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개발중입니다! 오픈예정은 12월25일 예정하고 있습니다.
오픈노벨
← 목록
3x
1.0
인생은 네모 세모 동그라미로 간다 · 제 114화

서연의 고백

📅 2026-10-02 18:10•✍️ 만우자•👁️ 0•

1. 톱밥 날리는 아침

 

상도동 147번지 목공 작업실의 마당은 이른 아침부터 맑은 나무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강우진(姜宇鎭)은 푸른색 작업용 앞치마를 두르고 마당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백 년 참나무 원목 앞에 섰다.

 

길이 6미터, 지름 1미터에 달하는 거목의 표면은 어제 내린 밤이슬을 머금어 한층 짙은 갈색을 띠고 있었다.

 

한쪽 옆구리를 가르고 지나간 벼락의 흉터는 여전히 검게 그을려 있었지만, 그 주변을 감싸 안은 수십 개의 옹이는 아침 햇살을 받아 매끄러운 바위처럼 단단하게 빛났다.

 

스윽, 스윽.

 

우진이 양손으로 긴 손대패의 손잡이를 쥐고 조심스럽게 밀어내자, 얇은 대패밥이 곱슬거리며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바닥으로 흩날리는 나뭇밥에서는 풋풋하고 쌉싸름한 참나무 고유의 진액 냄새가 훅 끼쳤다.

 

예전 같았다면 시야를 온통 뒤덮었을 인과율의 푸른 격자선도, 0.3초 뒤의 칼날 각도를 계산해 주던 잔상도 없었다.

 

하지만 나무를 베어 넘기는 대패 날의 진동과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나이테의 결, 미세하게 뒤틀린 목재의 저항이 고스란히 온몸의 감각을 깨웠다.

 

기계와 알고리즘의 보정 없이 오직 제 손의 힘과 호흡으로 나무와 대화하는 순간이었다.

 

"강 목수, 오늘도 새벽부터 열심이네!"

 

골목 어귀에서 청소용 빗자루를 든 복덕방 할머니가 마당 울타리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할머니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보온병이 들려 있었다.

 

"할머니, 일찍 나오셨네요."

 

우진이 대패를 멈추고 이마의 땀을 훔치며 환하게 웃었다.

 

"지나가다 보니까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길래, 생강 좀 넣고 달인 대추차 한 병 가져왔어. 목수 일이라는 게 먼지를 많이 마시잖아. 목 축여가면서 해."

 

"감사합니다. 마침 목이 칼칼하던 참이었는데 잘 마실게요."

 

우진이 받아 든 보온병 뚜껑을 열자 달콤하고 알싸한 대추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할머니는 마당에 비스듬히 누워 결을 드러내기 시작한 참나무를 감탄 어린 눈으로 훑어보았다.

 

"어제는 그냥 시커먼 장작더미 같더니만, 껍질을 벗겨내니까 때깔이 영 딴판이네. 저 가운데 박힌 동그란 옹이들이 꼭 꽃처럼 피어난 것 같아."

 

"벼락 맞은 상처를 스스로 메우느라 나무가 온 힘을 다해 굳혀낸 자리거든요. 대패질을 해보니까 일반 참나무보다 두 배는 질기고 단단합니다."

 

"사람이나 나무나 모진 풍파를 겪어야 속이 꽉 차는 법이지. 참, 아까 보니까 한 기자가 골목 아래 편의점 쪽에서 걸어 올라오던데?"

 

할머니의 장난기 섞인 눈짓에 우진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서연 씨가요? 오늘 신문사 마감 날이라고 들었는데 일찍 왔나 보네요."

 

"얼른 차 마시고 마중이나 나가봐. 처자가 얼굴이 반쪽이 됐더구먼, 책 쓰느라 고생이 많았나 봐."

 

할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훠이훠이 골목길을 쓸며 멀어지는 사이, 작업실 앞 골목 모퉁이에서 경쾌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2. 완성된 원고와 두 사람

 

베이지색 면바지에 흰 셔츠를 받쳐 입은 한서연(韓瑞延)이 큼직한 가죽 가방을 어깨에 메고 걸어오고 있었다.

 

아침 햇살을 받아 찰랑거리는 단발머리 사이로 피곤한 기색이 엿보였지만, 우진을 발견한 그녀의 눈동자는 맑게 반짝였다.

