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성벽
1. 비구름 덮인 운현궁, 서늘한 침묵
한양 도성, 운현궁(雲峴宮) 깊고 은밀한 밀실.
창밖으로는 눅눅하고 무거운 비구름이 낮게 깔려 도성의 낡은 기왓장들을 멍든 것처럼 검푸르게 물들이고 있었다.
밀실 안은 단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는 서늘하고 무거운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국화차의 씁쓸하고 옅은 향기가 배어 있는 고요한 공간 안에서, 대원군 이하응은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달칵.
찻잔이 받침에 부딪히며 내는 맑고 서늘한 마찰음이 밀실의 숨 막히는 정적을 날카롭게 갈랐다.
그의 앞에는 강화도에서 사경을 헤매며 며칠 밤낮을 달려온 전령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전령은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채 덜덜 떨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가 소중히 품고 온 밀봉된 서찰은 이미 식은땀과 차가운 빗물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젖어 있었다.
"합하(閤下)! 대원위 대감! 큰일이옵니다!"
전령의 비명 같은 보고가 밀실을 울렸다.
"강화도 앞바다에 서양 오랑캐, 불란서(佛蘭西) 놈들의 군함들이 떼를 지어 나타났사옵니다!"
"저들의 배는 우리 수군의 낡은 전선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며, 그 거대한 굴뚝에서 뿜어내는 시커먼 연기가 강화도의 하늘을 완전히 뒤덮을 지경이옵니다!"
"저들의 가공할 대포는 우리의 사거리 밖에서 이미 초지진(草芝鎭)을 무자비하게 포격하고 있사옵니다!"
"진무사 영감의 명으로 급히 변고를 알리러 왔사옵니다!"
전령의 갈라진 목소리에는 서양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느낀 짙은 공포와 절망이 고스란히 섞여 있었다.
그때였다.
방 한구석의 짙은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모습을 드러낸 암영각(暗影閣)의 수장, 백무진이 차가운 목소리로 보고를 덧붙였다.
"합하."
"방금 궐내 편전에 심어둔 끄나풀에게서도 은밀히 연통이 왔사옵니다."
"강화도의 변고가 전해지자마자, 겁에 질린 조정 대신들은 당장 문을 열고 화친을 맺어야 한다며 궐 안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다 하옵니다."
화친(和親).
개방(開放).
그리고 그 끝에 기다리는 굴종(屈從).
역사가 기억하는 조선의 썩어빠진 정치가들은 늘 이 세 가지 굴욕적인 선택지 안에서 허우적대다 결국 나라의 병을 깊게 만들었다.
사대(事大)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강자에게 엎드려 비는 것만이 유일한 살길이라 믿던 샌바람 같은 부패한 사대부들.
그러나 그 치욕적인 보고를 듣는 이하응의 표정은 기이할 정도로 평온하고 차분했다.
오히려 그는 옅고 서늘한 조소를 띠며 전령의 겁에 질린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화친이라."
"굶주린 짐승에게 물려 뜯기기 전에 스스로 목을 씻고 내밀라는 소리군."
"참으로 어리석고 한심한 것들이다."
이하응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굳게 닫힌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차가운 빗물이 매서운 바람을 타고 밀실 안으로 들이쳤다.
그의 흑백이 섞인 머리칼이 빗물에 젖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꼿꼿이 섰다.
푸른 하늘이 보였어야 할 흐린 허공의 자리에, 그의 날카로운 눈에는 서해 바다를 가로질러 조선을 위협하는 서양 함대의 흉포한 포구가 마치 환영처럼 어른거리고 있었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명분은 길바닥의 낙엽보다 못하고, 돈과 철이 없는 쇄국은 그저 껍데기만 남은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
"나는 지난 7년간 그 허울뿐인 헛된 명분과 썩어빠진 모래주머니 같은 사대부들을 버리기 위해, 이 나라 조선의 모든 것을 뼈째로 뒤흔들며 준비해 왔다."
그가 벽에 걸린 거대한 조선 팔도 지도 위, 외적의 침입로인 강화도의 위치를 단호한 손가락으로 짚었다.
강화도.
조선의 숨통을 쥐고 있는 심장이자, 적들이 수도 한양으로 들어오기 위해 가장 먼저 뚫고 지나가야 하는 치명적인 관문이었다.
