게 답했다.

 

하지만 이현석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규격에 맞지 않는다는 건, 기계가 게으르다는 뜻이지 이 나무가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지요. 우진 씨, 실은 제가 오늘 이곳을 찾아온 건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 아닙니다.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공간에 놓을 물건을 부탁하고 싶어서입니다."

 

3. 반듯한 사각형의 피로

 

이현석은 품 안에서 낡은 가죽 만년필과 두툼한 메모장을 꺼내 호두나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머금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 속에는 지난 세월 동안 그가 짊어져 왔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저는 삼십 년 동안 책을 만들어 온 사람입니다. 원고지 칸을 맞추고, 활자의 자간과 행간을 밀리미터 단위로 교정하고, 책 표지의 사각 모서리가 단 일 도라도 어긋나면 전량 파기하던 삶을 살았지요. 세상이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사각형 감옥에 갇혀 있을 때도, 저는 그것이 교양이고 질서이며 완벽함인 줄 알았습니다."

 

편집장의 안경 너머 눈동자에 씁쓸한 회한이 번졌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스마트폰 앱이 지정해 준 최적의 동선으로 출근하고, 점심에는 칼로리와 영양소가 완벽히 계산된 규격 도시락을 먹고, 퇴근길에는 베스트셀러 순위 알고리즘이 점지해 준 기획안을 결재했습니다. 제 삶의 모든 모서리는 날카로운 90도 직각이었고, 어떤 빈틈도 오차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우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것은 과거 넥스트 큐브의 오르비스가 전 국민에게 강요했던 '검은 네모(■)'의 숨 막히는 궤적과 정확히 일치했다.

 

사람들은 그 정돈된 사각형이 안전하다고 믿었지만, 실상은 영혼의 숨구멍을 틀어막는 관짝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 바벨탑이 무너졌습니다. 머리 위를 짓누르던 보이지 않는 선들이 사라지고, 한 기자가 피를 토하듯 써 내려간 《선택할 권리》 원고 뭉치가 제 책상 위에 쿵 하고 떨어졌을 때…… 저는 난생처음으로 숨을 들이쉬었습니다. 그제야 제 집 거실을 둘러보았지요. 벽도 네모, 소파도 네모, 거실 한가운데 놓인 대기업 브랜드의 하이그로시 대리석 식탁도 번쩍거리는 완벽한 직사각형이었습니다. 그 차갑고 번들거리는 사각형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구역질이 나더군요. 숨이 턱 끝까지 막혀 와서 도저히 그 식탁 앞에 앉아 책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현석은 주먹을 살며시 쥐었다 폈다.

 

"그 하이그로시 테이블을 어제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내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제 서재 겸 거실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내 남은 생을 함께할 테이블은, 제발 자를 대고 그은 선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요. 나무가 살아온 백 년의 바람과 비, 뒤틀림과 갈라짐이 그대로 남아 있는…… 온전한 생명의 덩어리를 들이고 싶었습니다."

 

4. 세상에 단 하나뿐인 테이블

 

우진은 편집장의 진심 어린 눈빛에서 깊은 공명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가구 주문이 아니었다.

 

시스템의 사각 틀에 영혼을 갉아먹혔던 한 인간이, 자신의 삶에 진정한 자유와 불완전한 온기를 되찾아주기 위해 건네는 절박한 구원의 요청이었다.

 

"원하시는 구체적인 형태나 크기가 있으십니까?"

 

우진이 묻자, 이현석은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걸 제가 정하면 또다시 사각형을 그리는 꼴이 되지 않겠습니까? 길이는 대략 성인 대여섯 명이 둘러앉아 책을 펴놓고 토론할 수 있는 2미터 안팎이면 족합니다. 하지만 폭은 어디는 넓고 어디는 좁아도 상관없습니다. 직선일 필요도, 수평이 기계처럼 완벽할 필요도 없습니다. 옹이가 튀어나와 찻잔이 기우뚱거려도 좋고, 나무가 자라다 번개를 맞았든 가뭄에 갈라졌든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으면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표준 규격서에도 등록되지 않은, 오직 이 나무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형태를 원합니다."

