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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네모 세모 동그라미로 간다 · 제 111화

채린의 전시회

📅 2026-10-02 18:10•✍️ 만우자•👁️ 0•

1. 작업실 앞마당의 거목

 

이른 아침의 서늘한 공기를 가르고 묵직한 대형 트럭의 엔진음이 상도동 147번지 골목길 어귀에 울려 퍼졌다.

 

강우진은 목장갑을 끼며 작업실 덧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포천의 대형 목재 야적장에서 출발한 화물차가 좁은 골목길을 조심스럽게 후진해 작업실 앞마당 공터에 멈추어 섰다.

 

트럭 적재함 위에는 어제 우진이 직접 만져보고 계약했던 백 년 묵은 참나무 원목이 굵은 쇠사슬에 묶인 채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길이 6미터를 넘고 성인 남자의 품으로도 다 안지 못할 둘레를 지닌 거목이었다.

 

번개를 맞아 까맣게 숯처럼 탄 한쪽 옆구리와, 그 깊은 상처를 스스로 감싸 안으며 우둘투둘하게 굳어진 수십 개의 거대한 옹이가 아침 햇살을 받아 짙은 밤색으로 빛났다.

 

"어이쿠, 강 목수! 짐 싣고 오느라 진땀 뺐네. 나무가 워낙 무겁고 결이 억세서 크레인 기사도 혀를 내두르더라고."

 

트럭에서 내린 운전기사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껄껄 웃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기사님. 마당 안쪽 그늘진 평지에 내려주시면 됩니다."

 

우진은 기사와 함께 유압 크레인의 와이어를 단단히 걸고 참나무 거목을 공터 한가운데에 안착시켰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마당 한가운데 자리를 잡은 거목의 표면에서는 백 년 동안 숲에서 머금었던 묵직한 흙내음과 참나무 특유의 알싸한 피톤치드 향이 진하게 번져 나왔다.

 

우진은 장갑을 벗고 거친 나무껍질 위에 손바닥을 가만히 얹었다.

 

기계톱으로 잘려 나간 단면에는 촘촘하게 얽힌 나이테가 수백 겹의 원을 그리며 살아온 날들을 웅변하고 있었다.

 

비바람과 폭설, 벼락의 참극을 견뎌낸 자리마다 나이테는 거칠게 비틀려 있었지만, 그 비틀림이야말로 이 거목을 세상 그 어떤 목재보다 단단하게 지탱해 온 힘이었다.

 

테헤란로의 흉터 위에 세워질 시민 기억 생태 공원의 중심 쉼터.

 

그곳에서 비를 피하고 지친 등을 기댈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을 품어줄 가장 정직하고 거룩한 기둥이었다.

 

"우진 씨!"

 

골목길 아래에서 시원하고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연청색 셔츠에 단정한 슬랙스를 차려입은 한서연이 하얀색 프리지아 꽃다발을 가슴에 안은 채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벌써 도착했네요! 세상에…… 야적장에서 누워 있을 때보다 마당에 내려놓으니까 훨씬 더 크고 듬직해 보여요."

 

서연이 꽃다발을 든 채 거목 주위를 빙글 돌며 탄성을 내질렀다.

 

"나무가 아니라 하나의 작은 산 같아요. 저기 옹이 박힌 것 좀 봐요. 햇빛을 받으니까 진짜 보석 같네요."

 

"손이 꽤 많이 갈 것 같습니다. 옹이가 워낙 단단해서 대팻날을 몇 번이나 갈아 끼워야 할지 모르겠네요."

 

우진이 땀을 닦으며 씩 웃었다.

 

"그게 우진 씨 특기잖아요. 상처를 깎아서 가장 따뜻한 결로 살려내는 거."

 

서연이 윙크를 하더니 손에 든 꽃다발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자, 감탄은 이따가 하고 서둘러요! 오늘 채린이 첫 번째 정식 청소년 미술 전시회 개막식이 11시잖아요. 늦으면 채린이가 입술을 한 됫박은 내밀고 삐칠 텐데요."