 

"우진 씨, 벌써 작업 시작했어요? 대패밥 냄새가 골목 입구까지 나던데요."

 

"서연 씨, 오늘 마감 아니었어요? 밤샘 작업했을 텐데 좀 더 쉬지 않고 왜 벌써 나왔습니까."

 

우진이 앞치마에 손을 털고 다가가 그녀의 무거운 가방을 자연스럽게 넘겨받았다.

 

서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당 한쪽에 놓인 작은 벤치에 걸터앉았다.

 

"방금 출판사 데스크에 《선택할 권리》 개정 증보판 최종 교정본을 넘기고 왔어요. 채린이의 청소년 미술제 대상 소식이랑, 서울대 제안을 거절하고 제 발로 걷겠다고 한 인터뷰까지 에필로그에 전부 넣었거든요."

 

서연은 가방 안에서 묵직한 A4 원고 뭉치를 꺼내 우진의 손에 쥐여주었다.

 

표지 맨 윗장에는 정갈한 글씨로 인쇄된 제목이 선명했다.

 

[선택할 권리 : 우리가 되찾은 불확실성과 무형의 내일]

 

우진은 조심스럽게 종이의 감촉을 넘겨보았다.

 

15년 전 테헤란로 한국첨단통신기술연구원의 비극부터, 오르비스 코어의 파괴, 그리고 광화문 지하 공동구에서 백도현의 증오를 지워낸 순간까지.

 

그 잔혹하고 서늘했던 통제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피 흘렸던 모든 이들의 이름과 목소리가 서연의 담담하고 따뜻한 문장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편집장님이 원고를 다 읽으시더니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 하시더라고요."

 

서연이 턱을 괴며 낮게 말했다.

 

"그러고는 딱 한마디 하셨어요. '이제야 우리가 사람답게 숨을 쉬는 이유를 알겠다'고요."

 

"서연 씨가 마음을 다해 써줬으니까요. 시스템에 갇혀 숫자로 박제되었던 사람들의 삶을, 온전한 인간의 이야기로 되돌려놓은 겁니다."

 

우진의 진심 어린 찬사에 서연의 뺨에 엷은 홍조가 번졌다.

 

그녀는 우진이 건넨 따뜻한 대추차를 한 모금 머금고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원고를 넘기고 나니까, 거짓말처럼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아요. 지난 몇 년 동안 오직 이 진실을 밝히겠다는 생각 하나로 앞만 보고 달렸잖아요. 매일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쫓기고, 머리 위의 검은 세모를 지켜보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었는데…… 그게 다 끝나고 나니까 문득 멍해지더라고요."

 

"허탈할 만도 하죠. 거대한 폭풍이 지나가고 난 뒤의 바다는 언제나 너무 고요하니까요."

 

우진은 서연의 곁에 나란히 앉아 그녀의 지친 어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리 위는 완벽하게 비어 있었다.

 

어떤 인위적인 궤도도, 다음 행동을 지시하는 텍스트도 뜨지 않았다.

 

그것은 자유의 축복이었지만, 동시에 스스로 다음 발걸음을 디뎌야 하는 무게이기도 했다.

 

"오늘 날씨가 정말 좋아요, 우진 씨."

 

서연이 고개를 들어 초여름의 청명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따 해 질 무렵에…… 잠깐 한강이나 걸으러 갈래요? 매번 일이나 사건 때문에 뛰어다니기만 했지, 한 번도 노을을 느긋하게 바라본 적이 없잖아요."

 

우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오늘 낮에는 대패질을 끝내두고, 오후엔 쉬엄쉬엄 나가보죠."

 

3. 굽이치는 나무의 결

 

정오를 넘기며 햇살이 마당을 뜨겁게 달구었다.

 

우진은 서연을 작업실 안채의 작은 다다미방으로 들여보내 한숨 자게 한 뒤, 다시 원목 앞으로 돌아왔다.

 

손대패 대신 양손잡이 끌과 환도를 든 우진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테헤란로 시민 기억 생태 공원에 세워질 상징 쉼터의 중심 기둥.

 

그는 어젯밤 도면에 그렸던 유선형 곡선의 처마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제천에서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말,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그 가르침이 손끝을 타고 흘렀다.