"강화유수 겸 진무사 이정수에게 보낸 나의 밀조가 그곳에 있지."
"내 그에게 분명히 일러두었다."
"저 코쟁이 놈들의 오만함에 취해 뭍으로 기어오르는 그 순간이, 바로 저놈들의 끔찍한 제삿날이 될 것이라고 말이야."
2. 무너지는 초지진, 오만한 적의(赤衣)의 진격
같은 시각.
비바람이 몰아치는 강화도 초지진(草芝鎭) 해안가.
전장의 상황은 절박함을 넘어 그야말로 지옥 같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불란서 함대의 무자비한 함포 사격이 시작된 지 30분.
굳건하던 초지진의 성벽은 적의 압도적인 화력을 견디지 못하고 이미 곳곳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콰아앙!
웅장하게 고막을 찢는 포성 속에 성벽을 지탱하던 거대한 화강암 돌들이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조선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빗줄기와 포연에 섞여 처절하게 흩어졌다.
해안가 방어선에 배치된 조선의 재래식 화포들은 사거리가 턱없이 짧았다.
바다 멀리 떠 있는 적의 웅장한 증기 함대를 전혀 타격하지 못한 채, 분노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다.
"진무사 영감!"
"적들이 마침내 군함에서 소선(小船)을 내렸습니다!"
"망원경으로 확인한 규모를 보아하니 최소 300명이 넘는 대병력입니다!"
"해안선 전체가 저 오랑캐들의 붉은 적의(赤衣)로 새카맣게 뒤덮이고 있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군관(軍官)의 다급하고 찢어지는 외침.
그러나 강화유수 이정수는 오히려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비릿하고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는 군관의 어깨를 강하게 꽉 쥐며 그를 진정시켰다.
이정수의 거친 손에는 대원군 이하응이 며칠 전 직접 하사한, 조선 역사상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이하고도 혁신적인 신형 무기의 설계도가 그려진 작전 밀조가 빗물과 땀에 흠뻑 젖은 채 굳게 들려 있었다.
'저들은 자신들의 압도적인 화력의 우위만 믿고 반드시 방심할 것이다.'
'성벽이 무너진 것을 기회로 삼아 해안가 깊숙한 모래사장까지 놈들을 끌어들여라.'
'적의 거대한 함대가 아군의 피해를 우려해 더 이상 함포를 쏘지 못하는 바로 그 사거리 밖의 거리까지.'
'그리고 놈들이 뭍에 온전히 발을 딛는 그 순간.'
'7년 동안 벼려온 조선의 자존심을 놈들의 심장 한가운데 가장 잔혹하게 박아 넣어라.'
이정수는 대원군의 그 서늘한 음성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칼자루를 움켜쥔 채 성벽의 잔해 뒤에서 숨을 죽였다.
한편, 바다를 건너온 불란서 수군의 적장(敵將)은 대항조차 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초지진의 조용하기만 한 조선 해안가를 바라보며 거만한 코웃음을 쳤다.
그들은 천리경으로 무너진 성벽 너머의 적막한 광경을 훑어 내리며 조롱 섞인 비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미개하고 나약한 조선인들, 대불란서 제국의 위대한 포격에 잔뜩 겁을 집어먹고 쥐새끼처럼 도망친 모양이로구나!"
"보라! 무너진 성벽 뒤에 숨어서 바들바들 떨고 있지 않나."
"전군, 뭍으로 진격하라!"
"오늘 밤 안으로 이 야만의 섬 강화도를 완벽히 점령하고, 내일 아침에는 저들의 수도 한양으로 당당히 나아간다!"
"이 보잘것없는 나라는 그저 우리 위대한 제국의 작은 전리품에 불과할 뿐이다!"
우르릉거리는 육중한 증기 기계음과 노 젓는 소리가 뒤섞였다.
수백 명의 불란서 병사들이 오만한 함성을 지르며 갯벌을 박차고 얕은 모래사장에 거만하게 발을 디뎠다.
그들이 일사불란하게 전투 대열을 정비하고 무너진 성벽을 향해 소총에 총검을 꽂은 채 의기양양하게 진격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문은 활짝 열어주었다."
"이제 저 오만한 짐승들을 지옥의 밑바닥으로 안내해라."