 

"그렇군요. 얼른 옷 갈아입고 나오겠습니다."

 

우진은 작업복을 벗고 단정한 셔츠로 갈아입은 뒤, 어제 스케치해 두었던 쉼터 도면 노트를 챙겨 서연의 차에 올랐다.

 

초여름의 청명한 바람이 두 사람의 뺨을 스치며 싱그럽게 흘러갔다.

 

2. 인사동 골목의 작은 갤러리

 

전시회가 열리는 장소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쌈지길 인근 골목 안쪽에 위치한 아담한 2층짜리 갤러리 '도화(桃花)'였다.

 

주말을 맞이해 골목길은 붓과 한지, 옛 공예품을 구경하러 나온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갤러리 입구 앞에는 화사한 원색 포스터가 커다란 이젤 위에 걸려 있었다.

 

[제1회 청소년 자유 미술제 - 〈틀을 깨는 아이들〉]

 

포스터 한가운데에는 삐뚤빼뚤하지만 힘찬 붓 터치로 쓰인 전시 제목과 함께, 윤채린의 이름이 당당하게 대표 출품 작가로 인쇄되어 있었다.

 

"우진이 형! 서연 누나!"

 

입구 계단 쪽에서 낯익은 우람한 목소리가 울렸다.

 

단정한 흰색 와이셔츠에 면바지를 입은 박태호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연분홍빛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한지혜와 단정한 셔츠 차림의 최영훈이 함께 서 있었다.

 

지난 홍대 숲길 버스킹 때보다 한결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표정들이었다.

 

"태호야, 지혜야, 영훈아. 일찍들 왔네."

 

우진이 다가가 동생들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렸다.

 

"당연히 일찍 와야죠! 채린이가 오늘 아침 8시부터 전화해서 안 오면 평생 절교하겠다고 난리를 쳤거든요."

 

태호가 너스레를 떨자 지혜가 그의 팔을 가볍게 꼬집으며 웃었다.

 

"태호 오빠가 제일 먼저 와서 입구 화환 정리까지 다 했으면서 꼭 저렇게 말을 해요."

 

"아니, 난 그냥 물류 배송 기사 직업병 때문에 짐 정리를 한 것뿐이지……"

 

동생들의 소소하고 유쾌한 티격태격에 서연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과거 넥스트 큐브의 차가운 지하 챔버에서 목덜미에 나노 전극을 꽂힌 채 오직 감정이 거세된 살상 병기로 사육되었던 아이들이었다.

 

상대의 숨통을 끊는 각도와 도비탄 궤도만을 연산하던 그 삭막한 눈빛 속에, 이제는 서로를 아끼고 장난을 칠 줄 아는 평범한 인간의 다정한 온기가 온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들어가자. 주인공 얼굴 좀 봐야지."

 

우진이 미소를 지으며 갤러리 유리문을 밀고 들어섰다.

 

은은한 캔버스 천 냄새와 유화 물감 특유의 쌉싸름한 테레핀유 향이 훅 끼쳐왔다.

 

벽면마다 10대 청소년들이 그린 자유분방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갤러리 안쪽에는 관람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전시장 가장 안쪽, 커다란 통창으로 쏟아지는 오전 햇살 아래에 오늘의 주인공 윤채린이 서 있었다.

 

어깨까지 닿는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물감이 묻지 않은 새하얀 블라우스에 체크무늬 스커트를 입은 채린은 팸플릿을 가슴에 꼭 쥔 채 긴장한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채린아!"

 

서연이 먼저 다가가 프리지아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전시회 진짜 축하해! 오늘 너무 예쁜 거 아니야?"

 

채린의 눈이 커지더니 이내 얼굴 가득 환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언니! 우진 아저씨! 다들 진짜 오셨네요!"

 

채린이 꽃다발에 얼굴을 묻으며 콧등을 찡긋거렸다.

 

"노란 프리지아 향기 너무 좋아요. 아저씨, 저 오늘 진짜 떨려서 아침밥도 다 남겼어요."