 

우진의 가슴속에서 잔잔한 고동이 울렸다.

 

과거 태성C&I 기획2팀의 좁은 파티션 책상에서 엑셀 칸을 채우던 시절, 그에게 요구되었던 것은 오직 오차 없는 표준화였다.

 

숫자가 어긋나면 파멸이었고, 규격을 벗어나면 낙오였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손님은 '불완전하기에 완벽한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마당에 모셔둔 나무들 중에서, 편집장님의 거실에 가장 어울릴 만한 녀석을 함께 골라보시겠습니까?"

 

"아, 마당에 다른 목재들도 있습니까?"

 

"네. 테헤란로 공원에 들어갈 참나무 외에도, 강원도 홍천의 오래된 숲길 정비 구역에서 베어진 느티나무 한 그루를 구해둔 것이 있습니다. 수령은 팔십 년 남짓 되었는데, 큰 바위를 피해 뿌리를 내리느라 밑동이 기괴할 정도로 심하게 뒤틀려 목재소에서는 쓸모가 없다고 버려두었던 녀석입니다."

 

우진의 안내를 받아 이현석은 마당 구석의 비가림막 차양 아래로 걸어갔다.

 

우진이 두터운 방수포를 걷어내자, 짙은 붉은빛과 황갈색이 오묘하게 뒤섞인 거대한 느티나무 판재 두 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께가 무려 80밀리미터에 달하는 통원목 슬랩(Slab)이었다.

 

나무의 가장자리는 파도처럼 구불구불한 천연 곡선(Live Edge)을 그대로 품고 있었고, 가운데 부분은 오랜 가뭄을 견디며 스스로 터뜨린 세로 균열이 선명하게 갈라져 있었다.

 

그러나 갈라진 틈 사이를 들여다보면, 나무 스스로 상처를 아물게 하려고 뿜어낸 진액이 굳어 호박 보석처럼 투명하고 짙은 결정으로 엉겨 붙어 있었다.

 

편집장의 숨이 멎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거친 껍질이 남아 있는 느티나무의 변재(Edge) 부분을 어루만졌다.

 

"이겁니다…… 바로 이 녀석입니다. 바위를 피하느라 굽어지고, 가뭄을 견디느라 제 살을 찢어내며 버틴 이 굴곡…… 이게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아닙니까?"

 

편집장의 목소리가 감격으로 가늘게 떨렸다.

 

"강 목수님, 이 갈라진 틈을 대패로 깎아 평평하게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갈라진 채로, 그 틈새를 나비 모양의 나무 조각(Butterfly Joint)으로 단단히 붙잡아 주기만 하십시오. 상처가 벌어지지 않게 손을 잡아주는 것, 제가 원하는 건 딱 그 정도의 손길입니다."

 

5. 첫 도면을 그리다

 

계약은 그 자리에서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계약서라는 거창한 서류 대신, 편집장의 낡은 메모장 한 장을 뜯어내어 계약 내용과 착수금을 적었다.

 

"완성되는 날은 언제라도 좋습니다. 한 달이 걸리든 반년이 걸리든, 나무와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보내주십시오."

 

이현석 편집장은 우진의 거친 손을 굳게 쥐고 흔든 뒤,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상도동 골목길을 내려갔다.

 

홀로 남은 마당.

 

초여름의 바람이 느티나무 판재 위로 사르르 스쳐 지나갔다.

 

우진은 다다미방으로 들어와 백지 한 장을 펼쳤다.

 

과거 그를 옥죄던 공포의 기하학체들이 지워진 순백의 켄트지.

 

그는 4B 연필을 쥐었다.

 

예전 같았으면 각도기와 삼각자를 꺼내 들고 가로, 세로, 높이의 오차를 밀리미터 단위로 재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진의 손에는 아무런 자도 들려 있지 않았다.

 

그는 마당에 누워 있는 느티나무의 굽이치는 능선을 눈으로 덧그리며, 연필을 쥔 손에 자연스럽게 힘을 풀었다.

 

사각, 사각.

 

연필심이 종이를 부드럽게 스치는 소리가 고요한 작업실에 퍼져나갔다.

 

종이 위에 그어지는 선은 반듯한 직선이 아니었다.