3.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 대완구(大碗口)의 세례
이정수의 나지막하지만 살기가 뚝뚝 묻어나는 그 명령과 함께, 성벽 뒤편에 깊숙이 은폐되어 있던 거대한 참호 속에서 조선의 장인들이 지난 7년 동안 피땀을 흘리며 악착같이 주조해 낸 비밀 병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형 대완구.'
곡사 유탄포였다.
일제히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을 내며 시뻘건 불을 뿜어냈다.
콰아아아궁!
콰과광—!
그것은 과거 불란서군이 아시아의 여러 전투에서 경험했던, 일직선으로만 날아오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포탄의 궤적이 아니었다.
신형 포탄은 하늘 높이 가파른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방어벽을 믿고 빽빽하게 밀집해 진격하던 적병의 정수리 위로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쏟아져 내렸다.
"아아아아악!"
"이, 이게 도대체 무슨…!"
"맑은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진다!"
"엎드려라!"
완벽한 승리를 확신하며 방심한 채 해안가에 밀집해 있던 불란서 보병대는 순식간에 피가 튀고 살점이 찢기는 처참한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포탄이 터질 때마다 날카로운 무쇠 파편이 억수 같은 비처럼 사방으로 쏟아졌다.
직선으로 날아오는 포격은 지형지물에 숨어 피할 줄 알았던 그들에게, 머리 바로 위에서 수직으로 뚝 떨어지는 가공할 곡사 포화의 세례는 평생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압도적인 지옥 그 자체였다.
붉은 서양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자만에 빠져 있던 적장이 진형을 재정비하라는 명령을 소리치기도 전에 수백 명의 상륙 대열은 이미 갈가리 찢겨 나가 붕괴되고 있었다.
이정수는 무너진 성벽 위로 우뚝 올라섰다.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모래사장을 향해 조병창에서 깎아낸 정밀한 강선 소총을 높이 치켜들며 사자처럼 포효했다.
"총원 돌격!"
"제 발로 무덤에 기어들어 와 도망치는 붉은 쥐새끼들에게 조선의 차가운 쇳덩이 맛을 똑똑히 보여줘라!"
그 호령과 동시에 빗속에 매복해 있던 조선 정예 포수들이 일제히 언덕을 내달리며 맹렬한 사격을 퍼부었다.
불란서군은 뒤늦게 총검을 꼬나쥐고 반격하려 당황하며 뒤로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이 자랑스럽게 밟고 섰던 모래사장은 아군의 시체로 뒤덮인 피의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빗물과 섞인 바닷물 모래 위로 붉은 피가 끔찍하게 번져 나갔다.
세계 최강을 자부하던 불란서 병사들은 불과 몇 분 전의 오만한 눈빛 대신 죽음의 공포에 질린 처참한 눈빛으로 살기 위해 다시 바다를 향해 짐승처럼 기어갔다.
적병들이 무기를 내던지고 거루배(상륙정)로 도망치려 갯벌 위에서 발버둥 치는 비참한 모습이 보였다.
언덕 위의 이정수는 더 이상 자비를 베풀며 망설이지 않았다.
"거기까지다."
"적의 숨통을 영원히 끊어라."
"연발식 화차(火車)를 전개하라!"
이정수의 손길이 향한 성벽 안쪽 진지에서 덮여 있던 위장막이 걷혔다.
그리고 역사 속 신기전의 원리를 현대 공학 기술과 결합하여 완전히 개량해 낸 괴물 병기, '신형 화차' 수십 대가 그 악마 같은 위용을 드러냈다.
한 대당 수십 발의 묵직한 신형 화전(火箭) 탄두가 해상으로 도망치는 적의 거루배들을 향해 정확한 각도를 맞추었다.
슈우우우우우——!
쐐애애액!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름 끼치는 비명과 함께, 화차에서 발사된 수십 수백 개의 불길이 시뻘건 화염의 궤적을 그리며 먹구름 낀 바다 위로 거세게 치솟았다.
그것은 마치 밤하늘의 붉은 별들이 바다를 향해 거꾸로 쏟아져 내리는 듯한 웅장하고도 섬뜩한 장관이었다.
꼬리를 물고 날아간 수십 발의 폭발형 화전은 필사적으로 노를 저어 도망치는 소선들과, 그들을 구출해 맞이하려 연안으로 접근하던 불란서 수군 군함들의 퇴로를 바다 위에서 완벽하게 불태워 차단해 버렸다.
콰구구구궁!
쿠웅——!