 

"떨릴 게 뭐 있니. 홍대 숲길에서 수백 명 앞에서도 씩씩하게 전시를 했던 화가인데."

 

우진이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채린이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었다.

 

"그땐 길거리였잖아요. 여긴 정식 갤러리라서 심사위원 선생님들도 오시고, 미술대학 교수님들도 오신단 말이에요."

 

"교수들이 오든 누가 오든 무슨 상관이야. 우리 채린이 그림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데."

 

태호가 굵은 팔을 내저으며 편을 들자 채린이 혀를 쏙 내밀었다.

 

"태호 오빠는 맨날 그림 볼 줄도 모르면서 제일 목소리만 크더라."

 

"뭐라고? 나 이제 가구 배송하면서 원목 무늬랑 색상 감별하는 눈 엄청 높아졌거든?"

 

두 사람의 유쾌한 입씨름에 갤러리 안이 기분 좋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우진은 채린의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고, 손톱 밑에는 미처 다 씻어내지 못한 파란색과 보랏빛 물감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은빛 동그라미의 척력에 휘둘려 연필 한 자루 쥐지 못하고 피눈물을 흘리던 15년의 감옥.

 

그 저주를 스스로 깨부수고 온전한 자기 손으로 쥐어낸 붓의 흔적이었다.

 

"채린아, 네 그림 어디에 걸려 있니? 구경 좀 시켜주렴."

 

우진의 말에 채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전시장 가장 넓은 메인 벽면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3. 캔버스 위의 무지개

 

갤러리 중앙 벽면에 걸린 세 점의 대형 캔버스를 마주한 순간, 우진과 서연은 물론 태호와 동생들까지 약속이나 한 듯 숨을 멈추었다.

 

규격 100호에 달하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는,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압도적인 빛과 색채의 향연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정형화된 풍경화도, 원근법에 맞춰진 정밀 묘사도 아니었다.

 

오직 순수한 감정과 생명력이 캔버스 표면 위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 장엄한 추상화였다.

 

첫 번째 캔버스의 제목은 [지워진 시간]이었다.

 

화면 전체를 짓누르는 짙은 암흑과 칠흑빛 바탕 위에, 칼로 긁어낸 듯한 거친 스크래치와 핏빛 같은 붉은 파편들이 어지럽게 튀어 있었다.

 

차가운 사각 격자의 감옥 속에서 신음하던 유년기의 고통과 억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림이었다.

 

그러나 그 어둠의 한가운데를 뚫고, 손톱만 한 크기의 투명한 백색 물감이 마치 작은 별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두 번째 작품의 제목은 [깨어난 손끝]이었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며 화면 가득 푸른빛과 은빛의 소용돌이가 거칠게 용솟음치고 있었다.

 

시스템의 척력에 맞서 스스로 붓을 쥐기 시작했던 격동의 순간, 굳은살이 박이고 피가 터지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인간의 주체적인 투쟁이 거친 나이프 터치로 생생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가장 거대한 캔버스 앞에서는 모두가 말을 잃었다.

 

작품명은 [무형의 숲].

 

거기에는 네모도, 세모도, 동그라미도 없었다.

 

하늘을 얽매던 검은 꼭두각시 줄선도, 감시관들의 차가운 기하학적 큐브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캔버스 위에는 오직 봄날의 연둣빛, 초여름의 청명한 코발트블루, 타오르는 노을의 주황빛과 새벽안개의 몽환적인 보랏빛이 경계 없이 자유롭게 뒤섞여 있었다.

 

물감을 붓으로 칠한 것이 아니었다.

 

손가락으로 뭉개고, 손바닥으로 문지르고, 온몸으로 캔버스를 껴안듯 흩뿌려진 빛의 파동.

 

어떤 사각의 틀에도 갇히지 않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자유로운 색채의 선들이, 마치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한 무리의 새처럼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림의 한쪽 구석, 따뜻한 갈색 물감으로 거칠게 채색된 나뭇결 형상 위에는 지난번 우진이 만들었던 비대칭 호두나무 테이블과 옹이의 흔적이 아련한 실루엣으로 녹아들어 있었다.

