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년의 침묵, 한 번의 벼락
1. 어둠 속의 기록, 파락호(破落戶)의 기만과 연막
한양 도성, 운현궁(雲峴宮) 깊고 은밀한 곳에 자리 잡은 밀실.
타닥거리는 희미한 촛불만이 빛이 닿지 않는 텅 빈 방을 외롭게 지키고 있었다.
며칠 전 강화도의 핏빛 전장에서 진무사의 군관이 목숨을 걸고 달려와 바친 승전보 서찰이 촛불 아래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대원군 이하응은 말없이,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찻잔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흔들리는 찻잔의 탁한 수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칠 년 전 섭정의 자리에 올랐을 때보다 훨씬 깊게 주름이 패고 늙어 있었다.
그러나 그 눈빛만은 달랐다.
갓 집권하여 도성에 피바람을 예고했을 때보다 훨씬 더 서슬 퍼런 광기와 살기를 띠고 있었다.
밀실 밖에서는 매서운 밤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 소리가 마치 원귀의 울음처럼 으스스하게 울렸다.
하지만 밀실 안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무겁고 서늘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하응은 찻잔을 든 손끝이 자신도 모르게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서양 이양선의 흉포함에 대한 공포도, 노환으로 인한 육신의 쇠약함도 아니었다.
칠 년이라는 길고도 끔찍한 시간 동안 짐승처럼 억눌러왔던 거대한 울분.
그리고 마침내 그 서늘한 이빨을 세상에 완전히 드러냈다는 맹렬한 희열.
그것이 폭발하기 직전의 전율이었다.
"칠 년…… 참으로 길고도 비참한 세월이었지."
"궐 안팎의 눈먼 놈들은 모두 나를 가리켜 '경복궁 중건에 미쳐버린 파락호(破落戶)'라며 삿대질하고 비웃었지."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벽 한쪽에 굳게 잠겨 있던 낡은 오동나무 궤를 열었다.
그 안에는 지난 칠 년간의 처절했던 피의 기록과, 서양의 기기를 능가하기 위해 그려낸 비밀 병기들의 설계도가 담긴 방대한 일기장이 깊이 잠들어 있었다.
오늘 강화도에서 불란서 오랑캐들의 오만한 머리 위로 쏟아진 가공할 벼락.
그것은 운현궁 지하에서 칠 년 동안 햇빛조차 보지 못한 채 묵묵히 울려 퍼졌던 쇠망치 소리의 눈부신 결실이었다.
고종이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직후.
조선의 조정은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거대한 무덤과도 같았다.
북경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건너오는 청나라 사신들은 상국(上國)의 낡은 예법을 들먹이며 사사건건 조선의 내정에 오만하게 간섭했다.
영의정 김좌근을 위시한 안동 김씨 일파는 그 오랑캐들의 바지가랑이에 붙어 왕실의 권위를 처참하게 짓밟았다.
국고는 텅 비어 쥐가 파먹은 곶감처럼 황폐했고, 백성들의 고혈은 세도가들의 광 안에서 덧없이 썩어갔다.
이 지옥 같은 난국 속에서 이하응은 철저하게 계산된 '파락호'의 기괴하고도 치욕적인 가면을 얼굴에 뒤집어썼다.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을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방탕하고 멍청한 종친'으로 완벽하게 각인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는 백주대낮부터 종로 저잣거리의 허름한 주막을 전전하며 기생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상놈 왈패들과 어울려 투전판에서 거금을 날리며 미친 듯이 주정을 부렸다.
그의 도포 자락은 늘 술안주와 흙먼지에 흐트러져 있었고, 손톱 밑에는 도박판의 더러운 먼지가 까맣게 끼어 있었다.
양반과 백성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그를 보며 노골적으로 손가락질했다.
왕실의 품위를 땅바닥에 떨어뜨리는 파락호.
대원군이라는 고귀한 이름 뒤에 숨은 상갓집 개.
"합하! 대원위 대감!"
"청나라 사신들이 또다시 예법을 트집 잡으며 막대한 공물을 요구하고 있사옵니다!"
"당장 편전으로 드시어 대책을 세우셔야 하옵니다!"
걱정을 가장한 대신들의 비난과 조롱이 빗발쳤다.
하지만 이하응은 그저 기생의 무릎을 벤 채 탁한 술잔을 기울이며 콧방귀를 칠 뿐이었다.