 

흐르는 강물, 뻗어 나가는 나뭇가지, 인간의 굽이치는 혈관처럼, 세상의 모든 생명은 꺾이고 돌아가며 제 길을 완성한다.

 

탁!

 

타악!

 

나무망치가 끌의 머리를 때릴 때마다 투박한 옹이 주변의 거친 살점들이 깎여 나갔다.

 

우진은 벼락 맞은 깊은 홈통을 인위적으로 평평하게 메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 탄 자국을 중심에 두고, 양옆으로 부드러운 능선이 흘러내리도록 나무의 굴곡을 다듬었다.

 

그것은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품은 채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작업이었다.

 

"우진 씨."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낮잠에서 깨어난 서연이 머리를 질끈 묶고 툇마루로 걸어 나왔다.

 

얼굴의 붓기가 가라앉고 한결 맑아진 눈빛이었다.

 

그녀는 우진의 땀에 젖은 등과 바닥에 수북이 쌓인 나뭇밥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벌써 형태가 드러나네요. 저 벼락 맞은 자리가 꼭 계곡물 흐르는 협곡 같아요."

 

"그렇게 보이나요? 다행이네요. 사람들이 여기 와서 손을 얹었을 때, 상처가 흉측한 게 아니라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걸 느꼈으면 했거든요."

 

우진이 손을 털고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오후 5시를 막 넘어가고 있었다.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햇살이 상도동 골목길 지붕들을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슬슬 출발할까요? 노을이 지기 전에 한강에 닿으려면 지금 나서는 게 좋겠습니다."

 

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얇은 가디건을 걸쳤다.

 

두 사람은 작업실 문을 잠그고 언덕길을 내려섰다.

 

차를 타는 대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지도 않고, 상도동 고개를 넘어 노들섬과 한강 변으로 이어지는 오래된 도보길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4. 노을빛 한강과 억새풀

 

한강대교 남단, 강변을 따라 길게 뻗은 산책로는 붉게 물든 노을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초여름의 강바람이 수면을 간지럽히며 잘게 부서지는 물비늘을 금빛으로 흩뿌렸다.

 

둔치 한쪽에 무리 지어 피어난 억새풀들이 바람을 따라 서걱거리며 은빛 파도를 만들었다.

 

자전거를 타는 직장인들, 유모차를 밀고 가는 젊은 부부, 손을 잡고 걷는 노인들의 모습이 노을빛 속에 아늑한 실루엣으로 녹아들었다.

 

과거 서울 상공을 촘촘히 가로지르던 사각 격자망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하늘은 오직 빛과 구름, 그리고 바람이 빚어내는 무한한 색채의 향연으로 가득 차 있었다.

 

코발트블루에서 보랏빛으로, 다시 짙은 주황빛과 다홍빛으로 번져가는 하늘의 경계는 자로 잰 듯한 직선이 아닌 자연스러운 물감의 번짐 그 자체였다.

 

"정말…… 아름답네요."

 

서연이 강변 난간에 멈춰 서서 강물을 내려다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강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을 가볍게 흩날렸다.

 

우진은 반 발짝 물러선 자리에서 서연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취재 수첩을 쥐고 사건 현장을 누비던 기자의 날카로운 눈매 대신, 한없이 투명하고 여린 한 여성의 눈동자가 그곳에 있었다.

 

"우진 씨를 처음 봤던 날 기억나요?"

 

서연이 강물을 바라본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태성C&I 로비였죠. 그때 우진 씨는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위태로워 보였어요. 눈빛은 차가웠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고 사는 사람 같았죠."

 

우진은 씁쓸하게 웃으며 자신의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그땐 제 머릿속이 지옥이었으니까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정수리 위에서 붉은 세모가 회전하고, 꼭두각시 줄선이 허공으로 뻗어 나가는데…… 저 혼자만 그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보고 있다는 공포가 숨을 막히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우진 씨는 도망치지 않았잖아요."

 

서연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우진과 시선을 맞추었다.

 

그녀의 갈색 눈동자 안에 붉은 노을빛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무서운 도형들을 보면서도, 선로로 떨어지려는 아이를 구하고, 동료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고, 끝내는 그 거대한 괴물 같은 시스템의 심장부까지 홀로 걸어 들어갔어요. 우진 씨가 아니었다면…… 전 진작에 서지훈이나 넥스트 큐브의 손에 지워졌을 거예요."