화전이 바다에 닿는 순간, 해수면이 통째로 끓어오르며 뒤집혔다.
증기 군함의 단단한 갑판이 화염 속에 박살 나며 솟구쳐 올랐고, 바다 위를 메우고 도망치려던 거루배들은 거대한 물보라와 폭풍 속에 파편조차 남기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완전히 수장되어 사라졌다.
위풍당당하던 불란서 함대의 거대한 기함마저 선체에 치명상을 입고 시커먼 매연과 붉은 불길을 토해냈다.
아군의 시체마저 수습하지 못한 채 굴욕적으로 뱃머리를 돌려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전투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은둔의 땅이라 여겼던 조선의 군대가 이토록 정교한 함정 전술과 지옥 같은 화력을 가졌으리라고는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다.
4. 폭풍 속의 태양, 세계를 향한 포구
며칠 후.
다시 한양의 운현궁.
굳게 닫혀 있던 사랑채의 문이 벌컥 열렸다.
비옷을 입은 파발꾼이 기쁨에 찬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엎어지듯 뛰어들었다.
"합하! 대원위 대감!"
"승전보이옵니다!"
"강화도의 승전보이옵니다!"
파발꾼의 목소리가 환희에 차 벌벌 떨렸다.
"강화유수 이정수 영감이 불란서 오랑캐들의 거대한 병력을 곡사 유탄포로 박살 내고,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군함들까지 화차의 집중 포화로 바다 밑에 수장시켰사옵니다!"
"적 함대는 대패하여 서해 바다 저 너머로 쫓겨 도망치고 있사옵니다!"
보고가 끝난 직후.
무거운 공기가 짓누르던 운현궁의 밀실 안이 벅찬 정적에 휩싸였다.
하지만 창가에 서 있던 이하응은 조금도 놀라거나 흥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모든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여유롭게 내려놓으며 짙고도 오만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거보거라."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안에서 날카롭게 칼을 갈았더니, 오랑캐 놈들이 제 발로 기어들어 와 알아서 피를 흘리지 않느냐."
같은 시각.
경복궁의 편전.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불란서 대함대가 쳐들어왔다며 바들바들 떨고 엎드려 대성통곡하던 조정의 나약한 대신들은, 이 믿을 수 없는 승전보를 전해 듣고는 충격과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로의 창백한 얼굴만을 마주 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방금 전까지 외적의 포탄이 두려워 화친을 주장하며 나라를 팔아먹으려 했다는 비열한 사실조차 까맣게 잊은 채, 진짜 권력이 존재하는 왕좌의 뒤편 운현궁을 향해 일제히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조선은 더 이상 서양 열강의 무자비한 뭇매를 속수무책으로 피 흘리며 받아내는 동아시아의 낡은 허수아비가 아니었다.
이하응은 남은 찻잔을 천천히 비우며 열린 창밖의 하늘을 응시했다.
피 냄새를 머금은 서해의 거친 바람이 한양 도성으로 불어오고 있었다.
'이제 비로소 진짜 시작이다.'
'이 나라 조선은 더 이상 두려움에 떨며 닫힌 나라로 남지 않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굳건한 쇠문을 열고 나가, 전 세계의 오랑캐들을 우리의 철갑 아래 짓누르는 위대한 제국이 될 것이다.'
이하응은 이 눈부신 승전보가 가져온 궁궐 안의 환희 속에서도, 짐승처럼 차갑고 서늘한 이성을 잃지 않았다.
오늘 강화도의 승리는 전쟁의 완승이 아니었다.
천하 패권을 향한 기나긴 피의 전쟁을 알리는 웅장한 예고편일 뿐이었다.
저 탐욕스러운 서양의 이리 떼들은 상처를 핥으며 반드시 다시 올 것이고, 다음번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더 강력한 함대와 더 잔인한 무기를 들고 올 것이 분명했다.
그는 먹을 듬뿍 묻힌 붓을 들어 다음 부국강병을 위한 무자비한 명령을 적어 내려갔다.
이제 조선은 해안가에 웅크려 낡은 성벽을 쌓는 데 머무는 연약한 나라가 아니라, 무쇠 거북을 띄워 저 거친 대양을 호령하고 지배하는 포식자의 나라가 되어야만 했다.
그의 형형한 눈빛은 좁은 한양 도성을 훌쩍 넘어, 붉게 타오르는 대륙과 세계를 향해 날카로운 칼날처럼 빛나고 있었다.