 

바위를 휘감아 돌던 뿌리의 꿈틀거림처럼 능선이 솟아올랐고, 바람의 흔들림처럼 가장자리가 부드러운 물결을 이루었다.

 

가운데 길게 갈라진 틈새 위로는 상처를 서로 끌어안아 지탱해 주는 두 개의 단단한 참나무 나비장(Chabi/Butterfly Key)을 그려 넣었다.

 

'규격 미달.'

 

공모전 심사위원들이 빨간 줄을 그었던 그 단어가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우진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띄웠다.

 

세상이 규격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다루기 힘든 자연과 인간을 손쉽게 통제하기 위해 만든 편리한 잣대일 뿐이었다.

 

그 잣대를 부수어버리는 순간, 세상의 모든 나무와 모든 인간은 저마다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예술품이 된다.

 

첫 정식 주문.

 

상도동 목공소의 간판도 달지 않은 허름한 작업실에서, 마침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비정형 식탁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6. 나비장의 결속

 

정오가 지나자 햇볕이 한층 쨍쨍해졌다.

 

우진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느티나무 상판을 마당 중앙의 튼튼한 목공 말(Sawhorse) 위로 들어 올렸다.

 

성인 남성 둘이 들어야 할 만큼 묵직한 무게였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안착시켰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가볍게 피어올랐다.

 

첫 공정은 가장 거칠고 메마른 겉껍질을 벗겨내는 작업이었다.

 

우진은 양손으로 잡는 곡면 당김칼(Drawknife)을 쥐었다.

 

칼날을 나무의 표면에 비스듬히 얹고 몸 쪽으로 힘껏 당겼다.

 

서걱, 서서걱!

 

묵은 껍질이 벗겨져 나가며 그 아래 숨어 있던 뽀얗고 붉은 속살이 눈부시게 드러났다.

 

나무는 껍질 바로 밑에 자신의 모든 생애를 새겨두고 있었다.

 

어느 해 봄날 가뭄으로 메말랐던 흔적, 여름날 장마로 급격히 살을 찌웠던 흔적이 불규칙한 파동을 그리며 물결쳤다.

 

우진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턱을 타고 뚝뚝 떨어져 느티나무 상판 위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작업실 마당 문이 활짝 열리며 낯익고 경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 목수님! 작업 벌써 시작했어요?"

 

서연이었다.

 

손에는 얼음이 찰랑거리는 콩국수 포장 그릇이 담긴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단발머리를 시원하게 묶어 올린 그녀의 얼굴은 어제 한강에서의 고백 이후 한결 투명하고 편안해져 있었다.

 

"서연 씨, 더운데 어쩐 일입니까? 신문사 데스크에 들어가 봐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우진이 당김칼을 내려놓고 땀을 훔치며 웃었다.

 

"오전에 편집장님 뵙고 들어왔거든요. 상도동 다녀오시더니 얼굴이 완전히 꽃처럼 피어나셨던데요? '한 기자, 내 평생 최고의 사치를 부리고 왔네' 하시면서 어찌나 자랑을 하시던지, 제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죠."

 

서연이 비닐봉지를 툇마루에 내려놓고 총총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한 느티나무 상판을 감탄 어린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와…… 결이 정말 환상적이네요. 이 물결무늬 좀 봐요. 꼭 붉은 노을이 강물에 비친 것 같아요."

 

"느티나무 특유의 용목(Dragon grain) 무늬입니다. 바위틈에서 온몸을 비틀며 자라느라 세포가 압축되어서 이런 보석 같은 무늬가 나오는 거죠."

 

우진이 손바닥으로 다듬어진 면을 쓸어내리자, 서연이 그 옆에 나란히 손을 얹었다.

 

두 사람의 손끝이 나무 위에서 스쳤다.

 

서연이 고개를 들어 우진을 올려다보았다.

 

갈색 눈동자 안에 마당의 푸른 하늘과 우진의 땀에 젖은 얼굴이 온전히 담겼다.

 

"이 갈라진 틈은 어떻게 메울 거예요?"

 

서연이 물었다.