 

"아닙니다, 서연 씨. 제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서연 씨 덕분이었습니다."

 

우진이 한 걸음 다가서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모두가 시스템이 정해준 가짜 행복에 취해 순응하고 있을 때, 유일하게 질문을 던져준 사람이 서연 씨였어요. '왜 세상이 이렇게 되었느냐'고, '우리가 잃어버린 진짜 삶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봐 주지 않았다면, 전 그저 저 자신을 저주하며 미쳐버렸을 겁니다."

 

두 사람의 거리가 바람 한 줄기 지날 만큼 가까워졌다.

 

강물에 부딪히는 물결 소리가 아득하게 귓가를 맴돌았다.

 

5. 서연의 망설임과 눈물

 

서연은 가디건 주머니에 넣고 있던 두 손을 가만히 쥐었다가 폈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우진 씨. 아까 제가…… 책을 끝내고 나니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고 했잖아요."

 

"네, 기억합니다."

 

"그게 단순히 취재가 끝나서가 아니었어요."

 

서연의 목소리가 젖어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개를 떨구며 강변의 자갈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시스템이 무너지고,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도형이 사라지고…… 세상이 자유를 되찾았다고 모두가 기뻐하는데, 정작 제 안에서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피어올랐어요. 내비게이션도 없고, 정해진 각본도 없는 이 거대한 백지 같은 세상에서…… 내가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기사를 쓰고 진실을 밝히는 것 말고, 한서연이라는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걸까."

 

서연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노을빛을 받아 투명한 구슬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시스템과 싸우는 동안 억눌러왔던 원초적인 고독이자, 자유라는 망망대해 앞에 선 한 인간의 순수한 나약함이었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무서웠어요.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또다시 우진 씨가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는 건 아닐까. 15년 동안 갇혀 있던 아버지의 곁으로, 아니면 아무도 찾지 못하는 외딴 시골 공방으로 사라져서 영영 저를 잊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게 너무 두려웠어요."

 

서연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진실을 좇던 강인한 탐사보도 기자의 가면 뒤에 숨겨져 있던, 지독하게 외로웠던 한 사람의 진심이 마침내 터져 나온 것이었다.

 

우진의 가슴속에서 무언가 쿵 하고 내려앉았다.

 

오르비스 코어가 소각되던 날의 폭발도, 백도현의 압축 충격파도 주지 못했던 묵직한 파동이 심장을 관통했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뻗었다.

 

거칠고 굳은살이 박인 우진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서연의 차가운 두 손을 감싸 쥐었다.

 

"앗……."

 

서연이 놀란 듯 젖은 눈을 들어 우진을 올려다보았다.

 

우진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흙냄새와 대패밥의 온기가 서연의 얼어붙은 손가락 마디마디를 따스하게 녹여내고 있었다.

 

6. 억지로 맞추지 않는 궤도

 

"서연 씨."

 

우진의 목소리는 강물처럼 깊고 잔잔했다.

 

"시스템이 존재하던 시절, 그자들은 사람들에게 '완벽한 궤도'를 약속했습니다. 언제 취업하고, 누구를 만나 사랑하고, 언제 죽을지까지 초 단위로 오차 없이 계산해 주는 완벽한 사각의 시간표를 내밀었죠."

 

서연은 눈물 어린 눈으로 우진의 입술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진짜 사랑 대신, 도파민 주파수로 조작된 가짜 감정과 계산된 조건들뿐이었습니다. 조금의 오차도, 어긋남도 허용하지 않는 닫힌 감옥이었죠."

 

우진은 쥐고 있던 서연의 손을 조금 더 단단히 감싸 쥐었다.

 

"전 서연 씨에게 어떤 완벽한 미래도 약속할 수 없습니다. 제가 만든 가구가 다음 공모전에서 또 떨어질 수도 있고, 상도동 공방에 손님이 끊겨 막막해질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서연 씨 역시 다음 기사 때문에 또다시 벽에 부딪히고 밤을 새우며 고통스러워할 수도 있겠죠."

 

서연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요, 서연 씨."

 

우진의 눈동자에 맑고 투명한 푸른빛이 번져났다.

 

능력이 발현되던 시절의 기괴한 푸른빛이 아닌, 현실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인간 본연의 맑은 눈빛이었다.