대원군 이하응의 절대적인 철권 시대가.
그리고 변방의 조선이 천하 역사의 중심축으로 우뚝 서게 될 피 끓는 서사시가.
비로소 불타오르는 철의 성벽 위에서 웅장하게 쓰이기 시작했다.
수백 년간 웅크렸던 조선은 이제 그 낡고 부패한 껍질을 완벽하게 벗어던지고 있었다.
무지몽매한 백성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며 승전보를 환호했다.
하지만 가장 높은 곳에 선 이하응은 누구보다 차갑게 알고 있었다.
이 달콤한 승리가 가져올 거대한 역사의 파장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천하를 집어삼키려는 서구 열강들의 탐욕스러운 시선이, 이제 조선이라는 미지의 거대 포식자를 향해 집중적으로 꽂힐 것임을 말이다.
하지만 어둠 속의 제왕은 두렵지 않았다.
지난 7년 동안 도성 아래서 소리 없이 갈고닦아온 조선의 강철 칼날은 이미 그들의 목통을 찢어발길 완벽한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
이하응은 촛불을 끄고 밀실의 짙은 어둠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등불이 꺼진 방 안에서 그의 거대한 그림자가 밀실 전체를 서늘하게 뒤덮었다.
마치 대조선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역사의 짙은 안개를 찢으며 기지개를 켜는 듯한 압도적인 위용을 뿜어냈다.
내일 아침이 밝으면 조선의 낡은 조정은 그의 명령 한마디에 또 한 번 피바람을 맞으며 거세게 흔들릴 것이다.
썩은 대신들은 각자 살아남을 길을 찾느라 쥐새끼처럼 분주하게 움직이겠지.
하지만 이하응은 그들의 발악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이제 과거 운현궁에서 한량 행세를 하던 몰락한 파락호가 아니었다.
무쇠의 군대로 천하를 발아래 짓밟으려는 냉혹한 제왕.
그 묵직한 발걸음을 이제 막 떼고 있었다.
오늘 강화도 해안가를 불태운 그 가공할 포성은 그저 서막을 알리는 짧은 전주곡에 불과했다.
세상을 피로 물들일 조선의 진정한 강철 교향곡은, 이제 막 그 거대한 지휘봉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이하응은 밀실을 나서며 다시 한 번 머릿속으로 자신의 잔혹하고도 완벽한 계획을 점검했다.
병기도감 장인들의 기술력.
이정수와 정예군들의 지휘.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민심의 열광적인 향방.
이 모든 것이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의 철저한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7년의 지독한 침묵과 인내 끝에 찾아온 이 압도적인 첫 승리는 조선의 백성과 군관들에게 무적의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그 끓어오르는 거대한 기운은 곧 국가를 지탱하는 거대한 원동력이 되어 동아시아를 지배하려는 무리들을 남김없이 압도해 버릴 것이다.
이하응은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운현궁의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나갔다.
그가 흙바닥을 내딛는 무거운 발걸음마다 주변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서릿발 같은 살기와 제왕의 기운이 짙게 서렸다.
낡고 병든 조선의 운명이 이제 오직 그의 서늘한 손끝과 쇳물 끓는 용광로를 통해 전혀 새로운 제국의 역사로 다시 쓰이고 있었다.
이제 조선을 좀먹던 안동 김씨의 부패한 그림자는 완전히 걷혔다.
그리고 그 피로 씻겨진 자리에, 오랑캐들을 향해 거대한 철갑의 포구를 서늘하게 돌리는 당당하고 파괴적인 대조선 제국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이하응은 빗구름 사이로 잠시 얼굴을 내민 차가운 반달을 올려다보며 조용하지만 뼈저리게 읊조렸다.
"저 달이 지기 전에, 저 짐승들의 바다를 온전히 우리의 발아래 두겠다."
그의 타오르는 야망은 칠흑 같은 밤하늘보다 깊었고, 낡은 세상을 부수겠다는 그의 의지는 조병창에서 끓어오르는 무쇠보다 단단했다.
이제 오백 년간 잠들어 있던 조선의 긴 밤은 완전히 끝났다.
붉게 물든 눈부신 제국의 태양이, 낡은 조선의 대지를 거침없이 집어삼키며 비출 차례였다.
독자님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추천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피워냅니다.