 

우진은 작업대에서 작은 나무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단단한 흑단으로 정교하게 깎아낸 작은 나비 넥타이 모양의 쐐기였다.

 

"메우지 않고, 이 나비장으로 양쪽을 붙잡아 줄 겁니다. 갈라진 틈새를 억지로 붙이려 들면 나무가 다시 터져버려요. 벌어진 거리를 인정하고, 더 이상 멀어지지 않도록 나비 모양의 결속목을 박아 넣는 거죠."

 

서연의 입가에 엷고 따스한 미소가 번졌다.

 

"벌어진 거리를 인정하고, 더 멀어지지 않게 붙잡아준다……. 어제 우진 씨가 한강에서 했던 고백이랑 똑같네요. 서로의 궤도를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고, 나란히 걸어가자던 그 말."

 

우진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무를 깎을 때는 흔들림 없던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

 

서연은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소리 내어 맑게 웃음을 터뜨렸다.

 

"얼른 손 씻고 와요. 콩국수 불기 전에 시원하게 먹고 해요. 오후엔 저도 샌딩 작업 좀 도와줄 테니까요."

 

7. 불완전함의 축복

 

평상 위에 나란히 걸터앉아 시원한 콩국수를 들이켜는 동안, 골목 어귀의 소음들이 정겨운 배경음악처럼 흘러들었다.

 

골목 아래 세탁소에서 스팀다리미가 뿜어내는 푸쉭 소리,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언덕을 오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채소 트럭 아저씨의 메가폰 목소리.

 

그 어떤 인공지능도 예측해 내지 못한, 수천수만 가지 우연이 빚어내는 살아있는 삶의 화음이었다.

 

우진은 국수를 삼키며 자신의 오른쪽 관자놀이를 가만히 매만졌다.

 

4센티미터의 흉터는 이제 아무런 통증도, 푸른빛의 열감도 내뿜지 않았다.

 

한때는 그것이 자신을 괴물로 만든 저주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시스템이 부서지고 세상의 모든 기하학적 도형이 사라진 지금, 그 흉터는 그가 인간으로 살아남았음을 증명하는 가장 단단한 옹이였다.

 

"서연 씨."

 

"네?"

 

서연이 오이를 입에 문 채 고개를 돌렸다.

 

"고맙습니다."

 

"갑자기요? 콩국수 사 와서요?"

 

"아닙니다. 그냥…… 모든 게요. 제가 이 좁은 작업실에서 나무를 만지며 살 수 있게 된 것도, 오늘 편집장님 같은 손님이 찾아와 비정형의 가구를 맡겨준 것도, 전부 서연 씨가 포기하지 않고 진실의 기록을 세상에 내놓아준 덕분입니다."

 

서연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우진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에 부드러운 빛이 어렸다.

 

"저 혼자 한 게 아니잖아요. 우진 씨가 그 차가운 지하 코어로 걸어 들어가지 않았다면, 전 그저 진실을 밝히지 못해 질식해 죽었을 거예요. 그리고요, 우진 씨."

 

서연이 우진의 손등 위에 자신의 부드러운 손을 얹었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서연의 체온은 콩국수의 얼음보다 차갑지 않았고, 햇볕보다 따뜻했다.

 

"편집장님이 이 테이블을 주문한 건, 제 책 때문만이 아니에요. 우진 씨가 만든 가구에는…… 사람이 숨을 쉴 수 있는 틈이 있거든요. 완벽하지 않아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 나도 조금은 서툴러도 괜찮겠구나' 하고 안도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그건 세상 그 어떤 유명한 가구 디자이너도 흉내 낼 수 없는 강우진 목수만의 결이에요."

 

그녀의 진심 어린 찬사가 우진의 가슴 한구석을 뭉클하게 채웠다.

 

과거 'K-07'이라는 차가운 일련번호로 불리며, 시스템의 오류이자 결손 데이터로 폐기 처분될 뻔했던 사내.

 

그 사내가 이제는 타인의 상처를 보듬고 숨구멍을 틔워주는 가구를 만들고 있었다.

 

오후의 작업은 두 사람의 손을 거쳐 순조롭게 이어졌다.