 

"우리가 서로의 궤도를 억지로 끼워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연 씨는 서연 씨의 속도로 걷고, 저는 저의 서툰 걸음으로 걸어가면 됩니다. 두 개의 궤도가 하나의 사각형에 갇히는 게 아니라…… 나란히 흐르는 두 줄기 강물처럼 굽이치며 함께 걸어가면 어떨까요."

 

서연의 숨결이 멎을 듯 가빠졌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기에,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기에…… 전 지금 제 손을 잡고 있는 서연 씨와 그 불확실한 내일을 함께 걷고 싶습니다. 길을 잃어도 좋습니다. 헤매다 넘어지면 서로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면 되니까요."

 

그것은 화려한 수식어도, 영원불멸을 호언장담하는 맹세도 아니었다.

 

오직 인간의 불완전함과 나약함을 온전히 끌어안은 자만이 건넬 수 있는 가장 겸허하고 단단한 고백이었다.

 

서연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다시금 흘러내렸지만, 이번에는 두려움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녀의 입가에 눈부신 미소가 차올랐다.

 

"우진 씨는…… 정말 구제 불능의 목수네요."

 

서연이 젖은 목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사랑 고백조차 이렇게 투박하고 울퉁불퉁하게 할 줄은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깎고 다듬는 건 나무로 족해서요. 마음까지 반듯하게 대패질하는 법은 배우질 못했습니다."

 

"아니요, 완벽해요."

 

서연이 우진의 품으로 한 걸음 파고들었다.

 

그녀의 뺨이 우진의 어깨에 와닿았다.

 

우진의 옷깃에서 풍기는 짙은 참나무 향과 흙의 온기가 서연의 온몸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서연은 우진의 등 뒤로 팔을 둘러 그의 단단한 등을 꼭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우진 씨. 정해지지 않은 길이라서…… 당신과 함께라면 그 어떤 길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 같이 길을 잃어봐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게."

 

7. 강물 위에 뜨는 별

 

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한강 위로 짙은 남색의 어스름이 깔려 앉았다.

 

강변 북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붉은 후미등과 가로등 불빛이 강물 위로 길게 번져 나가며 은은한 야경을 만들어냈다.

 

두 사람은 난간에 나란히 기댄 채, 맞잡은 손을 놓지 않고 잔잔히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았다.

 

초여름 밤바람이 시원하게 뺨을 스치며 두 사람의 옷자락을 펄럭였다.

 

"참, 우진 씨."

 

서연이 우진의 손가락을 깍지 껴 쥐며 말했다.

 

"내일 상도동 공방에 손님이 한 분 찾아오실지도 몰라요."

 

우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손님이요? 아직 정식으로 간판도 안 달았는데요."

 

"출판사 편집장님이요. 제 원고를 보시더니, 공방 이야기를 듣고는 꼭 부탁하고 싶은 게 있대요. 거실에 둘 커다란 원목 테이블을 맞추고 싶은데…… 반듯한 네모 말고, 나무의 굴곡이랑 갈라진 틈이 그대로 살아 있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모양으로 만들어줄 수 있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우진의 눈이 커졌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비정형 테이블이요?"

 

"네. 공모전에서 '규격 미달'이라고 퇴짜 맞았던 그 호두나무 식탁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바로 그거라면서 무릎을 치셨어요. 완벽하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가구를 찾고 계셨대요."

 

서연이 장난스럽게 우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어때요, 강 목수님? 첫 정식 주문 제작인데, 맡아주실 수 있겠어요?"

 

우진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까만 어둠 속에서 첫 번째 별 하나가 조용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 어떤 시스템도, 오르비스의 방정식도 예측하지 못했던 삶의 우연들이 이렇게 또 다른 내일의 문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정해진 각본이 사라진 자리마다, 인간과 인간이 맺어가는 따뜻한 인연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정성을 다해 만들어야죠. 세상의 어떤 규격에도 얽매이지 않는, 오직 그분만을 위한 가장 자유로운 테이블로요."

 

우진은 서연의 손을 한 번 더 힘주어 쥐었다.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서연의 맥박과 체온이, 그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두 사람이 같은 시간 속을 나란히 걸어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밤하늘 아래 유유히 흐르는 한강물처럼, 그들의 삶은 이제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를 향해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그 어떤 예측도 필요 없는, 오직 서로의 온기만이 이정표가 되어주는 눈부신 밤이었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