 

"세상에……"

 

서연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눈가에 투명한 감격의 눈물이 맺혔다.

 

"채린아…… 이거 정말 네가 그린 거 맞아? 어떻게 이런 색을 낼 수가 있어?"

 

"규격을 전부 잊어버리려고 노력했어요."

 

채린이 캔버스 곁에 서서 담담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들은 처음에 원근법을 지켜라, 형태의 외곽선을 먼저 반듯하게 따고 명암을 칠해라, 그래야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다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선을 긋다 보니까…… 옛날에 제 머리 위를 짓누르던 그 징그러운 도형들이 자꾸 생각나는 거예요."

 

채린의 시선이 [무형의 숲] 한가운데로 향했다.

 

"그래서 그냥 선을 다 지워버렸어요. 손에 물감을 묻혀서 마음 가는 대로 찍고 뭉갰어요. 내가 숨 쉬고 싶을 때 초록색을 바르고, 아저씨랑 언니 생각이 날 땐 따뜻한 주황색을 얹었죠. 정답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으니까요."

 

우진은 묵묵히 캔버스 표면의 질감을 응시했다.

 

두껍게 덧칠해진 유화 물감의 요철 위로 갤러리 조명이 부딪혀 따스한 음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정답이 없는 세상.

 

누구도 미래의 경로를 계산해 주지 않는 불확실한 삶.

 

과거 사람들은 그 불확실성이 두려워 스스로 시스템의 사각 감옥으로 기어들어 가려 했다.

 

하지만 그 족쇄를 걷어내고 마주한 백지는 공포의 낭떠러지가 아니었다.

 

자신만의 색깔로 무엇이든 그려 넣을 수 있는 무한한 자유의 대지였다.

 

우진이 15년 동안 흉터의 고통을 견디며 마침내 지워냈던 그 기하학적 족쇄들이, 채린의 손끝을 통해 가장 눈부신 예술로 승화되어 있었다.

 

"참 아름답구나, 채린아."

 

우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채린이 고개를 들어 우진을 바라보았다.

 

"아저씨가 나무를 깎을 때 말씀하셨잖아요. 옹이는 흠집이 아니라 나무가 비바람을 견뎌낸 가장 단단한 무늬라고요. 제 그림도 그래요. 이 어둡고 삐뚤빼뚤한 자국들은 제가 아팠던 시간들이지만, 그게 없었다면 이 찬란한 빛도 그릴 수 없었을 거예요."

 

열아홉 살 소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통찰은, 그 어떤 철학자의 잠언보다 깊고 묵직하게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태호와 지혜, 영훈은 캔버스 앞에서 말없이 서로의 손을 꼭 쥐었다.

 

그림 속에 녹아 있는 고통과 해방의 서사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공유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지혜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갤러리 바닥으로 소리 없이 떨어졌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마침내 온전한 빛의 세계로 걸어 나온 자들이 나누는 영혼의 환희였다.

 

4. 대상(大賞)의 영예와 작은 소란

 

정오가 가까워지자 갤러리 안은 미술계 관계자들과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채린의 세 작품 앞에 길게 줄을 서서 웅성거렸다.

 

"이게 정말 열아홉 살 학생의 작품이라고?"

 

"선과 면의 경계를 완전히 해체해 버렸어. 붓 자국 하나하나에 살아있는 날것의 감정이 펄펄 뛰고 있잖아."

 

백발의 심사위원장과 교수들이 돋보기를 들고 캔버스를 꼼꼼히 뜯어보며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이윽고 단상 위에 마이크가 켜지고, 장내를 정리하는 사회자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내외 귀빈 및 관람객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 제1회 청소년 자유 미술제 영예의 대상 시상식을 거행하겠습니다.

 

갤러리 안의 공기가 팽팽한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채린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서연의 옷자락을 꼭 쥐었다.

 

- 본 미술제의 설립 취지는 기성세대의 규격화된 입시 미술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자유의지와 독창적인 예술성을 발굴하는 데 있습니다.