 

서연은 작업용 앞치마를 두르고 사포 블록을 쥐고는, 우진이 끌로 파낸 나비장 홈 주변의 거친 거스러미를 정성껏 문질렀다.

 

우진은 흑단 나비장을 들고 느티나무 상판의 갈라진 틈새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리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숨결이 통할 수 있도록 미세한 틈을 남겨둔 장부 맞춤이었다.

 

탁, 타악.

 

우진의 나무망치가 나비장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내리쳤다.

 

두 번, 세 번.

 

맑고 청명한 타격음이 상도동 하늘 위로 울려 퍼질 때마다, 흑단 나비장은 느티나무의 깊은 상처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며 양쪽의 결을 단단하게 끌어안았다.

 

더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하지만 서로를 억지로 짓누르지도 않도록.

 

그것은 시스템이 강요하던 사각의 족쇄와는 차원이 다른, 인간과 자연이 나누는 자발적이고 아름다운 연대의 매듭이었다.

 

8. 지는 해와 차오르는 내일

 

어느덧 서쪽 하늘이 짙은 주황빛과 다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상도동 147번지 마당 구석구석까지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루 종일 이어진 대패질과 샌딩 작업 끝에, 마침내 느티나무 비정형 테이블의 상판 가공이 1차로 마무리되었다.

 

우진은 천연 오일이 담긴 헝겊을 들고 상판 전체를 부드럽게 닦아내기 시작했다.

 

오일이 닿는 순간, 메말랐던 나뭇결이 기적처럼 되살아났다.

 

황갈색 바탕 위로 붉은 화염처럼 피어오르는 용목 무늬, 거친 자연의 곡선이 살아 숨 쉬는 모서리, 그리고 가운데 갈라진 틈새를 묵직하게 붙잡고 있는 흑단 나비장의 짙은 검은빛.

 

기계로 찍어낸 반듯한 가구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80년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생명만이 뿜어낼 수 있는 장엄한 아우라였다.

 

"정말…… 근사해요."

 

서연이 마당 수돗가에서 손을 씻고 다가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녀의 뺨에는 톱밥 가루가 엷게 묻어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났다.

 

우진은 헝겊을 내려놓고 허리를 폈다.

 

온몸의 근육이 뻐근하게 비명을 질렀지만, 마음만은 호수처럼 맑고 고요했다.

 

"내일부터는 다리발 프레임을 짜야 합니다. 상판이 이토록 자유로운 곡선이니, 다리 역시 반듯한 사각 기둥 대신 비대칭 삼각 지지 구조로 얽어볼 생각입니다."

 

"삼각형이요? 과거의 그 아픈 세모가 아니라요?"

 

서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우진은 소리 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파멸의 세모가 아니라, 지면이 울퉁불퉁해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가장 안정된 세 발 구조로서의 삼각형입니다. 인간의 삶도 그렇지 않습니까. 넘어지고 꺾였던 상처들이 모여 결국 가장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주니까요."

 

서연은 우진의 말에 깊이 공감하듯 그의 팔에 슬그머니 팔짱을 끼었다.

 

두 사람은 노을빛이 내려앉은 마당 한가운데 나란히 서서, 자신들이 함께 땀 흘려 다듬어낸 첫 번째 주문 가구를 바라보았다.

 

골목 너머로 저녁 밥 짓는 냄새가 구수하게 번져왔다.

 

어딘가에서 어머니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 덜컹거리며 하루를 마감하는 마을버스의 안내 방송 소리.

 

그 모든 소음들이 모여 거대한 침묵 대신 따스한 삶의 증거가 되어주고 있었다.

 

우진은 서연의 온기를 느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을이 걷히기 시작한 짙푸른 하늘 한구석에서, 어제 한강에서 보았던 그 첫 번째 별이 다시금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별 아래, 정해진 각본도 통제된 궤도도 없는 무한한 도화지 같은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비정형의 테이블처럼, 울퉁불퉁하고 서툴지라도 저마다의 결을 따라 굽이쳐 흐르는 인간들의 내일.

 

그 불확실한 내일을 향해, 우진은 자신의 손으로 깎아낸 삶의 첫 발걸음을 묵직하고 단단하게 내딛고 있었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