편전에 모인 안동 김씨 대신들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향해 혀를 차며 수군거렸다.
"쯧쯧, 저러다 나라가 정말 청나라의 완전한 속국으로 전락하겠어."
"상갓집 개라 불리며 구걸하던 자가, 이제는 텅 빈 국고를 아주 통째로 말아먹는구나."
"저런 비루한 자가 주상 전하의 친부라니, 하늘이 참으로 무심하시지."
이하응은 그들의 멸시 어린 비난을 들을 때마다 일부러 보란 듯이 더 크게 너털웃음을 지었다.
마치 미친 자처럼 행동했다.
그는 국고가 비어감에도 일부러 더 화려한 연회를 열고, 돈을 물 쓰듯 탕진했다.
심지어 자신을 멸시하는 김좌근의 측근들에게 노골적으로 아첨하며 막대한 뇌물을 바쳐 그들의 환심을 사기도 했다.
대신들은 안심하고 낄낄거렸다.
'저 멍청한 파락호가 마침내 권력의 달콤한 맛에 취해 완전히 미쳐버렸다.'
하지만 이하응은 그 비난과 뼈아픈 조롱을 뼛속 깊이 즐겼다.
저들이 자신을 멍청한 한량으로 여기며 경계심을 풀고 방심할수록, 더욱 깊고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그의 칼날이 소름 끼치도록 날카로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썩은 사대부들은 이하응이 보여주는 완벽한 '기만의 연극'에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갔다.
그가 진짜 노리는 거대한 야망이 무엇인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청나라의 오만한 간섭.
그리고 이빨을 드러낸 서구 열강이 언제 어디서 바다를 통해 들이닥칠지 모르는 극도의 불안.
그 속에서 이하응이 택한 유일한 생존 전략은 '철저한 함구와 압도적인 방어선 구축'뿐이었다.
그가 수많은 원성을 감수하며 무리하게 주도한 경복궁 중건 공사는 결코 단순한 토목 사업이나 잃어버린 왕실의 권위 회복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역사를 뒤바꿀 거대한 '연막'이었다.
공사장에서 밤낮없이 발생하는 거대한 목재 파열음.
수만 명의 인부들이 일으키는 소란.
그 모든 소리가 운현궁과 경복궁 지하 깊숙이 뚫어놓은 '비밀 조병창'에서 들려오는 육중한 망치 소리를 완벽하게 덮어주었다.
지하 삼십 척 아래.
펄펄 끓는 거대한 용광로가 타오르고, 붉게 달아오른 강철을 두드리는 망치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지상의 아둔한 대신들은 그저 경복궁의 거대한 기둥을 세우는 소리라고만 철석같이 믿었다.
이하응의 수족들은 안동 김씨가 세도를 부리며 횡령한 막대한 비자금을 밤의 장막을 틈타 낱낱이 추적하고 환수했다.
그리고 그 돈을 지하 창고로 쏟아부었다.
그 천문학적인 금은보화는 서양의 신식 기기 설계도와 격물(格物) 서적.
그리고 청나라 밀무역상을 통해 은밀히 들여온 질 좋은 특수 철광석을 사들이는 데 아낌없이 투입되었다.
2. 지하의 쇳물, 피로 쓴 제련술(製鍊術)
빛이 닿지 않는 운현궁 지하 공방.
이곳은 지상의 부패한 낡은 조선과 완전히 단절된, 무쇠와 쇳물이 지배하는 또 하나의 끔찍하고도 위대한 세상이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은밀한 비밀 통로는 두꺼운 쇠창살로 겹겹이 잠겨 있었다.
입구를 지키는 것은 이하응이 직접 선발한 무관들이었다.
억울하게 가족을 잃고 세상에 원한이 뼈에 사무친, 살기등등한 자들이었다.
이하응은 신분 때문에 짐승보다 못한 천대를 받던 장인들을 불러들였다.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
눈썰미가 매서운 포수.
그리고 조정의 탄압을 피해 숨어 지내던 남인계 실학자들.
백정, 노비, 양반 할 것 없이 오직 실력만으로 모인 그들은 이 뜨거운 지옥 불 속에서 비로소 자신들의 억눌린 재능을 원 없이 꽃피울 기회를 얻었다.
"이것은 낡아빠진 불랑기포의 구조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치고 개량한 것이오."
한 장인이 쇳가루 묻은 얼굴로 설계도를 가리키며 외쳤다.