 

심사위원 전원 일치로 결정된 이번 대회의 대상 수상자는……

사회자가 봉투를 열며 활짝 웃었다.

 

- 작품명 [무형의 숲]을 출품한 윤채린 학생입니다!

 

축하합니다!

 

와아아아아!

 

순간 갤러리 전체가 떠나갈 듯한 함성과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채린아! 대상이래! 대상!"

 

서연이 비명을 지르며 채린을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태호는 천장이 울릴 정도로 우렁찬 환호성을 질렀고, 지혜와 영훈도 눈물을 글썽이며 손뼉을 쳤다.

 

채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다가, 비로소 실감이 난 듯 얼굴을 감싸 쥐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저씨…… 저 상 받았어요…… 저 진짜 화가가 될 수 있나 봐요……"

 

우진은 떨리는 채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따뜻하게 토닥였다.

 

"화가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너는 이미 훌륭한 화가란다. 어서 단상으로 올라가렴."

 

관중들의 뜨거운 시선 속에서 채린이 단상 위로 걸어 올라갔다.

 

심사위원장이 커다란 상패와 꽃다발을 건네며 마이크를 넘겼다.

 

채린은 훌쩍이며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낸 뒤 마이크를 잡았다.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제 손으로 숟가락 하나 제대로 쥐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머릿속에 갇혀 있던 차가운 선들이 저를 매일 괴롭혔고, 제 인생은 이미 망가진 실패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장내가 숙연해졌다.

 

채린의 맑고 떨리는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공간을 잔잔하게 울렸다.

 

"하지만 제 곁에서 '틀을 벗어나도 괜찮다', '네 손끝으로 직접 네 세상을 그리면 된다'고 끝까지 손을 잡아준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상은 제가 잘나서 받은 게 아니라, 정해진 각본 없이도 우리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해 준 모든 분께 바치는 선물입니다."

 

채린의 시선이 객석 맨 앞줄에 서 있는 우진과 서연, 그리고 태호 일행에게 닿았다.

 

"저를 어둠 속에서 꺼내준 우진 아저씨, 서연 언니,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언니들에게 이 영광을 바칩니다. 앞으로도 어떤 규격에도 갇히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객석 곳곳에서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

 

어떤 미술계 인사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고, 젊은 관람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 순간, 갤러리 한구석에서 검은 정장 차림의 한 남자가 조용히 사람들 틈을 비집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우진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그 남자를 향했다.

 

과거의 감각이었다면 위험을 알리는 푸른색 궤적 잔상이나 살상 의도를 감지하려 신경을 곤두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진의 시야는 더없이 맑고 평온했다.

 

그 남자의 정수리 위에는 아무런 기하학적 도형도 떠 있지 않았다.

 

단지 가슴팍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이라는 명찰을 단, 인자한 인상의 노교수였다.

 

5. 노교수의 제안과 미래의 길

 

시상식이 끝난 뒤 관람객들이 다과회장으로 흩어질 무렵, 명찰을 달고 있던 노교수가 채린과 우진 일행에게 다가왔다.

 

"윤채린 학생,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

 

채린이 깜짝 놀라 상패를 쥔 채 허리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교수님."

 

노교수는 안경을 고쳐 쓰며 벽면에 걸린 [무형의 숲]을 깊은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수십 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고 수천 편의 그림을 보아왔지만, 오늘 자네의 그림처럼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 작품은 처음일세. 기교나 훈련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영혼의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거대한 자유의지가 느껴져."

 

교수의 극찬에 서연과 태호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 차올랐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제 부족한 그림을 좋게 봐주셔서……"

 

채린이 붉어진 얼굴로 대답하자 교수가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건넸다.

 

"우리 대학에서 이번 가을학기부터 '자율 전형 특별전형'을 신설했네. 규격화된 수능 점수나 획일적인 석고 소묘 실기 시험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작가 본인의 포트폴리오와 예술적 철학만을 심사하는 전형이지."

 

교수의 말에 서연이 숨을 들이켰다.