"포신 안쪽에 나선형의 강선을 정밀하게 새겨 넣으면, 탄환이 회전하며 날아가 사거리가 비약적으로 배 이상 늘어나지!"
"북방의 거만한 청나라 오랑캐든, 바다를 건너오는 서양의 흉포한 무리든."
"우리 조선의 영토를 넘보는 자들의 심장을 완벽하게 꿰뚫을 최후의 방패를 만드는 것이다!"
이하응은 곤룡포 대신 거친 삼베옷의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설계도를 수정하며 그들과 머리를 맞댔다.
지상에서는 기생충처럼 파락호 행세를 하던 그였다.
그러나 이 펄펄 끓는 지하에만 내려오면 눈빛이 짐승처럼 돌변했다.
밀수해 온 서양의 격물 서적과 화약 배합비를 직접 검토하는 냉철한 격물학자(格物學者)로 변모했다.
서양 신식 기기의 복잡한 수치와 기록은 조선의 천재 실학자들이 밤을 새워 번역했다.
조선 장인들의 신들린 제련술(製鍊術)은 그 낯선 기술에 무시무시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 위대한 과정은 뼈를 깎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조선의 낡은 철 주조법으로는 강철의 강도가 턱없이 부족했다.
시운전 중 신형 화포가 굉음을 내며 터져 나갈 때마다 수많은 장인들이 끔찍한 부상을 입거나 절망 속에 쓰러졌다.
지하 공방의 공기는 늘 눈을 뜰 수 없는 독한 화약 연기와 매캐한 피비린내, 쇳내로 짙게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비 오는 날.
굳게 기대를 걸었던 신형 화포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장인 세 명이 현장에서 참혹하게 목숨을 잃은 날이었다.
지옥 같은 지하 공방은 무거운 공포와 침통한 정적에 잠겼다.
살아남은 장인들은 더 이상 저주받은 화포를 만들지 않겠다며 공구를 내던지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였다.
이하응이 흙투성이가 된 작업복을 입고 호위도 없이 지하로 내려왔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장인들의 훼손된 시신 앞에서 한참을 짐승처럼 말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 묵묵히 찢겨나간 화포 설계도 앞으로 걸어갔다.
"재원(財源)은 결코 걱정하지 마라."
이하응의 목소리는 서늘하게 지하실을 울려 퍼졌다.
"나는 조선의 썩어빠진 모든 서원을 철폐하고 그 토지를 몰수하여, 이 병기도감의 재원으로 온전히 환수했다."
"이 싸움에서 겪는 실패는 결단코 죄가 아니다."
"단, 두려움에 먹혀 도중에 멈추는 것은 나에 대한, 그리고 이 조선에 대한 씻을 수 없는 역모(逆謀)다!"
그의 목소리에는 불복종을 용납하지 않는 서늘한 살기와 제왕의 광기가 짙게 담겨 있었다.
그날 이후.
공포와 비애에 휩싸였던 장인들은 말없이 피눈물을 닦고 다시 뜨거운 망치를 집어 들었다.
그 처절한 오 년의 시간 동안 지하 공방에는 수천 개의 찢어진 쇳조각과 엿가락처럼 휘어진 신형 화전(火箭)의 잔해가 시체처럼 산더미로 쌓였다.
그러나 그 끔찍한 희생과 끈질긴 시간 끝에 마침내 서양의 기술을 능가하는 '조선만의 신병기'가 악마 같은 울음소리와 함께 탄생했다.
그것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칠 년 동안 살을 깎으며 인내해 온 이하응의 독기.
조선 민초들의 피땀.
그리고 그들의 지략.
그 모든 것이 고스란히 녹아든 붉은 철의 심장이었다.
3. 거지의 무릎, 강화유수 이정수와의 맹약
"이정수."
"자네에게 한양 도성으로 향하는 유일하고도 치명적인 목구멍, 강화도를 온전히 맡기겠네."
이하응은 칠 년 전, 낡은 체제와 부패한 군 지휘관들에게 반항하다 훈련도감에서 억울하게 쫓겨난 무관 이정수를 은밀히 찾았다.
도성 밖 거리의 부랑자가 되어 죽어가던 자였다.
칠흑 같은 밤.
누더기 같은 초라한 행색의 이정수는 삿갓을 쓰고 자신을 찾아온 이하응을 알아보고는 흙바닥에 바싹 엎드렸다.