 

"설마…… 특별 장학생 추천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윤채린 학생이 원한다면 우리 학부 교수회의 추천서를 써주고 싶군요. 이 거칠고 눈부신 생명력을 제도권의 틀로 깎아내리지 않고, 마음껏 만개할 수 있도록 작업실과 재료를 전폭 지원해 줄 생각입니다. 어떻습니까?"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미대에서 실기 시험조차 치르지 않고 특별 장학생으로 영입하겠다는 제안이었다.

 

태호는 입을 떡 벌렸고, 지혜는 채린의 손을 흔들며 방방 뛰었다.

 

하지만 정작 제안을 받은 채린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소녀는 물끄러미 명함을 내려다보다가, 곁에 서 있는 우진을 올려다보았다.

 

그 눈동자 속에는 망설임이나 욕심이 아닌, 맑고 단단한 사유의 빛이 서려 있었다.

 

"교수님, 정말 감사한 제안입니다. 꿈만 같아요."

 

채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더 천천히 제 길을 걸어가고 싶어요."

 

"응? 특별전형을 마다하겠다는 건가?"

 

교수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채린이 캔버스 쪽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지름길로 훌쩍 건너뛰면, 그사이 길가에 피어 있는 들꽃들을 다 놓쳐버릴 것 같아서요. 넘어지기도 하고, 물감이 마음에 안 들어서 밤새 울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바람을 맞으며 그림을 그리는 그 시간들을 온전히 제 발로 겪어내고 싶습니다. 그게 제가 찾은 '진짜 내 인생'이거든요."

 

교수는 채린의 대답을 듣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모두가 더 빠른 성공, 더 안전한 보장, 더 높은 규격을 향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시대였다.

 

그런 세상 속에서 열아홉 살의 나이에 스스로 지름길을 거절하고 자갈밭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청년을 마주한 것이었다.

 

이윽고 교수의 입가에 깊고 따뜻한 감탄의 미소가 번졌다.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군. 자네는 이미 완성된 예술가인데, 내가 또 다른 대학이라는 틀에 자네를 가두려 했어."

 

교수가 채린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자네의 속도대로 걷게나. 넘어지고 헤매는 그 모든 발자국이 자네의 가장 위대한 걸작이 될 테니. 언제든 전시회를 열면 내게 연락을 주게. 첫 번째 관객으로 달려올 테니."

 

교수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자, 채린은 우진의 품에 와락 안겼다.

 

"아저씨, 저 잘했죠?"

 

"그래. 정말 훌륭했다, 채린아. 네가 오늘 내게도 아주 큰 가르침을 주었구나."

 

우진은 채린의 등을 다독이며 가슴속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벅찬 보람을 느꼈다.

 

시스템의 최적화 경로를 거부하고, 스스로 서툴고 느린 길을 선택한 아이.

 

그 주체적인 걸음걸이야말로, 그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낸 자유의 가장 찬란한 결실이었다.

 

6. 쌈지길 찻집의 담소

 

전시회 공식 행사가 마무리되고 관람객들이 잦아들 무렵, 우진과 서연, 채린, 그리고 태호와 동생들은 갤러리 인근 쌈지길 골목의 한옥 전통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래된 서까래 아래 놓인 널찍한 통나무 평상에 둘러앉자, 시원한 오미자차와 따뜻한 대추차, 그리고 달콤한 개성주악과 곶감이 푸짐하게 차려져 나왔다.

 

"아, 진짜 오늘 하루가 1년처럼 길었어요!"

 

채린이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에는 기분 좋은 노곤함과 충만한 행복감이 가득했다.

 

"채린아, 아까 교수님 제안 거절할 때 난 진짜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태호가 주악을 한입에 베어 물며 혀를 내둘렀다.

 

"서울대 미대 장학생 자리를 걷어차다니, 우리 채린이 배포가 아주 대통령감이야."

 

"오빠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거길 덜컥 들어가면 교수님들이 시키는 대로 네모 반듯한 그림만 그리게 될지도 모르잖아. 난 내 맘대로 그릴 거야. 망치면 찢어버리고 다시 그리면 되지!"