굶주림과 병마에 지쳐 몸은 앙상하게 뼈만 남았다.
한때 무장으로서 빛나던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탁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합하……"
"저는 이미 무관으로서의 명예도 잃고 버려진 폐물에 불과하옵니다."
"저 같은 비루한 자가 어찌 감히 한양의 관문인 강화도를 지키겠사옵니까."
"제발 저의 헛된 숨통을 끊어 거두어 주시옵소서."
이하응은 더러운 흙바닥에 기꺼이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그리고 떨고 있는 이정수의 거친 손을 덥석 잡았다.
이정수의 굳은살 박인 손에서는 훈련도감 시절 만지던 조총의 화약 때와 거리의 흙먼지가 짙게 묻어 나왔다.
"내 눈에는, 자네의 죽어가는 동공 속에서 아직 조선을 지키려는 굶주린 호랑이의 이빨이 분명히 보이거든."
이하응의 목소리는 은밀하고도 뜨거웠다.
"오만한 청나라의 압박이 날로 거세지고, 바다 건너 알 수 없는 외세의 흉포한 바람이 언제 이 땅을 집어삼킬지 모른다."
"그 폭풍에 대비해야 한다."
"자네는, 기꺼이 내 손을 잡고 역적이 될 각오가 되어 있는가?"
"조선을 지키기 위해 사대부들이 목숨보다 귀히 여기는 성리학의 명분을 시궁창에 내팽개치고, 짐승처럼 금기시된 신무기를 다루는 잔혹한 역적이 될 각오 말이야."
이정수는 감전된 듯 온몸을 크게 떨었다.
뜨거운 눈물이 그의 앙상하고 마른 볼을 타고 속절없이 흘러내렸다.
그는 이하응의 가죽신 앞에 깊이 머리를 조아리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이 한 목숨, 기꺼이 합하를 위해 바치겠사옵니다!"
"저 이정수, 기꺼이 썩어빠진 조선의 역적이 되겠습니다."
"제 생애 마지막 남은 핏방울 하나까지 짜내어 조선의 바다를 위해 싸우겠사옵니다!"
그날 이후.
이하응의 은밀한 공작 아래 이정수는 극적으로 복권되어 강화유수(江華留守) 겸 진무사로 부임했다.
그는 겉으로는 세상 편하게 강화도를 방어하는 척했다.
적의 척후가 보는 앞에서는 기생을 부르고 술을 마시며 해안 경비를 소홀히 하는 허술하고 멍청한 모습을 보였다.
조정의 안동 김씨 대신들은 혀를 찼다.
"이정수 저놈도 파락호 대원군의 수하 아니랄까 봐 나태하고 멍청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달빛조차 숨은 깊은 밤의 진실은 완전히 달랐다.
밤마다 이정수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해안가 숲속에 비밀 참호를 팠다.
한양으로 통하는 수로와 해안가 요충지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치밀한 십자 포화 방어망을 구축했다.
훗날 어떤 압도적인 적이 쳐들어오더라도 뭍에 오르는 순간 완벽하게 뼈와 살을 분쇄해 박살 낼 수 있도록 악마 같은 치밀한 덫을 놓은 것이다.
이하응과 이정수는 칠 년 동안 지하에서 수없이 모의하고 도상 훈련을 거듭했다.
적의 함대가 닻을 내릴 지점.
적이 폭포수 같은 포격에 당황할 시간.
적이 패퇴하여 도망칠 바닷길 퇴로.
모두를 집요하게 계산했다.
강화도의 모래사장 돌멩이 하나하나.
참호의 각도 하나하나.
그 모든 것이 조선이 칠 년간 갈고닦은 치밀하고 잔인한 살육의 전략지도가 되었다.
이정수는 대원군이 건네준 신형 화포의 밀조를 굳게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그가 한양으로 띄워 올릴 단 한 번의 승전보를 위해 지옥 같은 칠 년의 굴욕을 짐승처럼 인내하며 견뎠다.
4. 벼락의 순간, 뻗어나가는 호랑이의 발톱 (현재)
다시 현재.
이하응은 낡은 일기장이 담긴 궤를 천천히 닫았다.
칠 년의 뼈를 깎는 고통.
칠 년의 숨 막히는 인내.
그리고 칠 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외세에 대한 지독한 증오.