 

채린이 콧방귀를 뀌자 서연이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채린이 말이 백번 맞아. 지름길이 꼭 정답은 아니지. 내 책 《선택할 권리》 3쇄 머리말에는 오늘 채린이 이야기를 꼭 넣어야겠어. 완벽한 살아있는 사례잖아."

 

지혜와 영훈도 찻잔을 부딪치며 축하를 건넸다.

 

"채린아, 네 그림 보는데 옛날 생각나서 눈물이 핑 돌더라. 챔버 안에서 차가운 주사 맞을 때 네가 벽에 손톱으로 동그라미 그리던 거 기억나?"

 

영훈의 말에 채린의 눈가가 살짝 붉어졌다.

 

"기억나죠…… 그땐 그 동그라미가 저주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요. 그 동그라미는 저주가 아니라, 우리를 그 감옥 밖으로 꺼내주려고 온 우주가 찍어준 탈출구였다는 걸요."

 

채린의 담담한 고백에 평상 주변에 따스하고 뭉클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우진은 찻잔을 내려놓고 가만히 동생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비극의 시작은 15년 전 테헤란로의 차가운 연구소 화재 참사였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부모의 품에서 뜯겨 나가 차가운 금속 큐브 속에 갇혔고, 감정을 거세당한 채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어야 했다.

 

하지만 그 끔찍한 상처의 시간을 지나, 그들은 마침내 살아남아 이렇게 한옥 처마 밑에서 차를 마시며 웃고 있었다.

 

상처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그들의 뇌간에 남은 나노 칩 적출 흉터처럼, 우진의 관자놀이에 새겨진 4센티미터의 상흔처럼, 그리고 제천 연구실에서 휠체어에 앉아 계신 아버지의 척수처럼.

 

그러나 그 흉터는 더 이상 파멸의 징표가 아니었다.

 

서로를 보듬어 안고 더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랑의 무늬였다.

 

"참, 우진이 형."

 

태호가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아까 작업실 마당에 엄청나게 큰 참나무가 들어왔던데요? 그걸로 테헤란로 공원에 들어갈 벤치 만드시는 거죠?"

 

"그래. 포천에서 백 년 묵은 녀석으로 골라왔다. 벼락을 맞아서 상처가 깊은 녀석이지."

 

우진의 대답에 채린의 눈이 반짝였다.

 

"벼락 맞은 나무요? 와…… 진짜 멋있다. 아저씨, 그 쉼터 완성되면 제 그림도 한 점 기증해도 돼요? 공원 쉼터 벽에 걸어두고 오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요."

 

"그럼, 영광이지. 채린이 그림이 걸린다면 그 쉼터가 백배는 더 따뜻해질 거다."

 

우진이 활짝 웃자 모두가 기분 좋게 잔을 맞부딪쳤다.

 

초여름의 나른한 햇살이 서까래 틈새를 지나 평상 위로 금빛 가루처럼 부서져 내렸다.

 

7. 갤러리를 나서는 길

 

오후 늦게 갤러리 정리를 돕기 위해 다시 갤러리 '도화'로 돌아왔다.

 

전시 첫날의 공식 일정이 끝나고, 채린의 대상 수상 소식을 들은 다른 관람객들이 남겨둔 축하 메모가 방명록에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서연과 태호, 동생들이 갤러리 안쪽에서 채린의 짐을 챙기는 사이, 우진은 홀로 [무형의 숲] 앞에 다시 섰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고요한 전시장.

 

노을빛이 서쪽 유리창을 뚫고 길게 들어와 캔버스 위로 붉은 음영을 드리우고 있었다.

 

빛의 각도가 바뀌자, 낮에는 미처 보이지 않던 미세한 붓 터치의 결들이 입체적으로 도드라져 보였다.

 

물감을 겹겹이 쌓아 올리며 생겨난 작은 틈새들.

 

그 불완전한 틈새마다 노을빛이 스며들어, 마치 숲속의 나뭇잎 사이로 저녁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과거 오르비스의 완벽했던 디지털 그래픽에는 존재할 수 없던, 오직 질감과 우연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우진은 코트 안주머니에서 흑연 연필을 꺼냈다.

 

그리고 들고 있던 스케치북을 펼쳤다.

 

채린의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려하고 자유로운 색채의 파동을 보며, 마당에 누워 있는 참나무 거목의 지붕과 벤치 도면 위에 새로운 선을 덧그리기 시작했다.

 

반듯하게 각을 세우려던 지붕의 처마를 바람이 흐르는 곡선으로 부드럽게 굴리고, 기둥의 결합부는 나무 본연의 나이테 홈을 그대로 살려 끼워 맞추는 방식.

 

인간이 나무를 억지로 꺾어 규격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살아온 결을 온전히 존중하며 사람의 쉼터로 화답하는 건축.

 

연필 끝이 사각거리며 도면 위를 거침없이 달렸다.

 

어제 제천에서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바람은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고, 오직 빈 들판을 향해서만 분다.'

 

그렇다.

 

삶이란 특정한 도형 속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처럼 빈 들판을 향해 스스로 나아가는 여정이었다.

 

실패해도 좋고, 넘어져도 좋았다.

 

그 상처의 틈새로 새로운 바람이 불어와 꽃을 피울 테니까.

 

"우진 씨, 다 챙겼어요!"

 

뒤편에서 짐을 든 서연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꽃다발과 상패를 품에 안은 채린이 동생들의 호위를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우진은 스케치북을 덮어 주머니에 넣고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8. 노을 속으로 번지는 색채

 

갤러리를 나와 인사동 골목을 빠져나오자, 종로의 하늘 전체가 거대한 수채화처럼 붉고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도심의 빌딩 숲 너머로 저물어가는 태양이 마지막 빛을 거침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과거 그 하늘을 가로지르던 전산 격자망의 검은 꼭두각시 줄선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오직 자연이 빚어내는 무한한 색채의 향연만이 인간의 머리 위를 광활하게 감싸 안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제가 쏠게요! 대상 상금 일부를 미리 땡겨서 쓸 수 있대요!"

 

채린이 상패를 짤랑거리며 당당하게 외쳤다.

 

"야, 채린아! 그럼 우리 삼겹살에 냉면까지 풀코스로 먹어도 되냐?"

 

태호가 눈을 반짝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당연하지! 태호 오빠는 고기 10인분 먹어! 내가 다 사줄 테니까!"

 

아이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저녁 골목길을 따라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서연이 우진의 곁으로 다가와 나란히 걸음을 맞추었다.

 

노을빛을 머금은 그녀의 눈동자가 깊고 투명하게 빛났다.

 

"우진 씨, 오늘 채린이 그림 보면서 무슨 생각 하셨어요?"

 

우진이 붉게 물든 하늘을 올려다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세상이 참 넓고 다채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좁고 답답한 사각형의 상자 속에 갇혀 있었는지도요."

 

"맞아요.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사람마다 가진 색깔이 다 다른데, 시스템은 그걸 전부 무채색 네모로 칠해버리려 했으니까요."

 

서연이 우진의 소매를 살며시 스치며 속삭였다.

 

"이제는 누구도 사람들의 색깔을 지울 수 없어요. 채린이의 그림처럼, 각자의 색깔로 저 하늘을 채워가겠죠."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다채로운 사람들이 언제든 편히 쉬어갈 수 있는 단단한 쉼터를 만들면 됩니다."

 

우진은 주머니 속에 든 스케치북을 손끝으로 가만히 쥐었다.

 

내일부터는 상도동 마당에서 백 년 된 참나무를 마주하고 본격적인 대패질을 시작할 것이다.

 

거친 껍질을 벗겨내고, 벼락 맞은 상처를 어루만지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휴식의 자리를 조각해 나갈 것이다.

 

어둠은 지나갔고, 상처는 가장 아름다운 무늬가 되었다.

 

저마다의 궤도를 스스로 직조해 나가는 사람들의 활기찬 발걸음 위로, 초여름의 따스한 밤공기가 다정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