그 모든 것이 오늘 마침내 강화도의 모래사장에서 붉은 피와 화약의 벼락으로 터져 나왔다.
밀실 안의 촛불이 탁 소리를 내며 불꽃을 튀겼다.
이하응이 열어둔 창밖으로 차갑고 푸른 달빛이 스며들어 그의 도포 자락을 비췄다.
"기생충 같던 파락호가 주상의 아버지가 되고, 이제는 북방의 거만한 청나라든 서양의 코쟁이 오랑캐든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무쇠의 조선을 만들고 있구나."
밀실의 굳게 닫힌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이정수의 군관이 다시 소리 없이 들어와 승전의 상세한 보고서를 올렸다.
"합하."
"서라파(西羅巴, 유럽)에서 쳐들어온 오랑캐들의 군함들이 우리의 곡사 포화에 대패하여 꼬리를 말고 도망쳤사옵니다!"
"진무사 영감께서 도주하는 적들을 추격하여 저들이 내버리고 간 무기들을 대량으로 거두었사옵니다."
"저들의 신식 기기를 분해하여 분석할 수 있는 훌륭한 단서가 될 것이옵니다."
이하응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붓을 들어 벼루에 먹을 갈았다.
그의 단단한 손길에는 이제 일말의 망설임이나 두려움조차 없었다.
‘탈취한 서양 총의 뇌관 구조를 완벽히 파악해 조선만의 후장식 연발총을 즉각 양산하라.
강화도 방어에 투입되었던 비밀 조병창의 핵심 인력을 즉시 빼내어, 우리가 탈취한 기기들을 바탕으로 거대한 철갑 전선(戰船)의 설계 작업에 모조리 투입하라.
바다를 막는 것에 만족하지 마라.
우리가 저들의 대양(大洋)으로 쇳덩이를 띄워 직접 나갈 날이 멀지 않았다.’
그의 붓끝에서 서릿발처럼 뿜어져 나오는 맹렬한 기세는 이미 단순한 변방의 섭정을 훌쩍 뛰어넘어 있었다.
무력과 공포로 천하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려는 피 끓는 제왕의 것이었다.
안동 김씨의 뿌리 깊은 부패한 세도 정치와 청나라의 오만방자한 내정 간섭 속에서도, 피 튀기는 칠 년의 내부 숙청과 치밀한 병참 준비 끝에 조선의 텅 비었던 국고는 이제 자주적인 제련술과 압도적인 군사력이라는 가장 강력하고 파괴적인 자산으로 가득 채워졌다.
강화도의 승리는 한낱 국지전의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원군의 철갑을 두른 조선이 거대 제국으로 팽창하기 위해 터뜨린 첫 번째 진격의 포성이었다.
운현궁의 검은 기와 위로 차갑고 둥근 보름달이 높이 떠올랐다.
이하응은 창가에 우뚝 서서 피비린내가 바람에 실려 오는 서해 바다를 향한 밤하늘을 응시하며 차갑고도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칠 년 전 주막에서 그를 파락호라 비웃으며 침을 뱉고 멸시하던 어리석은 권문세가들은 망나니의 칼 아래 목이 잘려 세상에 없다.
오직 그가 홀로 뼈를 깎아 설계한, 붉은 철과 매캐한 화약으로 단단히 다져진 강하고 흉포한 조선만이 남았다.
대원군 이하응의 절대적인 시대가, 진정으로 대륙의 판도를 피로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는 붓을 내려놓고 뒷짐을 진 채 창밖의 달을 보며 조용하지만 뼈저리게 읊조렸다.
"이것은 기나긴 피바람의 시작일 뿐이다."
"전 세계의 오만한 무리들이 조선의 철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 깨지는 그날까지, 나의 쇳물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의 동공은 굶주린 맹수처럼 형형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이제 조선은 더 이상 바다 건너 놈들의 무자비한 뭇매를 무기력하게 맞는 약자가 아니었다.
오랑캐 놈들이 강화도에 쏘아 올린 것은 한낱 위협용 포탄이 아니었다.
조선이라는 깊게 잠들어 있던 거대한 짐승을 영원히 깨워버린 치명적인 기폭제(잠언)였다.
호랑이는 완벽하게 눈을 떴다.
그리고 발톱은 강철로 거듭났다.
이하응은 그렇게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강철 제국, 새로운 조선의 핏빛 역사를 거침없이 써 내려가고 있었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